애틋함이 있어야 꽃은 핀다

- 학생부 종합전형을 다시 생각해 보며

by 별숲지기

애틋함이 있어야 꽃은 핀다.


- 나로와서당 별숲지기 시소샘



내 마음 발그레 물들인 양귀비꽃

꽃잎 닿은 숨결이 부들부들 떨리어


그 자리를 밟고 또 밟다가

눈에 밟히고 또 밟히다가

자꾸 두리번거리다가, 그만


모올래 사무친 뿌리

붓그레 안아

곁으로 내려놓았지만, 이내


입을 다물고 허리는 기울고

붉은 고운 빛 영영 사라져

온 마음 잿빛으로 얼룩지더니


옳거니!


따뜻하게 안기는 흙과 땅벌레,

빛과 나비의 춤에 이르러

오랜 침묵을 닫고 입을 여는 너


긴 시간 마음을 녹인

뿌리가 아니고서는

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붉은 꽃잎으로

말해준 너





오십이 넘은 남편의 대학 동기가 교사 임용고시 1차에 합격했습니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틈틈이 공부해 온 끝에 얻은 결과였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걸어온 그 마음을, 저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곱 번 만에 임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내가 지금 국어 교사라면 이걸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공부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질문 하나를 붙들고 공부하다 보니,

더 많이 알아야 비로소 쉽게 가르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배움은 점점 깊어졌고,

그 깊이가 결국 합격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저는 한 가지를 믿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꿈이 간절하다면, 그 마음은 결국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요.

아마도 그 믿음은 저희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오남매 모두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고, 마침내 그 바람을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간절함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다는 점이었습니다.

매번 떨어지는 교사 임용시험 앞에서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밤늦게 들어온 딸에게 늘 따뜻하게 밥을 퍼주시던 엄마. 그 품이 있었기에 저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희 어머니 같은 따뜻함을 제 딸에게 주지 못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계획 세운 일들에 허우적거리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야 몸과 마음을 풀고 아이들을 바라보았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키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져만 갑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들어, 제가 진로 교사가 된 이유를 자주 되돌아보게 됩니다.

늦게나마 깨달은 바를, 이제는 아이들 곁에서 실천해 보라는 삶의 요청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제 딸 앞에서는, 제가 늘 말해오던 ‘나의 길’을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쌓아 온 입시 지도 경험, 그 익숙하고도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만 딸의 진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지요.

저는 중소도시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해 왔습니다.

그곳에서는 정시보다는 수시, 서류전형보다는 내신 성적으로 합격하는 사례를 더 많이 보아왔지요.

큰딸이 다니는 학교 역시 제가 근무해 온 학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과 전형으로 대학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기대가 있었기에 큰딸의 시험 기간마다 저 역시 마음을 졸이며 긴장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를 크게 당황하게 한 큰딸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2 여름방학을 앞둔 마지막 지필평가 기간이었고, 다음 날은 조금만 준비해도 점수가 나올 수 있는 영어시험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간식을 챙겨주려고 방문을 열었을 때 아이의 책상 위에는 문제집 대신 선거 홍보용 피켓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학생회장 출마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시험 공부보다 이 일에 더 마음을 쏟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엄마, 나를 응원하는 후배들과 친구들이 있어서 포기할 수가 없어.”


당황한 채 서 있던 저와 달리, 아이는 끝까지 열정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그날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학생회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일로 인해 아이가 학생회 활동에 소극적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고3이 된 어느 날, 공부하던 스터디 카페 근처 식당에서 아이를 만나 저녁을 사주었습니다.


“엄마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때 그 일을 꼭 해야 했어.

공부보다 더 중요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아.

그 경험으로 배운 게 정말 많았거든. 난 그런 애인 것 같아, 엄마.”


고2 때 겪었던 여러 일들로 내신 성적은 많이 내려가 있었고,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대학을 쓰기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고요.


수시 원서를 쓰는 과정에서 저는 처음으로 그동안의 입시 경험에서 한 발 물러나,

딸이 쌓아 온 경험의 크기만큼만 원서를 써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다행히 그 선택에는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큰딸은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세 개 대학에서 최초 합격을 했습니다.

그중 두 곳은 100% 서류 평가였고, 생활기록부만으로 아이의 시간을 믿어준 선택이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던 제 자신이 미안했습니다.

엄마는 몰랐지만, 큰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가운 숫자만으로는 자신의 전부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또렷하게 확인한 순간이 면접이었다고 했습니다.


“엄마, 내가 꼭 만나고 싶었던 분을 만났어. 이모 같아서 그냥 하고 싶은 말 다 했어.

떨어져도 후회 없을 것 같아.”


아이는 지금도 대학에서 홍보단으로 활동하며 바쁘게, 즐겁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너무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았던 꿈의 간절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딸의 경험을 보고 나서야 저는 다른 아이들의 눈빛에서도 오래 눌러 담긴 마음을 보기 시작했고,

그제야 학생부 종합전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공정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생활기록부만으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느냐는 질문 앞에서, 저 역시 오랫동안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 전형이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드러내기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적이라는 숫자보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꾸준히 뛰어들며 쌓아 온 시간들이야말로 그 아이를 설명해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생부 종합전형 역시 내신 성적이 뒷받침될수록 학업 역량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내신이 다소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애써 쌓아 온 활동과 열정을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꿈을 향해 흘려온 시간 속에서 다시 공부에 대한 동기와 의욕이 살아나는 순간을, 현장에서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1학년 때 가르쳤던 학생 중 오래 마음에 남는 아이가 있습니다.

사회학과에 관심이 많았고, 방송부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꾸준히 쌓아 온 학생이었지요.

제가 준비한 행사에 와서 방송 장비를 말없이 살펴주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2학년 때는 제가 휴직을 하며 만나지 못했고, 3학년이 되어 진로 교사로 다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 그냥 학종은 포기하고 논술로 준비해 볼까 하는데요. 괜찮을까요?”


생활기록부를 펼쳐 보니, 비록 2학년 때 내신은 떨어졌지만

방송부 활동과 사회과 주제 탐구에서 쌓아 온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겠다는 말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니?”

“내신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서요. 가고 싶은 대학을 가려면 최소 3등급 안에는 들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저는 논술 전형의 현실을 함께 살펴보며 지금까지 해 오던 준비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했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저… 학종 준비를 안 할 줄 알고 동아리를 아무거나 선택했어요.”

“담당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려 보렴. 아직은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이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논술을 준비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지요.

고민이 생길 때마다 종종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아이가 얼마나 진지하게 자신의 길을 고민하고 있는지,

그리고 조금씩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아이는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찾아, 면접 자리에서 그동안의 시간을 숨김없이 꺼내 놓았고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학생부 종합전형을

‘어떤 아이를 뽑는 제도’가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게 붙잡아 주는

하나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25년, 진로교사로서의 1년은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생각을 현장에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실천해 나간 시간이었습니다.


숫자로는 말해지지 않는 시간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