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뜬
어느 날
학생이던 아이가
교사로 걸어가더니
작은 아기를 품에 안은
부모가 되었다
학생은 성실히 공부하고
교사는 열심히 가르치면
꿈을 이룬다는데
무슨 책을 몇 권 읽고
어디까지 기억을 하고 있어야
아이를 알아줄 부모가 될까
유명한 분을 몇 분 만나
얼마나 상담을 받아야지만
아이를 일으킬 부모가 될까
긴 한숨 사이에서
울 엄마 떠오른다
물 건너 논에 가려고
굽은 등으로도 업고 건넜지
밭일하다 뱀을 보면
나를 작은 손으로도 들어 올렸지
창호지 문틈으로 바람 들면
옷감 바느질로 추위 막았지
다섯 아이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 따끈하게 볶아 주었지
미안하다, 엄마는
글자도 숫자도 배운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오남매 이렇게만 키웠는데
울엄마 말씀 사이에
함박꽃이 피어있다
하양 꽃 건져다가
내 마음에 심어두면
배움 없는 시간에서도
세상 지혜 다 우려낸 함박웃음이
내게 오려나
아이에게 필요한 건
책에서도 명강사에게도
나오진 않는
따뜻한, 엄마의
등과 손과 웃음이었다
시를 쓰고 나서, 문득 한 학생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의 말과 표정 속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다시 느껴졌거든요.
우리 학교의 맨 꼭대기,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5층에는 음악실과 미술실, 가사실, 그리고 제가 머물며 진로수업과 상담을 하는 진로 진학 탐색실이 있습니다.
1학기 동안 그곳을 정성껏 청소해 주던 3학년 학생이 있었는데, 1학년 때 제가 가르쳤던 제자라 어느새 든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학교 합격 소식을 듣고 궁금해하던 때였는데, 마침 청소를 돕겠다며 올라와 주어 청소가 끝난 뒤에도 잠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학생이 먼저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그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전문대까지만 나오셨는데, 저를 이렇게 키워주셨어요.”
1학년 때 국어를 가르칠 때부터 늘 성실하고 꼼꼼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작은 것도 소홀히 듣지 않고 받아 적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토록 원하던 학과에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 일처럼 기뻤습니다.
“사학과는 언제부터 꿈꿨니?”
“유치원 때 공룡 만화를 봤는데, 그때부터요. 공룡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역사에 관심이 생겼어요. 부모님과 공룡 박물관을 다니면서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고고학자를 향한 꿈, 또렷한 눈빛이 어릴 적의 순수함 그대로였습니다.
“혹시 중간에 꿈이 바뀐 적이 없었니?”
하고 묻자, 잠시 생각한 후 미소 지었습니다.
“중학교 때 사회나 과학 선생님도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발굴의 현장에 직접 서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그 순간의 기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대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이 학생은 오래전부터 마음의 중심에 ‘발견의 기쁨’을 간직하고 있었던 거죠.
합격의 비결을 묻자 “생기부와 면접”이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의 관심 주제를 찾아 얼마나 깊이 있게 연구해 왔는지에 대해 너무나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면접에서도 그 역량이 충분히 드러났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구 주제를 어떻게 찾은 거니?”
“그냥 교과서에서 간단히 배우는 내용이 궁금해서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었어요. 자료를 찾아 읽다 보니 새로운 길이 계속 열렸고, 덕분에 제 공부가 한 층 깊어졌던 것 같아요. 특히 교과서에 짧게 소개된 내용의 원문을 직접 찾아 읽으면서 ‘이게 진짜 공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뭉클했습니다. ‘배움은 결국 스스로의 궁금함에서 시작되는구나.’ 오랜 시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 아이가 제게 들려주고 있었으니까요.
이 학생은 학교 안에서 자랐습니다.
사교육이 흔치 않은 지역이라 모든 준비를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함께했습니다.
“면접은 얼마나 연습했니?” 묻자,
“담임 선생님과 2주 동안 꾸준히 했어요.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다른 선생님들께 피드백도 받았고요. 혼자 했다면 합격 못 했을 거예요.”
이 대답은 참 뿌듯했습니다. 아이는 교사의 노력을, 교사는 아이의 성장을 서로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성적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2학년 1학기 때 수학 4등급.
“그때 충격이 심했어요. 방학 동안 수학 문제집 한 권을 네 번 풀었어요. 그러니 2학기엔 1등급으로 올라가더라고요.”
노력의 결실은 그렇게 오히려 단단하게 맺혔습니다.
“학원 도움을 받은 거니?”
“선생님, 저는 어렸을 때 피아노와 축구학원만 다녔지 국영수를 배우러 학원에 다닌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부모님의 교육관이 궁금했습니다.
“그냥 학원 대신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어요.
어려운 문제를 풀 때면 어머니가 옆에서 같이 고민해 주셨고,
밤이 되면 핸드폰을 맡아주시고 간식을 챙겨주셨어요.
두 분 다 전문대 출신이지만, ‘스스로 하는 공부’가 진짜라고 믿으셨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찡했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나는 어떤 부모일까’ 생각이 스쳤거든요.
아이와 함께 공부하지는 않아도, 그걸 지켜봐 주는 일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학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되어준 건 부모님의 격려, 책, 그리고 함께해 준 선생님들이었어요.
그리고 축구할 수 있는 넓은 운동장이에요.”
이야기를 마치며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남겼습니다.
“수학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꼭 말씀해 주세요.”
“그래, 네가 들려준 말들 후배들에게 꼭 전해줄게, 너의 말이 큰 용기가 될 것 같아. 고마워”
유치원 때 품은 꿈을 지금까지 이어온 그 마음,
스스로 공부의 길을 만들어 간 그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던 그 표정이
오래도록 제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비춰줍니다.
아이를 만나며 저는 다시 배웁니다.
진짜 교육은 가르침보다 ‘믿어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