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이다. Ep. 5
내가 하천팀에서 맡은 업무는 하천 불법단속과 골재채취업 인허가 업무였다. 둘 중 더 비중이 있었던 건 당연히 하천 불법단속 업무.
상대적으로 민원의 양도 많은데다가 항상 상대민원이 있어서 민원의 강도도 세게 느껴졌다.
더럽고 지저분한 업무라서 막내에게 주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공무원 시험도 합격했는데 뭔들 못하리.
내 공직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구.
민원.
민원인이 행정기관에 대하여 처분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
그리고 모든 일이 그렇듯,
하나의 민원에도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어느 직장이든 신입사원일 때 어떤 사수를 만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조차 처음인 사회초년생에게는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사수뿐이기 때문.
인터넷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인수인계도 없이 인사이동 후 연락도 잘 안되는 전임자가 많다. 진짜 심한 사람은 컴퓨터 안에 있는 중요문서들도 몽땅 지워버린다는데. 그렇게 보면 나는 정말 행운아였다. 전임자가 내 바로 옆자리 사수였으니까.
거기다가 사수는 저세상 배려심으로 적응하기 힘들테니까 1주일 동안은 내 업무까지 처리해준다고 했다.
이 사람은 천사를 넘어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날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았지.
아무리 유능해도 몸이 두개가 아닌 이상, 혼자서 내 전화까지 대신 다 받을 수는 없으니까.
신규 공무원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 같다. 내 전화가 울릴 때마다 느끼는 그 쫄깃함이란.
전화를 받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전화를 받아서 뭘 어떻게 해야할 지가 정말 고민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발령받고 내가 혼자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단 말이지.
그리고 내가 전화를 받아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는 사무실의 그 시선들.
이런게 언제쯤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라고 생각하다가 정말로 전화를 못받은 적이 있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민원인은 행정기관에 민원을 신청하고 신속 공정 친절 적법한 응답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커지면 징계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이건 정말 주의해야 한다.
화가 난 민원인은 바로 사무실로 찾아왔고,
스스로도 잘못했다는 걸 알았던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지금은 공무원도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진정한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아직 어린 자존심에 그게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각설하고,
민원인이 찾아온 이유는 하천 내 불법행위를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하천은 국가하천, 지방하천, 소하천으로 나뉠 수 있는데,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은 하천법의 적용을 받고 소하천은 소하천정비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번 경우는 지방하천으로, 하천법상 하천구역 내 특정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관리청인 우리 팀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나무를 심는 행위는 하천의 흐름에 지장을 줄 수 있어 하천점용허가도 불가.
전화문제로 민원인에게 불편을 줬다는 생각에 괴로웠던 나는 민원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 위해 당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갈 때는 위성사진과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함께 가져간다. 물론 위성사진 위에 하천구역선을 올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
민원인이 말한 현장에 가보니 하천구역 내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이것은 누가봐도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그리고 불법행위자로 추정되는 유력한 용의자를 만날 수 있었는데..
내 공직생활 첫 민원.
아무래도 ㅈ된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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