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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균탁commune Jan 23. 2023

코뮤니스트의 여행

권정생 동화나라를 가다, 마을 전체의 권정생이 살아 숨쉬는 곳

 하나의 마을, 전체가 관광지인 곳이 있을까? 

 아마도 가장 유명한 곳은 프랑스의 ‘카부르(Cabourg)’일 것이다. 그곳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무대인 발베크(Balbec)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발길이 닿은 곳마다 프루스트의 발자취와 발베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마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의 배경이었다는 점과 실제 소설 속의 공간을 현실에서 똑같이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국내 역시 소설의 배경을 무대로 꾸민 몇 개의 마을이 있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 마을’, 이효석 선생의 ‘봉평 마을’, 김유정 선생의 ‘김유정 문학촌’,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 마을’ 등이 그런 곳이다. 이러한 마을들은 작가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해서 소설 속의 마을을 재현해 놓았다. 그렇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마을을 찾아 소설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는 소설이라는 우선 콘텐츠가 있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기반으로 만든 것으로 사람들은 실제 소설 속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안동에는 문학을 기반으로 된 관광지가 없을까? 정답은 있다. 그렇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바로 그곳은 권정생 선생이 살던 일직면이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인 1946년 아버지의 고향 집 근처인 일직면으로 돌어와 평생을 사셨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외갓집이 있는 청송에서 잠깐 머물기도 하고, 학창시절에는 부산에서 머물기도 했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일직면 조탑리에서 보냈다.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 「엄마까투리」, 「황소아저씨」를 비롯한 동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동문학가다. 선생이 쓴 「엄마까투리」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물론 EBS 시리즈물로 제작되어 아이들에게 친숙하며, 「강아지똥」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교육용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강아지똥」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선생이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외에도 권정생 선생은 많은 동화를 남겼다. 이 동화들은 단편집이 되거나 그림책이 되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좋은 동화 한 편은 백 번의 설교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평생 좋은 동화를 쓰기 위해 노력한 권정생 선생의 동화에는 그의 삶이 녹아 있어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 특히, 「강아지똥」은 권정생 선생의 삶이 진하게 묻어있는 작품이다. 

 권정생 선생은 1955년 19살의 나이에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22살에는 병세가 악화되어 신장과 방광으로 더 후에는 부고환으로 결핵이 퍼지게 되었다. 점점 악화되는 병세 속에서 선생은 두 차례에 걸쳐 신장과 방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이 끝난 후 의사로부터 2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선생은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며,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음의 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강아지똥」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처럼,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필사적인 힘으로 동화를 썼다. 그리고 선생은 자신의 삶을 「강아지똥」에 녹여냄으로써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동화를 남겼다. 그렇기에 그의 동화는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하고 있으며,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희망을 전해준다. 이 세상 모두가 소중하며, 무엇인가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이 있다는 선생의 말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준다.

 「엄마 까투리」 역시 권정생 선생의 삶의 모습이 녹아있다. 그는 자식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던,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떤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동화 속에 표현하였다. 권정생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개미 한 마리 죽이지 않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이 결핵을 앓고 난 후 어머니는 온 동네를 다니며 뱀과 개구리를 잡아 지극정성으로 선생을 보살폈다. 어머니에게 행상을 하며, 남의 집 농사를 지으며 힘든 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권정생 선생과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모든 것을 헌신했다. 즉 「엄마 까투리」에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녹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동화 곳곳에는 그가 살아왔던 삶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곳곳의 흔적이 살아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그의 장편동화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역시 일직교회 문간방에 살며 종지기 일을 할 때, 작은 생명까지 소중히 여겼던 선생이 쥐와 함께 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을 전체를 환상적인 소설의 공간으로 엮어 내는 것은 선생의 청소년 소설 3부작일 것이다. 선생은 『몽실언니』, 『점득이네』, 『초가집이 있던 마을』 세 편의 청소년 소설을 집필하여, 한국전쟁의 굴곡 속에서 어렵게 삶을 이어온 민중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그 속에 등장하는 지명, 몽실이가 걸었던 길, 점득이네 남매가 수난을 겪은 곳, 금동이와 복식이가 겪어야 했던 갈등의 현장들을 소설 속에 생생한 언어로 녹여 내었다. 

 특히 『몽실언니』가 절뚝이는 다리로 고통을 극복해간 모든 길은 그가 살았던 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몽실이가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댓골은 바로 지금 권정생 동화나라가 위치한 마을이다. 그 마을 어디쯤에는 몽실이네 집이 있었을 것이고, 그 산 등선 어디쯤에는 보초를 서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밤을 보내던 움막이 있었을 것이다. 그 마을 냇가에는 빨래를 하던 곳이, 또 어딘가에는 소꿉놀이를 하던 마당이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차를 타고 5분정도 가면 몽실이가 식모 생활을 하던 운산 장터가 나온다. 몽실이는 동생 난남이를 업고 장터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역경을 이겨나가야 함을 가르쳐준 꽃 파는 여자아이를 만났을 것이다. 

 또한 장터 초입에는 몽실이와 난남이의 슬픈 장면이 새겨져 있다. 지금은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 그곳은 옛날에 우체국이 있었다. 몽실이는 어린 난남이를 우체국 처마 밑에 남겨 두고 다리를 절뚝이며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로 들어가는 몽실이의 손에는 밥을 구걸하기 위한 깡통이 하나 들려 있었다. 삶을 살아가기 위한 어린 자매의 애틋한 장면이 운산 장터 초입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장터를 지나가는 길 역시 몽실이가 걷던 길이다. 장터를 관통하는 일직선의 길은 논과 밭을 지나 운산역에 다다른다. 운산역은 몽실이가 함께 살지 못하게 된 동생 영득이와 영순이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던 곳이고, 아픈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던 곳이다. 몽실이는 집을 나서 장터를 지나 이 역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버지를 부축하며 기차에 올랐을 것이다.                                                                      

 이처럼 일직면 일대는 『몽실언니』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 어디를 가던 몽실이의 발걸음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일대는 권정생 선생의 모든 소설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선생의 책을 읽고 주인공들이 머물렀던 공간을 찾아보는 것은 책이라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실제의 삶의 일부가 되는 체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직면 일대에서는 권정생 선생의 살아있는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운산 장터에서 차로 약 5분, 권정생 동화나라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가면 권정생 선생이 터를 잡고 머물렀던 일직면 조탑리를 만날 수 있다.                                                                       

 마치 흰둥이와 민들레가 함께 걷는 듯한 골목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권정생 선생이 1983년부터 귀천하는 날까지 머무른 집을 만날 수 있다. 흙을 쌓아 올린 조그만 집, 마치 권정생 선생의 삶을 보여주는 듯한 집, 선생은 그 조그만 흙집에서 처음 잠들던 날 집 한 칸 없이 고생만 하다 떠난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내 집에 누워 잠이 드는 행복을 만끽했다고 한다. 

 권정생 선생의 집은 일생을 검소하게 살다간 선생의 삶을 닮아 있다. 지번도 없이 하천가 옆에 지어진 조그만 집, 선생은 그 집 한쪽에 책을 가득 쌓아놓고 조그만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밤이고 낮이고 동화를 썼다. 봄이면 개나리가 피고, 여름이면 앵두가 열리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 뺑덕이와 함께, 마당을 뛰어다니는 개구리와 밤낮없이 방안을 휘젓고 다니는 생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동화를 썼다.                                               

 권정생 선생은 조용한 곳에 자리 잡은 소박한 이 집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다. 두 사람이 들어가 앉으면 무릎이 닿을 것만 같은 좁은 방에서 전 세계의 어린이를 생각하며 동화를 쓰고 또 썼다. 이 좁은 방에서 힘겹게 병마와 싸웠지만 북쪽의 굶주린 아이들을 생각했고, 티벳, 아프리카, 중동의 아이들을 걱정했다. 그래서일까 권정생 선생이 남긴 유언장에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아픔을 견뎌내면서도 나 자신이 아닌 세상에 핍박받는 모든 이들의 삶을 걱정했던 선생의 삶은 그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생가에서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반가운 손님과 담소를 나눌 때면 항상 앉아 있었다는 주춧돌에 앉아 선생의 숨결을 느낄 때면, 단순한 감동을 넘어 선생이 실천하고자 했던 삶을 이어가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각오를 느끼게 될 것이다.                                    

 권정생 선생의 집을 다 둘러보았다면, 살아생전 선생이 가장 좋아했던 곳에 올라보아야 한다. 집 뒤에는 조그마한 언덕이 있는데, 선생은 이 언덕을 빌뱅이 언덕이라 불렀다. 권정생 선생은 해질 무렵 빌뱅이 언덕에 올라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조그마한 언덕, 권정생 선생은 이 언덕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우리에게 들려줄 수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언덕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는 것은 선생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는 색다른 감동이 된다.                             

 안동시 일직면은 그 전체가 살아있는 관광지다. 아니 권정생 선생의 이야기가 그려진 그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선생은 동화를 통해 청소년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편견 없는 세상, 함께 살아가는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마을 곳곳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렇기에 권정생 선생의 책을 읽었다면, 강아지똥과 함께, 엄마 까투리와 함께, 몽실이와 함께, 선생의 글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 식물들과 함께 일직면 일대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몽실이가 앉았던 곳, 몽실이가 걸었던 길, 강아지똥이 예쁜 민들레가 되었던 돌담길에 기대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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