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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균탁commune Jan 24. 2023

나는 코뮤니스트다

코뮤니스트, 가난한 이유를 알지만 가난과 싸우다

 나는 코뮤니스트다.

 코뮤니스트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쉽게 오해한다. 그래서 형들은 나에게 "빨갱이"라고 농담 반을 해 된다. 그리고 당당히 코뮤니스트임을 밝히고 다녀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손해가 바로 내가 경상북도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경상북도는 보수의 거점이다. 보수의 표가 많이 나온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은 안동이다. 안동은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 대통령 선거 등에서 80%에 육박할 정도로 보수의 표가 쏟아지는 곳이다. 이런 곳에 살다보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이다. 간혹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을 만난다해도 같은 뜻을 가진 동지를 만났다고 반가워서 몇 번 자리를 같이 하다 보면 그가 겉모습만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때가 많다.

 특히, 자신을 중도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렇다. 자신을 중도 좌파라고 부르면서 좌파로서 가져야할 행동들, 예를 들면 복지, 환경 보호, 나눔과 같은 행동에 인색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특히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상북도의 대부분 지역은 인구 소멸 지역이다. 인구 소멸 지역이라는 말은 인구의 연령이 노령화되어 있다는 말인다. 즉, 노인 인구가 도시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이고, 이런 노령 인구 대부분이 보수를 표방한다. 

 대표적으로 우리 가족들이 그렇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보수를 표방한다. 내가 집에 사회주의 서적, 아나키즘 서적을 사서 쟁여두는 것을 엄청 싫어하신다. 그리고 가난해서 돈도 많이 벌지도 못하는 놈이 그 따위 책이나 사서 모은다고 혼을 내신다.



 그런데 어떻게 하랴? 나는 코뮤니스트다. 소규모 공동체를 지향하고, 소규모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바란다. 그리고 이런 소규모 공동체의 집합들이 서로 교류하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그러니 뭐 어쩌라고.... 사실 코뮤니스트라고 표방하며 다니면서 아버지와 잦은 마찰을 빚었다. 집에서 쫓겨 나기도 했었다. 말 마따나 호적에서 파버린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셨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왜냐고? 나는 코뮤니스트니까.


 나는 가난이 발생하는 구조를 안다. 물론 실전에는 약하지만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가난을 조장하는 것은 부르주아가 만든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그것도 아주 교묘하게, 그런데 아무리 교묘한 착취라도 이미 1980년대에 시작된 자본주의의 허점을 사람들이 왜 모르겠는가? 다들 안다. 하지만 그들의 교묘한 착취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임금 노동자의 운명을 타고 났으니까. 

 그리고 부르주아에게는 엄청나게 든든한 뒷배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라는 장치이다. 국가는 권력의 구조를 숨기며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반항하지 못하도록 옭아맨다. 그리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자본가와 국가의 유착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우리는 왜 모르겠는가?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해야겠다. 나는 코뮤니스트다. 그것도 가난한 코뮤니스트다. 아니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코뮤니스트다. 하지만 가난을 벗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하는 노력은 계속한다. 왜냐하면 땅 위에 버려진 가난한 사람들을 그냥 보고 있는 것은 코뮤니스트가 아니니까.

 현대 사회는 1980년대 마르크스가 활동하던 사회, 바쿠닌이, 크로포트킨이, 엥겔스가 살던 사회와 다르다. 그때는 상부구조와 토대가 명확하게 구분지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프롤레타리아라는 토대가 상부구조에를 무찌르기 위해 투쟁하면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옆의 그림처럼 하나의 상부구조와 하나의 토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계층은 더 세분화되었고, 그 계층은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상부구조는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말이다. 즉 토대가 더 세분화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세분화된 토대는 분산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계급이었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같을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하지만 같은 점은 하나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는 자본가의 착취에 저항하는 일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선두에 서서 저항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어긋났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코뮤니스트다. 그것도 지독히 가난한 코뮤니스트다. 그러나 세분화된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코뮤니스트다. 그리고 코뮤니즘을 꿈꾸고, 앞으로 다가올 코뮤니즘의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코뮤니스트다. 

 그렇기에 나는 직함이 많다. 한 직작의 과장이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협동조합의 이사장이다. 그리고 아주 아주 조그만 장학회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하고 있으며, 고아원을 찾아가 선물을 나눠주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밥 한 끼, 두 끼 굶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꾸준히 일을 한다. 그러다보니 생활은 항상 쪼들린다. 유일한 취미는 안 읽어도 책을 사서 보는 일인데, 책을 살 돈도 사실 부족하다. 사고 싶은 책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다 셀 수도 없다.


그래도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돕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투잡, 쓰리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부자가 되지 않았냐고? 이것 역시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 속에서 얼마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서 나는 꾸준히 이 일을 해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코뮤니스트일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코뮤니스트로서의 삶을 조금씩 써보려고 한다. 부당했던 것도, 행복했던 것도, 코뮤니스트에게는 특별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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