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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균탁commune Jan 25. 2023

코뮤니스트의 여행

책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 마리서사

  얼마 전 이런저런 뉴스를 검색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픈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는 부산과 관련된 것이었고,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와 관련된 것이었다.(물론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기사는 단지 부산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게다가 중소도시들은 이미 이 현상으로부터 종언을 고했는지도 모른다.)     

 기사와 관련된 이야기의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취미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 필자 역시 성인이 되고 삶과 일에 찌들어가면서 어린 시절 혹은 직장을 다니기 전 청년 시절 가졌던 취미를 하나둘씩 잃어버렸다. 더 이상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은 꼭 하던 축구를 안 하게 되었고,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가며 집중력을 발휘하던 프라모델도 하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공상의 세계를 펼쳐나가던 글쓰기는 어느 사이 직업 아닌 직업이 되어 순간순간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종이로 커다란 동물원을 만들겠다며 심심하면 꼼지락거리던 종이접기도, 엄마에게 등짝을 맞아가며 뜯었다 붙였다하던 간 큰 취미 전자제품 분해, 조립하기도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으며, 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도 없다.

 하지만 삶의 여유를 잃어가는 순간에도 지금까지 절대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취미가 하나 있다. 점점 더 일과 삶에 찌들어 가는 현재의 상황에서 100% 장담은 할 수 없겠지만 필자는 어떤 잔소리를 듣더라도 어떤 핍박(?)을 받더라도 이 취미만은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이다.(이 취미 때문에 집이 좁다느니, 집 정리가 안 된다느니, 집이 더 지저분해 보인다느니 등 하루에도 몇 번씩은 잔소리를 듣는다 해도 말이다.)

 이렇듯 잔소리를 불러일으키는 취미란 바로 책 모으기인데, 방에는 책꽂이를 가득 채우고도 갈 곳을 잃은 책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어디 그뿐인가? 타고 다니는 조그만 차는 옆 자석과 뒤 자석을 가득 채운 책 때문에 동급 유일의 1인승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조그만 집과 차를 차지한 책들이 불편함을 초래하는 상황 속에서도 책 모으기에 대한 열정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필요하다거나, 욕심이 난다거나, 심지어 그냥 단순히 갖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책을 모으고 또 모은다.(이러한 취미를 독서라고 할 수는 없다. 필자의 도서 소장목록에는 어쩌면 아니 전적으로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다.)



 책 모으기라는 유일한 취미, 그것 때문에 앞서 말한 기사는 필자에게 너무도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그 기사의 내용이 바로 보수동헌책방골목이 점점 좁아지고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부산을 방문하면 꼭 이곳에서 반나절 이상을 머무르던 추억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더 중요한 것은 이 기사의 말미에 헌책방을 취급하는 곳들이 전국적으로 사라지고 있으며,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그 존재가 영원히 없어질지도 모른다니. 아! 온몸을 타고 흐르던 그 비통함이란.     

 이러한 일대의 사건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사이 미디어 매체의 급성장을 이루어왔다. 정적인 것이 동적인 것이 되었고 동적인 것은 더욱 격렬한 동적인 것을 원하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을 비롯한 무선 전파들은 속도라는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으며, 어느 순간 사람들 역시 이 속도에 압도되어 누가 더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는지, 누가 더 빠르게 정보를 활용하는지 다투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가 정적인 활동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누가 오랜 시간을 들여가며 책을 읽겠는가?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매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심지어 독서 역시 종이책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전자책이라는 미디어가 더 각광 받게 되었다. 더불어 이러한 변화는 긴 글보다 짧은 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였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나 테블릿PC를 통해 버스나 지하철에서 혹은 짧은 휴식 시간 중 간단히 읽을 수 있는 글들을 선호하게 되었다.(그렇다고 해서 시와 같은 짧은 장르의 글이 많이 읽히는 것도 아니다. 짧은 한두 개의 문장을 통해 전해지는 감동 그리고 SNS와 같은 미디어를 통한 감동의 공유를 사람들은 선호한다.)

 이와 더불어 통신매체의 발달은 헌책방이 사라지는 것을 더욱 부추겼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의 발달이 가져온 구매 패턴의 변화이다. 직접 발품을 팔아 사고 싶던 책을 고르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클릭 몇 번만으로 원하는 책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이러한 구매 패턴의 변화는 헌책방뿐만 아니라 새 책을 파는 서점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동네에 있던 조그마한 서점들을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었고, 심지어는 대형 서점의 존폐여부에까지 그 영향력이 가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넷 시장은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해 중고책의 구매와 판매를 간단하게 만들었고, 헌책방들을 하나둘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점점 사라지는 추억의 장소, 헌책방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서재에 꽂혀 점점 낡아가는 책들로 달래고 있던 어느 날 지인을 통해 놀라운 소식 하나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대도시의 헌책방들이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이 시기에 중소도시인 안동에 그것도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번화가에 헌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 오랫동안 맞지 못했던 책 특유의 향, 특히 오래된 책들이 함께 모여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그 향이 그리워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과연 그곳에는 얼마나 욕심나는 책들이 모여 살고 있을까? 또 어떤 책들이 함께 집으로 돌아가 서재의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될까?(그보다 방과 차를 굴러다닐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그곳에는 ‘오로지, 책’이라는 소박한 간판과 함께 또 다시 따뜻한 손길로 책장을 넘겨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이 문 앞까지 마중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을 더욱 뛰게 만들던 ‘오로지, 책’이라는 간판 위에 조그맣고 빨갛게 써져있는 ‘마리서사’라는 글씨, 마리서사란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으로 유명한 시인 박인환이 낙원동 입구에서 경영했던 그 서점의 이름이 아니었던가. 이곳을 중심으로 김기림, 오장환, 김광균 등의 선배 시인들과 교류하였고, 김수영, 김경린 등과 어울리며 훗날 1950년대를 대표하는 후반기 동인 결성에 밑거름이 된 장소가 아니었던가. 필자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소박한 간판과 오래된 책들이 만들어내는 풍광과 향기에 취해 환상의 문을 여는 것만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내부는 이미 알고 있던 헌책방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책들을 비치하기 위해 최소한의 동선 만을 허락한 책꽂이들, 책꽂이에 다 담을 수 없어 천장에 닿을 듯이 쌓아 올린 책들, 그리고 오래된 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종이가 간직한 특유의 냄새 그 환상의 공간에서 헌책방을 가득 채운 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읽으며 문을 닫을 때까지 나오고 싶지 않았다.(물론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환상의 공간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헌책방을 한 번도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도 이곳을 방문한다면 앞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이 가진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하지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기에 필자는 그 모든 바람과 설렘을 뒤로 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헌책방을 나오는 순간 당연하게도 양손에는 책이 가득 들려 있었다.(여기서 한 번 더 놀랄만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양손에 가득 든 책의 가격인데, 이 놀라운 가격은 직접 방문해서 경험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안동에도 책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헌책방이 생겼다는 소식과 함께 마지막으로 헌책방이 가진 매력 그것만은 꼭 말해두어야겠다. 헌책방이 가진 매력이란 바로……, 어린 시절 읽었던 혹은 어린 시절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책을 발견하는 일이다. 책꽂이를 유심히 하나하나 관찰하며 나의 추억을 발견하는 일, 그건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잃어버린 보물을 발견하는 것만큼 행복하고 설레는 일일 것이다.

 자, 그럼 옛 추억을 다시 꺼내보고 싶은 오늘, 추억 속 꼭꼭 숨어 있던 보물을 찾기 위해 헌책방이라는 신비의 세계로 긴 여정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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