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학 시인
〈안상학 시인의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창비, 2018)를 읽고〉
여름 방학 숙제 / 가족 신문 만들기 //
가족사진 붙이려니 / 유치원 때 찍은 거밖에 없다 //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 유치원 때 직은 거 //
수첩에 숨겨 둔 / 하나 남은 가족사진 //
붙일까 말까 하다 / 안 만들고 만다 //
이제는 / 엄마랑 아빠랑 같이 찍을 수 없는 / 가족사진
-「가족 신문」
산에 피면 산국화 / 산골 살면 산골 소녀 //
섬에 피면 섬 국화 / 섬에 살면 섬 소녀 //
서울 살면 서울 국화 / 나는야 서울 국화 //
아빠는 어디 갔나 / 아빠는 어디 갔나 //
엄마 따라 섬에 온 / 나는야 서울 국화 섬 소녀 //
하늘에 피면 하늘 국화 / 아빠는 하늘 국화 //
-「섬 소녀」전문
위 시는 2018년 세상에 나온 안상학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에 수록된 시다. 지금껏 소외된 사람들과 평범한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왔던 시인의 시가 여섯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는 더욱 깊어졌다.
「가족 신문」은 숙제하기 싫어하는 아이의 투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는 숙제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제 3학년이 된 아이가 만들 수 있는 가족 신문은 유치원 때 이미 끝났다. 아마 아이는 4학년이 되어도 5학년이 되어도 가족 신문 만들기 숙제를 영영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슬프다. 하지만 이 시가 더 슬프게 다가오는 건 아이가 엄마, 아빠가 없다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가족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과 하나 밖에 없는 가족사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섬 소녀」에서는 모든 것을 꽃으로 바라보는 순수한 소녀가 등장한다. 산에는 산국화가 피고, 섬에는 섬 국화가 피고, 서울에는 서울 국화가 핀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우리 곁에는 ‘국화는 모두 다 똑같은 국화일 뿐이지’생각하며, 국화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국화에 이처럼 다양하게 이름 붙일 수 있는 순수한 서울 국화 섬 소녀. 우리가 가진 꽃의 보편적인 상징으로 시를 본다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그런데 마지막 연에서 시는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를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소녀에게는 아빠가 없다. 아마 아빠는 하늘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녀는 국화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 주었듯 하늘에 핀 국화에도 이름을 붙여준다. 소녀의 시선이 닿은 곳마다 핀 국화, 하늘나라에도 분명 국화가 피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녀가 하늘 국화에 이름을 붙여준 순간 앞에서 이름을 붙여준 국화는 모두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된다.
시인의 시선은 여섯 번째 시집에 이르러 더욱 섬세해졌다. 아니 더 원초적인 곳까지 왔다. 자칫하면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아이의 복잡한 감정에 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이 시집에는 문제가 있다. 그 문제가 무엇이냐면 이 시집에는 ‘시(詩)’라는 글자 앞에 한 글자가 더 붙어있다는 사실인데, 그 글자는 바로 ‘아이 동(童)’이다. 그렇다.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는 동시집이다. 이런! 동시, 동시, 동시, 동시인데…….
안상학 시인의 동시집이 나온다는 소식은 내게 있어서는 특별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24개월 된 딸아이에게 밤마다 책을 읽어주던 내게 평소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함께 읽을 수 있는 기쁨을 주다니. 특히 딸과 함께 시인을 만난 적 있기에, 시인의 집 조그만 꽃밭을 함께 뛰어다닌 적이 있기에 함께 알고 있는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특히 딸과 시인의 첫 만남이 아직도 눈에 생생한데, 딸이 시인에게 꺼낸 ‘할비(할아버지)’라는 말에 얼마나 당황했던지, ‘아빠의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할비 아니야.’라고 서둘러 말했지만 역시 선생님이라는 단어보다 할비라는 단어가 가지는 발음의 편리함. 아마 안상학 시인도 살아오면서 할아버지라는 말은 처음 들어 봤을 거다. 시인의 얼굴에 얼핏 당혹스러움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으니까.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를 손에 넣은 날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딸아이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펼쳐든 동시집,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또랑또랑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시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외할머니에게 붙어살면서 / 할매할매 노래하지만
울 때는 / 엄마엄마엄마 웁니다 //
백 밤만 자고 나면 / 엄마가 온답니다 /
그땐 나도 엄마에게 붙어서 / 엄마엄마엄마 울 겁니다 /
매미처럼 착 붙어서 / 엄마엄마엄마 노래할 겁니다
-「매미 소리」중에서
그런데 「가족 신문」을 읽다가 그만! 꾸역꾸역 「가족 신문」을 다 읽고 「매미 소리」를 읽다가 그만! 나는 책을 덮어 버렸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가 동시라니!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동시라니! ‘아이들에게는 예쁘고 아름답고 즐거운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나는 더 이상 소리 내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안상학 시인을 만난 자리에서『지구를 운전하는 엄마』는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고 나를 변화시켜준 시집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내 질문에 가슴을 탁하고 치게 만든 시인의 대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왜 슬픔을 모른다고 생각해? 아이들도 어른과 같이 슬픔과 외로움을 느껴. 그렇기에 슬프고 외로운 시를 읽고 좋아하지. 그리고 슬픔과 외로움을 알아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거야.”
선생님은 / 무지개가 일곱 빛깔이라고 하신다 //
나는 / 아무리 봐도 / 셀 수 없이 많은 빛깔로 보이는데 //
선생님은 / 빨, 주, 노, 초, 파, 남, 보 / 일곱 빛깔이라고 하신다 //
답을 잘못 말했다고 / 벌을 섰다
-「무지개 ―소년 권정생」중에서
그 대답을 듣고 다시 펼쳐 든 시집에서 나는 한 편의 소중한 시를 발견했다. 무지개의 빛깔은 일곱 개가 아니다. 한 개도 될 수 있고, 열 개도 될 수 있고, 백 개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일곱 개를 정답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한 개, 열 개, 백 개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틀렸다 말하고 벌을 준다. 이처럼 아이들의 감정도 행복, 즐거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 우울함, 슬픔 등 수없이 많은 감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긍정적인 감정 이외의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들에게 틀렸다 말하고 벌을 준다.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무지개의 빛깔이 일곱 개가 아닌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아이들의 세계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스마트폰 사 달라고 며칠 졸랐다 / 아빠는 담배만 뻐끔뻐끔 //
학교 다녀오니 검둥이가 없다 / 앞마당에도 없고 뒷마당에도 없다 //
엄마! 검둥이 어디 갔어요? / 아빠! 검둥이 팔았어요? //
방문을 여니 / 아빠는 담배만 뻐끔뻐끔 //
울며불며 / 내 방에 들어가니 / 책상 위에 스마트폰 반짝반짝 //
검둥아 검둥아 / 나는 울고불고 / 스마트폰은 반짝반짝
-「검둥이 스마트폰」전문
위 시에서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기쁨? 슬픔? 아마 둘 다 일 것이다. 매일 함께 마당을 뛰어놀던 검둥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눈물이 흐를 만큼 슬프지만, 그토록 갖고 싶던 스마트폰이 생겼다는 사실에 눈물이 흐를 만큼 기쁠 것이다.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는 단순한 동시가 아니다. 아이들의 세계에도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한 가지 대답만 강요하지 않는 일을 알려주는 일종의 지침서다. 그렇기에 나는 이 동시집을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에게 더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 어른들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는 오늘 밤도 딸아이의 옆에 누워 이 동시집을 읽을지 모른다. 안상학 시인의 동시를 읽으며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가득 채운 다양한 감정들을 찾아 함께 운전할 지도 모른다.
안상학 시인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1987年 11月의 新川」이 당선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시집 『그대 무사한가』를 시작으로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등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를 시작으로 동시 창작에 열중하고 있다. 2019년 6월에는 제2시집 『안동소주』가 10년 만에 복간되었다. 최근 다음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또 어떤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