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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균탁commune May 18. 2023

우울증 환자로 살아가기

우울한 날들을 위하여(2)

 우울증 환자에게 치명적인 계절이 있다. 봄이냐고? 여름이냐고? 가을이냐고? 겨울이냐고? 정답은 모두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울증 환자에게 치명적인 계절은 바로 환절기이기 때문이다. 환절기가 찾아오면 나의 우울증은 더 심해진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해서 어떻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우울에서 만큼은 환절기가 최대의 적이다. 환절기가 되면 무언가 새롭게 변해야할 것만 같은 생각에 빠져든다. 그런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이 어떻게 변하겠는가? 그러면 나는 변화되지 않는 나의 삶에 또 우울이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삶을 변화시킨다면 우울증이 조금은 나아질까? 나는 삶을 변화시켜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하지만 정답은 알 것 같다. 답은 바로 '아니오'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변화된 삶에도 곧 적응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다시 우울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미친 듯이 일을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회사원이다. 회사일도 미친 듯이 하고, 아르바이트도 미친듯이 한다. 글도 미친 듯이 쓴다. 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삶은 더 우울한 곳으로 빠져든다. 무언가 재미난 일을 찾아 헤매고, 무언가 특별한 일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매일 생기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별한 일은 1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다. 그런데 그 특별한 일이 꼭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만은 아니다. 특별한 일은 불행이 되기도 한다.

 올해 유독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등졌다. 노환으로 죽고,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나의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버리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중 나의 아버지도 있다. 1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한 특별한 일,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가족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으려 노력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려야지만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빨리 가실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쉽게 보내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아버지가 내 꿈속에만 자주 나타났다. 어머니의 꿈속에도, 동생의 꿈속에도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나의 꿈속에 유독 많이 나타났다.

 아버지와 나는 꿈속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매일 똑같은 꿈이다. 장소는 조금씩 바뀌고 상황은 조금씩 바껴도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은 변화가 없다.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2년 전 조금만 땅덩어리에 텃밭을 가꾸셨다. 

 나는 그게 싫었다. 텃밭. 텃밭. 텃밭. 나는 그 땅에 꽃을 심고 싶었다. 꽃을 보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꽃씨는 한 번도 땅에 뿌려진 적이 없다. 

 아버지는 그 돌밭을 일구고 일궈 온갖 작물을 심었다. 그게 한이 되어서 일까? 아버지와 나는 꿈속에서 농사를 짓는다. 둘 사이의 대화는 일체 없다. 그것이 내 나이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며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의지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귀천하셨다. 다시 하늘로 돌아간 아버지. 가족들은 이제 그만 놓아주라고 말하지만 나는 놓아줄 수가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아도 아버지가 생각나고, 먹구름이 잔뜩 끼어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을 보아도 아버지가 생각난다. 비가 내리면 아버지가 더욱 많이 생각난다. 그럴 때면 차 안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환절기에 들어선 지금 이 계절을 함께 못하는 아버지가 있어 우울증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아버지를 부르고 참아보려고 한다. 아니, 참아야만 한다. 아버지는 내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으니까. 나는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버텨야한다.

 우울한 날들이여! 그리고 우울증에 걸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여! 나처럼 버텨야하는 이유를 하나 만들어 보자.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버텨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니까. 꼭 버티는 이유를 하나 만들어서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를 바란다. 

 버팀목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버팀목은 사라지지 않는다. 형체가 없어도 기억 속에서는 영원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버티자. 우울한 날들을 살아가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티자. 우리에게는 버티는 것 말고 남은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또 다른 날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제발! 제발!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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