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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철학

지하철에서 느낀 초조함

by bonfire

기다림의 철학: 지하철에서 느낀 초조함

오늘 아침, 나는 평소보다 10분 일찍 집을 나섰다.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이었기에 여유롭게 도착하고 싶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해 플랫폼에 들어서니 전광판에는 '열차 지연’이라는 붉은 글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5분 지연” -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플랫폼에는 나와 같은 표정을 한 사람들이 빼곡했다. 몇몇은 시계를 들여다보고, 어떤 이들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빠르게 훑으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5분의 지연. 객관적으로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닌데, 왜 우리는 모두 이렇게 초조해하고 있는 걸까?

시간의 주관성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로 정의했다. 우리는 단순히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의미를 부여한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5분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300초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놓칠지도 모르는 미팅, 상사의 실망한 표정, 앞으로의 업무 평가에 미칠 영향 등 수많은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시간은 주관적이다"라는 말은 철학적 클리셰처럼 들릴 수 있지만,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5분과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5분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이를 '지속(duré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시계가 측정하는 균질한 시간과 달리,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늘어나기도 하고 압축되기도 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5분은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질까? 여기에는 현대 사회의 특수한 시간 인식이 작용한다. 우리는 '시간은 돈이다’라는 자본주의적 시간관에 깊이 물들어 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지연’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일종의 '손실’처럼 느껴진다.

기다림의 불안

지하철 플랫폼에서 느끼는 초조함은 단순히 시간 지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더 근본적인 존재론적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 하이데거는 불안(Angst)을 통해 우리가 일상의 몰입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고 보았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 루틴이 갑자기 깨졌을 때, 우리는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서두르고 있는가?’, ‘이 반복되는 일상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쫓고 있는 시간은 진정 내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강요한 것인가?’

플랫폼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 5분 동안, 나는 문득 내가 얼마나 시간에 쫓기며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항상 '다음’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삶. 미래의 어떤 목표를 위해 현재의 경험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삶. 하이데거가 말한 '비본래적 존재(inauthentic being)'의 모습이었다.

기다림의 지혜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의 시간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성과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잠시 멈추는 것, 기다리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거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비생산적’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사유와 창조성의 원천이다. 니체는 "위대한 생각은 걷는 동안 찾아온다"고 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사유할 때 우리는 더 깊은 통찰에 도달할 수 있다.

지하철 지연으로 인한 '강제된 기다림’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 5분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의 호흡과 생각에 귀 기울일 수 있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이 사소한 행위가, 하루의 질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현대인의 시간과 초조함

현대 사회에서 '기다림’은 거의 소멸해가는 경험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음식은 배달앱으로 30분 내에 도착하고, 영화는 스트리밍으로 즉시 볼 수 있으며, 메시지는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모든 것이 즉각적인 만족을 약속하는 세상에서, '지연’은 일종의 실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심오한 경험들 - 사랑, 성장, 치유, 창조 - 은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것들은 서두를 수 없고, 알고리즘으로 최적화할 수 없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느끼는 초조함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기다림의 미덕’에 대한 무의식적 향수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의 해결책은 햇빛 속에서 목욕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 우리의 많은 고민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성격이 변화한다. 지연된 지하철을 기다리는 초조함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손실’이 아니라 '선물’로 바라볼 때,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달라진다.

일상으로 돌아와

결국 지하철은 7분 지연되어 도착했고, 나는 예상보다 조금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미팅 시작 5분 전이었다. 놀랍게도, 내가 그토록 걱정했던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다. 회의는 무사히 진행되었고, 아무도 내 지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아침의 초조함을 다시 생각해봤다. 그토록 강렬했던 감정이 이제는 하루의 사소한 에피소드로 축소되어 있었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로서, 나는 그 순간의 감정에 압도되어 있었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그것은 내 존재의 작은 부분일 뿐이었다.

다음 번에 지하철이 지연되면, 나는 초조해하는 대신 그 시간을 선물로 받아들여 볼 생각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호흡에 집중하고, 주변을 관찰하고, 혹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있어보는 것. 그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말한 '본래적 존재(authentic being)'의 작은 실천일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지연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과 맺는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다. 그리고 이런 성찰이야말로,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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