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권리에 대하여
우리는 쉴 줄 모른다. 아니, 쉬는 법을 잊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퇴근 후에도 머릿속은 일로 가득하다. 침대에 누워도 ‘내일 할 일’을 떠올리고, 주말에도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쉼은 선택이 아니라 죄책감이 되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을 칭찬한다. “열심히 산다”는 말은 미덕처럼 여겨지고, “요즘 좀 쉬고 있어”라는 말은 어딘가 불안하게 들린다. 우리는 쉼을 게으름과 혼동하고, 멈춤을 실패로 오해한다. 그 속에서 쉼은 점점 사라진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지루함은 진정한 사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목적 없는 순간이야말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두려워한다. 쉴 때조차 ‘잘 쉬어야 한다’는 강박이 따라붙는다. 명상, 요가, 여행, 독서—모두 쉼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결국 또 다른 자기계발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쉼은 권리다. 단순히 피로를 풀기 위한 기능이 아니라,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효율만으로 측정될 수 없는 존재다. 쉼은 우리를 회복시키고,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관계를 깊게 만든다. 쉼이 없는 삶은 방향을 잃는다.
나는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멈춘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든다. 그 시간은 나를 다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쉼은 나를 비워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채워주는 시간이다.
정치와 사회는 쉼을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휴식의 제도화, 쉼에 대한 인식 변화. 그것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인간 존엄의 문제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 잘 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쉼은 사치가 아니다. 쉼은 생존이다. 그리고 그 생존이 존엄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