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외로움에 대하여
청년은 늘 가능성의 이름으로 불린다. “아직 젊잖아”, “뭐든 할 수 있지”, “지금부터 시작이야.” 그런 말들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외로움의 시작이 된다. 가능성이라는 말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청년의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데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 속에서, 기대와 책임 사이에서 더 깊어진다. 가족의 기대, 사회의 기준, 스스로의 불안. 그 모든 것들이 청년을 조용히 고립시킨다. “괜찮은 척”하는 기술은 점점 능숙해지고, 진짜 감정은 점점 숨겨진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때, 사실은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것이다.” 청년의 외로움은 이해받지 못한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 막막함, 방향 없는 하루들이 말로 설명되지 않고, 설명해도 가볍게 흘러갈 때, 외로움은 깊어진다.
SNS는 외로움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모두가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모두가 무언가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나는 멈춰 있는 것 같고, 뒤처진 것 같고, 혼자인 것 같다. 외로움은 비교에서 자라고, 침묵 속에서 굳어진다.
청년은 선택의 시기를 살아간다. 어떤 길을 갈지, 누구와 함께할지, 무엇을 포기할지. 그 선택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고, 그 무게를 함께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청년은 자주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진다. 그 고독은 성숙을 만들지만, 동시에 상처도 남긴다.
나는 청년의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외로움이 우리를 더 깊게 만든다고 믿는다. 외로움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진짜 원하는 것을 묻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청년이란 시기를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청년의 외로움은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