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숫자다. 통장에 찍히는 잔고, 카드 결제 내역, 월세 이체 기록. 모두 숫자다. 그런데 그 숫자가 나를 지배한다. 기분을 좌우하고, 선택을 제한하고, 관계를 흔든다. 숫자에 불과한 그것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나는 26살, 학원 강사다. 하루 10시간 넘게 말하고, 설명하고,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가족과 함께 일하고, 책임을 나눈다. 그리고 400만 원의 빚이 있다. 그 숫자는 늘 머릿속에 떠다닌다.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 할 때, 심지어 쉬고 싶을 때도 그 숫자가 나를 붙잡는다.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다. 철학자 마르크스는 자본이 인간의 관계를 물질화한다고 했다. 돈이 많으면 존중받고, 없으면 설명해야 한다. 나는 종종 그런 시선을 느낀다. “청년이니까 아직 돈이 없지”라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그 말 속엔 묵시적인 기준이 있다. 돈이 있어야 어른이 된다는 기준.
돈은 선택을 제한한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 꿈보다 생존이 먼저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정치적 이상을 말하기 전에 현실적 계산부터 하게 된다. 돈은 나를 현실로 끌어내린다. 이상은 멀어지고, 계산이 가까워진다.
가끔은 돈이 무섭다. 그 무서움은 단순히 부족함에서 오는 게 아니다. 돈이 나를 규정할까 봐, 돈이 내 인간성을 침식할까 봐 무섭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며, 그 자유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돈은 그 자유를 협상하게 만든다. 나는 자유롭지만, 빚이 있다. 나는 선택할 수 있지만, 돈이 없다.
돈은 도구다. 하지만 그 도구가 목적이 되는 순간, 삶은 방향을 잃는다. 나는 그 무서움을 안다. 그래서 오늘도 계산기를 두드리면서도, 글을 쓴다. 돈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돈이 나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