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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란 단어가 주는 피로

by bonfire

청년이란 단어가 주는 피로

나는 청년이다. 뉴스에서도, 정책에서도, 거리의 현수막에서도 그렇게 불린다. 청년 주거, 청년 일자리, 청년 정책. 마치 청년이라는 단어가 나를 대변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단어에 점점 지쳐간다.

청년이라는 말은 가능성과 잠재력, 미래를 상징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 삶은 늘 현재에 갇혀 있다. 월세, 카드값, 생활비. 하루 10시간 넘게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과 함께 일하며 또 다른 책임을 짊어진다. 통장은 늘 마이너스고, 빚은 400만 원. 이게 청년의 가능성이라면, 나는 그 가능성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

정치에 관심이 많다. 관심이 있다는 건 아직 기대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년을 위한 정책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그 말이 나를 향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청년은 너무 넓은 말이다. 대학생도, 취준생도, 직장인도, 프리랜서도 모두 청년이다. 그 안에서 나는 자꾸만 지워진다.

청년이라는 단어는 때로 위로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책임처럼 느껴진다. “청년이니까 괜찮지”, “청년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 말들 속에서 나는 나이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사회를 본다. 청년이란 이유로 덜 받아도 되고, 더 참아야 하고, 더 싸게 일해야 한다는 묵시적 합의. 그 피로가 나를 짓누른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절망은 자기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때때로 청년이라는 이름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싫다. 나는 그냥 나이고 싶다. 빚이 있고, 가족과 함께 일하고, 정치에 분노하고, 때로 남탓을 하고 싶은, 그런 나.

청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피로는, 그 단어가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단어 속에서 나를 찾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청년이라는 말이 가능성만이 아니라 현실도 담아내는 단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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