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공허
죽을 고비를 넘겨 간신히 구한 코론도의 심장마저 아흐룸-이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스트룸은 한동안 무기력하게 우주선에 틀어박혀 새카만 어둠속을 바라보았다. 중앙 성계에서부터 출발해 그나마 돌아오는 것이 보장된 가장자리 성계까지 모든 곳을 탐험하며 사피엔샤가 거래하고 싶어 할 만한 것들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래.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가 도달한 모든 은하는, 다른 성간 상인들도 그만한 목적이 있다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으니. 그렇다면 이제 그가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눈 먼 공허를 넘어 소멸되어가는 차가운 은하의 부스러기에 닿는 것이었다.
눈 먼 공허, 카쿠스. 사피엔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그 피조물된 입장에서 알 방법은 없었지만, 그들은 첫 번째 폭발로 인해 탄생한 은하를 두 번째 폭발을 통해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처음 고리와 같이 생겨난 두 개의 은하 사이의 검은 틈은 시간이 흐르며 감히 건너는 것을 고려할 수 없는 거대한 공백이 되어버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 검은 만을 건너려 들었다가는, 두 번 다시 중앙 성계로 돌아오지 못한 채, 영원히 어둠 속에 갇혀버릴 수 있는-.... 무덤이었다.
"후...."
아스트룸은 크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그의 모행성에서 살아온 삶보다도, 그가 이 은하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기에 방랑의 시간이 더 길어진다 한들,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그의 편은 아무도 없었고, 그가 주저앉으면 그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은 채 무너져내릴 뿐이었다. 그러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언제나, 그는 사피엔샤가 내민 한정된 선택지에서 고민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우주선이 어둠속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별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가늘고 연약한 신호 뿐이었다. 누가 송신하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신호가 있다는 것은 그곳 어딘가에 살아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뜻이었으니 그 연약한 신호를 나침반 삼아 나아가는 것이었다.
"....."
중앙 성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성간 상인들은 카쿠스를 넘는 것이 사피엔샤에 대해 무례를 저지르는 행위라 믿는 이들이 있었다. 사피엔샤가 지워버린 실패한 은하는 그저 사라지도록 두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미지의 은하에 남아있는 이전 은하의 문명과 잔해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는 것을 숨기지는 못했다. 역설적이었지만, 그 또한 성간 상인이었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희귀하고 희소한 것 만큼 그들에게 중요한 건 없었으니까.
어쩌면 이 검은 만을 넘어 도달한 행성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엔진이 먼저 멈추게 될 수도 있었다. 도달하더라도, 다시 카쿠스를 넘지 못한 채 차가운 은하에 영원히 갇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곳에서야말로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야말로 이 은하에서 존재하는 모든 성계를 샅샅이 탐험하도록 모든 지성체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