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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사탕 Oct 20. 2021

반려묘와 함께 사는 방법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를 읽고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를 키우는 이야기는 종종 보곤 하는데 책을 통해 보는 것은 또 다른 맛이 있다. ‘시이’라는 암코양이를 키우고 있는 작가에게 종종 찾아오는 길고양이 시마짱은 재미있는 친구다. 집주인 고양이 시이가 없는 시간에 마치 자기집처럼 들어오는가 하면, 작가의 집 앞에 와서 사료를 먹고, 또 그 옆집 작가의 친구집을 들러서 날달걀, 우유를 수시로 먹고 간다. 눈빛으로 말하는 고양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고양이와 생활하는 작가는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모두 사실은 곰을 아주 좋아하는데 생명을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느릿느릿 걷고 있는 게 판다였더라면 총에 맞을 일이 없을 텐데. 불행한 곰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인간이 정말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라고 읊조리는 수밖에 없다.


곰인형을 그냥 상상으로만 만들어도 좋을 것을, 취미로 곰의 생명을 빼앗는 곰사냥 이야기, 곰발바닥을 파는 식당 등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동물에 대한 사람의 생각은 예쁘다, 혹은 징그럽다, 키우고 싶다 이런 단편적인 생각들이 대부분이 아니겠는가. 개와 고양이의 생명, 곰의 생명, 반려 동물의 생명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려인 중에 많은 수는 아니다. 하지만 점점 애완동물을 많이 키워나갈수록 이런 인식이 더 많아지는 것은 다행한 일인 것 같다.


개를 기르다 인간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식들이 독립하고 대화도 없는 한창 권태기를 겪는 부부의 집에 개가 들어왔다. 부부는 탐탁지 않아도 개를 위해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고 산책 도중에 알게 된 다른 개 주인과도 사이가 좋아졌다. 그리하여 부부끼리 어울릴 수 있는 벗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반면, 지인의 어머니는 공원에서 친해진, 마친가지로 개를 키우는 동년배 여성으로부터 “집에 놀러와요”하고 초대를 받아 개를 데리고 놀러 갔더니 거기서 고가의 냄비세트를 강매당할 뻔해서 깜짝 놀라 돌아왔다고 한다. 개를 통해서 친해진 사람이 느는 것도 다 장단점이 있는 모양이다.


반려동물을 키우게 되면 다른 반려동물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생기나보다.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만나는 것도 선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참 인생사 복잡하다.


나는 개를 기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함게 사는 동물의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성격이나 감정을 능숙하게 가늠해서 애정을 가진 주인이 길들이지 않으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껏 인연이 닿아서 찾아온 개와 생활하고 있는데 상대는 자신과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고 말을 걸어도 모른척만 하다니 서로 불행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주인의 잔소리는 더욱 심해지고 개는 삐뚫어져간다.


나는 개나 고양이를 기르면 다 주인의 말을 잘 듣고 통제에 잘 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동물프로에서 보면 꽤 흔하지 않게 주인을 제대로 주인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한다거나,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애완 동물이든, 사람이든 마음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대해주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애완동물이라고 내 마음대로 다 하려고 하는 것, 그것도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그 후 루루짱은 ‘가스미(화장터 이름)’라는 말에 이상하리만치 반응하게 되었다.

“가스미가......”

라는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흠칙하고 반응하고는 일어나서 주변을 걸어 다니거나 밥을 먹거나 주인과 눈을 마주치거나 울면서.

‘나는 아직 팔팔해요’

라고 맹렬하게 어필했다. 웃음을 참으면서.

“루루짱은 아직 팔팔하지? 더더 오래 살아라.”

라고 격려하면 그때는 무리해서 힘찬 모습을 보이지만, 어느새 다시 혹독한 수행에 몸을 내던진 ‘간디’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가스미’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야무지게 밥을 먹고는 주변을 걸어 다녔다. 고양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살고 싶은 것이다.


부모님의 고양이인 루루짱이 열여덟이 되어 곧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다가 우연히 화장터에 전화해 질문할 때 들었는지, 루루짱은 화장터 이름인 가스미만 나오면 번쩍번쩍 일어나서 먹고, 기운찬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같은 모양이다. 어떤 고양이들은 죽을 때가 되면 아예 인간에게 보이지 않도록 집을 나가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들이 대학을 진학해서 집을 떠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요즈음,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은 키우는 것에 대한 책임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매일 산책을 해줄 수 있을지, 아프면 데리고 병원에 다니는 것을 할 수 있을지 등등 키우겠다고 생각하면 산더미같은 책임이 따른다. 그래도 가족이 생긴다는 것, 마음을 기댈 곳에 생긴다는 것은 참 매혹적인 유혹이다. 완전히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될 때 함께할 반려견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위로받고,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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