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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사탕 Nov 08. 2021

진정한 29 센티미터

(이상권의 29센티미터를 읽고)


무엇이 29 센티미터일까? 평소 자주 30cm의 자를 썼던 탓인지 그 길이가 어느정도는 짐작이 된다. 이 책 속의 29센티미터는 머리 길이다. 남자아이, 주인공 시하의 머리 길이다. 시하는 2학년 겨울에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사 설라딘의 실수로 가위에 왼쪽 귀를 베어서 꿰매야 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이후로 시하는 가위를 보면 겁이 나서 머리를 자를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엄마 아빠는 처음에는 조금 걱정하다 머리를 기르는 것에 대해서 아무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도리어 용기를 주었다.



머리가 점점 길어진 시하는 분홍색 머리띠도 쓰고 조금씩 머리 긴 것에 적응을 해 나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남자인 시하의 머리가 길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대표로 할아버지와 고모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시하의 머리 길이에 대한 많은 불편을 주게 된다. 어른들의 생각이 잘 바뀌지 않고, 정해진 것이 아닌 무엇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하고 힘이 든다. 이야기 속에서는 할아버지, 그리고 시하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난리를 치는 남자 어른들. 그들에게는 남자의 긴 머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



시하는 머리가 29센티미터일 때 자신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 겁내던 가위를 마주했다. 왜 머리를 자르려고 결심을 한 것일까? 그건 아픈 할아버지를 문병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재은이 때문이다. 재은이는 암 때문에 아예 머리가 하나도 없다. 시하는 자신의 머리를 잘라서 가발로 만들어 재은이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5cm가 넘어야 누군가에게 머리를 기증할 수 있단다. 염색 같은 것도 없어야 하고 말이다. 재은이 덕분에 버킷리스트도 알게 되고 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은 시하는 머리를 자르려고 용기를 내게 된다.


가끔 생각한다. 사람의 생각은 변화가 있을까, 아니면 어렸을 때 만들어진 그대로 쭉 살아가게 될까. 우리가 기성세대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비난도 하게 된다. 현재 있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언가 다른 것, 혹은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형태를 바꾸고자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말이다. 그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은 현실의 어떤 체계든 바뀌는 것을 싫어한다. 새롭게 생각을 바꾸는 것, 그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인가보다. 익숙한 것에서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불편을 느끼고, 그 불편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시하를 다치게 했던 설라딘 아저씨도 시하와 같이 머리를 길렀고, 시하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머리를 잘라서 기부를 하게 된다. 시하가 두려웠던 가위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픈 친구에 대한 응원 때문이었다. 우리는 두려운 것을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은 많이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지다.


시하가 적은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한참 웃었다.


1. 빡빡머리 해보기

2.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세계에서 가장 머리 긴 사람 만나기

3. 아이들만 가득 태운 지하철 운전해 보기

4. 재은이랑 지하철에서 짜장면 먹어 보기


시하는 혼자 지하철을 타는 것을 좋아한다. 시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우리는 참 많은 것들에 그냥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보고 마주하고, 만나는 것들이 아니면 불안한 마음. 그 속에 도전이라는 것이 불편하다면, 나도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나 보다.


책을 덮으면서 29 센티미터라는 제목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이면서 동시에 나를 있는 그대로 지킨 그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책의 재미와 감동을 과연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동화를 읽어가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부딪히는 질문은 어른들이 쓴 이런 메시지가 들어 있는 동화를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까’ 하는 질문이다.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동화라는 것은 무엇일까? 동화 쓰기를 연습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자주 질문하게 된다. 마음에 닿는 동화를 쓰고 싶은데 정말 어렵다. 그리고 이 책처럼 많은 것들을 줄 수 있는 책이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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