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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사탕 Feb 18. 2022

정재찬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읽고 -1장

정재찬 교수의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 네번의 시 강의’라고 쓰여진 이 책을 작년에 읽었을 때 참 오래 마음이 울렁거렸다.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읽고 나서 내 마음의 술렁임이 낯설기도 했고, 또 따뜻했다. 잊고 지내다가 독서 모임 때문에 다시 읽으면서 내 마음이 움직인 이유가 문득 ‘작가의 이야기들이 지금의 내 마음과 딱 맞는 탓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 내가 자꾸 마음을 주는 것들이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과 잘 연결되어 있는거다. 책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흥미롭게 읽는다고 나에게 정말 의미가 생기거나 연결점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 고민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면 온통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책과 만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냥 한 챕터씩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내 생각을 길게 연결하기보다 책에서 마음을 움직인 구절을 잘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잠깐씩 꺼내 보는 비밀 상자 같이 만들어 두면 오래도록 내 마음이 어땠는지 곱씹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1장 밥벌이, 2장 돌봄, 3장 건강, 4장 배움, 5장 사랑, 6장 관계, 7장 소유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1장 밥벌이


<생업> 먹고 사는 일이 서러워질 때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퇴근길 -안도현-


우리가 삶을 버티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 이것마저 없다면’하는 그것 하나만 있어도 의외로 버텨지는 게 삶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를 위로해주는 가족만 있어도,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이 있으면 우리는 버틸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이어도, 아직 취업을 못하거나 심지어 직장을 잃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힘, 그 희망이 있다면 우리 삶은 견딜 만해집니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며 지켰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만으로도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던 그 환란을 이겨낸 게 우리들이지 않습니까.(p23)


그럴 때 남궁인교수는 아우성대는 환자에게 다가가 이마에 깊게, 푹 손바닥을 얹는답니다. 놀랍게도, 그러면 온순해집니다. 조용해집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아마도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의사에게 이마를 맡길 것입니다. 온기의 힘이 그렇습니다.(p30)



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빰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우리 직업의 본질이란 이처럼 사람들이 모두 같이 살려고, 나도 살고 너도 살리려는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덧 그런 본질들은 다 사라지고 당장에 먹고살아야 하는 지겨운 밥벌이가 되어버린 것, 그렇게 살다 보니까 누구는 취업을 못해서 힘들고, 누구는 그 직업을 유지하느라 힘들어하고, 누구는 유지하지 못해서 힘들어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내가 하는 어떤 일로 누군가의 이마를 덮어줄 수 있다면 그 일이 그 순간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지진 않을 겁니다. 우리도 서로의 이마에 손을 내밀고 그 손에 이마를 맡길 수 있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게 우리 모든 업의 본질이 아닐까요. (p33)


먹고 사는 일만큼 인간에게 가장 절대적이고, 어렵고, 그 안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또 있을까? 이제 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나 혼자 스스로 명퇴하려고 마음먹은 퇴직 말이다) 나로서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두 가지를 걱정하게 된다. 첫째는 내가 돈을 벌지 않고도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된 두 녀석 중 첫째는 트럭 운전을 해서라도 먹고 살거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그녀석이 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 벌어서 먹고는 살 것 같다. 둘째는 용돈을 받으면 옷과, 장신구, 카드 같은 소소한 물건을 사는 것으로 다 써버리고 간식비도 남기지 못하는 대책 없는 녀석이다. 호텔경영학과 같은 전공을 말하면서도 영어 공부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는 할까? 밥벌이의 숭고함에 대하여 느끼는 날이 오기는 하겠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지켜봐야 하는 엄마는 속이 탄다.


<노동> 소금이 녹아 눈물이 될 때


소금시 


                                                 윤성학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거친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은 눈물의 맛입니다. 그냥 눈물의 성분이 짜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소금은 눈물 없인 얻을 수 없는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장인을 샐러리맨이라고 부를 때, 그때 ‘샐sal’의 라틴어 어원이 바로 소금입니다. (중략)


윤성학 시인의 <소금시>에 따면 내 몸이 바로 소금입니다. 먹고 살려는 내 몸속의 피와 땀과 눈물을 내줍니다. 귀한 소금을 내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귀한 소금을 받아 그걸로 몸을 만듭니다. 이 처절한 순환, 정말 울고 싶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울면 다 녹아버리는 게 소금입니다. 그러니 울지 말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겁니다. 마치 소금을 봉급으로 받던 로마 병사처럼, 우리는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소금 방패를 들고 싸워 이겨내야 할 소금 병정인 셈입니다.(p41)


소금사막을 오르는 사람들


직업이 꿈이런가로 쓰여진 소제목에서 잠시 멈칫했다. 바로 내가 늘 걱정하던 거라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늘 아이들은 직업만 말한다. 선생님이요,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요즘에는 이런 대답을 하는 친구들이 늘어간다. 30명이 있던 반에서도 아이들 중 단 한 명도 직업이 아닌 세계 여행이요, 혹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거요, 이런 대답을 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직업 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살면서 꼭 이건 하고 죽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고 해야 간신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든지, 우주 여행을 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겨우 10살 밖에 안된 아이들도 꿈은 바로 직업이다. 왜 우리는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일도 행복하고 삶도 행복하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일부터 행복하게 만들 수 만 있다면 워라벨 문제도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 있겠건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워라벨을 위해 일을 좀 내려놓고 삶의 질을 높이자는 문제만 해도 단순하지가 않으니 말입니다.(중략)


일이냐, 삶이냐, 문제는 그 둘 간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인생을 일과 삶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 어차피 일도 인생이고 삶도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생을 사랑하는 자는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편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과 삶, 둘다 놓치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쩌면 그 둘 중 하나라도 붙잡고 있는 것도 대단하다. 요즘, 이 둘 다 붙잡지 못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는 어느 쪽일까? 내가 둘 중 하나라도 붙잡고 있기는 한 것인지 자꾸 물어본다. 언제쯤 나는 명쾌하게 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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