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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Sep 03. 2023

단렌즈와 줌렌즈

관점의 차이가 만드는 사진의 차이

카메라에 단렌즈를 끼우면 사진이 달라질 수도 있다.


명동거리


줌렌즈를 쓰면 사물을 보는 시선은 넓어지고 얕아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사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 탐색의 범위가 넓어지지만, 한편으론 어느 하나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 또한 렌즈화각의 성질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줌-링으로 프레임만 조절해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들기 쉽다. 두뇌의 창의적 기능이 활동을 멈추고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을 타진하지 않게 되면서 진부한 사진을 찍기 쉽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 쉬운 것 같다.


줌렌즈는 여러 개의 단렌즈를 동시에 사용하는 효과가 있어서 편리하지만, 그 편의성에 내포된 독소(毒素)도 있다. 줌렌즈를 가졌을 때는 틀(사진 프레임)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할 필요가 없다. 틀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으니, 눈앞에 뭐가 나타나든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넓은 영역을 프레임에 담을 수도 있고 좁게 담을 수도 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상관없이, 전부 적절한 구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줌-링만 돌리면 프레임의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다 보니 '틀에 얽매여서 쩔쩔매는 일' 같은 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관심은 주로 (틀이 아닌) 피사체를 향하게 된다.


운해는 생길까?

해가 떠오를까?

저 앞에서 뭔가 멋진 게 불쑥 나타나지 않을까?


눈앞에 뭐가 나타날지,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 외부세계를 관찰하며 주어지는 상황에 맞춰서 사진을 찍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고, 더 이상 묻지 않게 된다. 그 대신, 눈 앞에 뭐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이 벌어 질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된다. 다양한 틀을 갖고 있으니, 무엇이 나타나든 그대로 고스란히 프레임 안에 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듯하고 완벽하지만,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프레임의 사진만 찍게 되는, 은밀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사진에 사람의 차이는 없고, 피사체의 차이만 보인다.


단렌즈를 쓰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좁아지고 깊어진다.


망원렌즈를 끼우고 있으면 주로 멀리서, 광각렌즈는 가까운 거리에서 피사체를 찾게 된다. 탐색하는 시선이 렌즈화각에 맞춰져서, 그 화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상황만 눈에 보이고, 다른 건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물론 봐도 별 소용이 없으니 볼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뒤로 물러서거나 걸어서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러설 공간이 없을 때도 있고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줌-링을 돌리듯이 빠르게 이동할 수 없어서 기회를 놓치기 쉽다. 틀의 한계 안에 갇히는 것이다. 한편 카메라 앞의 세상은 내가 마음껏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피사체가 고정된 틀을 가진 내 처지를 배려해 준다는 법도 없다. 그건 사진을 위해 마련된 세상도 아니며 정해진 틀을 위해 준비된 피사체도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진 틀(렌즈화각)로는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상황에 자꾸 놓인다.


그 때 비로소 틀의 한계를 인식하게 된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앞에 무엇이 있든, 현재 내가 가진 틀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 유효한 탐색의 범위 안에서나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된다. 고정된 틀을 쥐고 전전긍긍하다 보면, 누구라도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마련이다.


사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틀이고, 틀이 곧 사진이다.


어떤 것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그걸 한번 빼앗겨 보는 것이다. 줌렌즈를 쓰다가 단렌즈로 사진을 찍어보면 그 점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고정된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걸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게 된다. 틀은 변하지 않고, 내가 거기 맞추는 수밖에 없으니, 틀의 성질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아야 한다.


예컨대 망원렌즈의 틀은 좁고 얕지만 광각렌즈의 그것은 넓고 깊다. 그래서 내가 가진 틀의 성질에 맞는 대상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사물을 보는 관점과 시점을 바꿔야 한다. 사진틀을 음미하는 동시에 한정된 틀을 쥐고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뿐인 틀로 모든 것을 수용해야만 하는 그 제약이 사진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프레임이 비좁으면 다른 그림을 생각해봐야 하고, 남으면 남는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게 된다. 틀이 하나로 정해졌으니 그 틀에 맞춰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때 사진틀의 존재를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바라보는 대상이 달라지고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사진에 대한 태도가 변하면서 사진 찍는 스타일이 바뀔 수도 있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생소한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는 일이 자주 생긴다. 잘라내선 안 될 부분을 억지로 잘라내고, 포함하고 싶지 않은 요소들을 마지못해 프레임에 수용할 때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속사정이야 어떻든, 사진 프레임은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파격적으로, 무지막지하게 잘라낸다 해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든지 아니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최소한의 이유라도 댈 수 있어야 한다.


화가는 그려나가지만 사진가는 지워나간다.


화가는 백지에서 시작하지만 사진가의 출발점은 완성된 세상이다. 틀을 다루는 경험을 통해서 사진가는 세상을 더 창의적인 눈으로 보게 되고 기술과 감각도 발전할 수 있다. 그의 미덕은 주로 ‘빼는 기술’에 있다. 어쩌면 사진가가 화가와 차별화 될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믿는다면, 사진과 그림(회화)간의 차이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흔히들 말하듯이, 이 때 '사진은 뺄셈'이 된다.


기회와 가능성이 대폭 줄어드는 부분은 역시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결정적인 순간을 잡으려고 부리나케 렌즈를 바꿔 끼워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줌렌즈였다면 완벽하게 포착할 수 있었을, 멋진 기회를 얼마나 자주 놓치게 되는 지 생각해 보면, 왜 처음부터 줌렌즈로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카메라 마운트에 단렌즈를 끼울 때는 그 핸디캡을 감수하고 아쉬움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 그런 관점의 변화는 결국은 사진의 차이로 나타난다.


줌렌즈가 좋을지 단렌즈가 나을지, 선택을 할 때는 먼저 '내가 주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물을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담고 싶은지 아니면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싶은지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사진가의 기질과 성향도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는 카메라에 줌렌즈를 끼우고 사진을 찍으면 정신이 산만해졌다.


줌 기능이 없던 눈에 줌을 도입한 탓인지, 마치 내가 만능로봇처럼, 막강한 능력이라도 갖게 된 것 같았다. 환상적인 풍경에 매혹되어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고 카메라의 정교한 묘사력에 놀라면서,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 그러나 막상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 내가 대체 뭘 했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눈앞의 상황에 압도되어, 기계적으로 반응했을 뿐, 정작 내 의지로 뭘 한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풍경이고, 그림을 그린 주체는 카메라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내가 한 역할은 정작 무엇인지' 의문이 생겼으며, 가끔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확인을 해 보고 싶었다. 단렌즈가 그 갈증을 채워주었던 것 같다.


나는 종종 단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들고 길거리로 나갔다.

돌아올 때는, 마치 밀린 숙제를 다 한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사진을 보면서...

내가 재단한 세상의 모습에 애착을 느꼈다.

비로소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뿌듯한 만족감을 맛보았고, 내가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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