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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Sep 05. 2023

렌즈를 딱 하나만 산다면...

잊기 쉬운 사진의 한가지 특성에 대해

사진에는 아주 중요한 특성이 하나 있다.

이건 사진 만이 가진 고유한 성질이고 다른 활동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피사체 앞에 갖다놔야 된다'는 사실이다.

풍경사진을 찍으려면 풍경이 있는 곳에 찾아가야 하고, 인물사진을 위해서는 적당한 인물을 확보해야 한다.

그 일(사건사고)이 일어나야 하고, 그 순간에 내가 (카메라를 들고) 거기에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사진은 내가 뭘 하거나, 내가 어떻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실의 시공간에 원하는 피사체가 존재해야 하고, 내가 그걸 사진으로 촬영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건 글쓰기(문학)나 그림그리기(회화) 등, 다른 창작활동들과 구별되는, 사진 고유의 특성이다.

사진이 성립하는 전제여서, (사진가라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진의 피사체를 확보하는 그 일에 공짜는 거의 없다.


돈이 들거나 품을 팔아야 할 뿐 아니라, 때로는 행운이 따라야 하고 사회적 지위나 수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한 초보사진가들은 물론이고 베테랑 사진가들조차도, 이런 부분이 사진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다들 마치 자기 자신만 잘 하면, 일이 저절로 잘될 것처럼 믿는 것 같다.

사진찍기를 그저 피상적으로만 생각하다가 깜빡 했을 것이다.



“만약 렌즈를 딱 하나만 산다면?”


유투브에서 이런 제목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 나는 매크로렌즈를 선택할 것 같다. 화각은 100mm 내외, 조리개 최대개방수치는 f2.8이면 좋겠다. 망원화각을 편하게 즐길 수 있고 조리개를 게 열 수 있어야 표현의 여지도 지기 때문이다. 니콘은 105mm, 케논은 100mm f2.8 매크로렌즈가 있고, 소니에는 90mm가 있다. 물론 타사 카메라용 렌즈를 만들어 파는, 탐론과 시그마 등에도 비슷한 화각의 매크로렌즈들이 있다. 나는 현재 시그마 카메라와 시그마 105mm f2.8 매크로렌즈를 갖고 있다. 전에 다른 메이커를 쓸 때도 항상 100mm내외의 매크로렌즈는 보유했었다.


‘만약 렌즈를 딱 하나만 산다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다들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카메라를 주로 어디에 사용할 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어도 장롱신세가 되면 곤란하니, 어쩌다 한 번씩 쓰게 될 렌즈를 고를 수는 없는 문제다. 따라서 자주 쓰고, 많이 쓸 것 같은 렌즈를 고르는 게 정답이다.


만약 여행을 자주 다니고, 그 여행에서 사용할 렌즈를 고른다면, ‘작고 가벼운 광범위 줌렌즈’가 유용할 것 같다. 귀여운 자녀가 있고, 가족의 일상이나 이런저런 기념사진을 주로 찍는다면, 50mm 혹은 85mm 인물용 단렌즈나 표준화각의 줌렌즈가 좋겠다. 물론 그 중에서 어떤 제품을 고를 지가 또 하나의 과제로 남지만, 일단 범위는 좁혀졌으니, 주머니 사정과 취향을 감안해서 적절히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그렇게 카메라의 쓰임새가 분명한 경우라면, 굳이 ‘렌즈를 딱 하나만 고른다면’ 같은 질문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원하는 용도에 맞는 물건 중에 하나 고르면 된다.


질문을 하는 이유는 대게 앞으로 자기가 뭘 찍게 될지, 어떤 사진을 좋아하게 될지, 막연하기 때문이다. 그건 취미 삼아, 사진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당연히 있을 법한 현상이다. 이것저것 다 갖추자니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는 건 낭비이기도 하다. 그래서 ‘딱 하나의 렌즈만...?‘ 같은 질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물론 이 때, 가장 쉬운 선택은 ‘범용성’에 따르는 것이다. 어디에 많이 쓰게 될 지 모르니, 여러 용도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렌즈를 하나 고르는 이다. 하지만 그건 현명한 결정이 아닐 수도 있다.


처음에는 ‘표준 줌렌즈’를 떠올리기 쉽다. 대표적으로 24mm부터 135mm 구간에서 일정한 범위의 화각을 가진 다양한 줌렌즈가 있다. 예를 들어 24~70mm f2.8은 가장 대표적인 표준 줌렌즈로, 어느 메이커에나 있는 물건이다. 한데 니콘 제품을 예로 들면, 필터구경이 82mm에 무게는 1kg이 넘고, 가격도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타사 제품들도 비슷한 수준이다. 덩치와 무게와 가격을 보면, 결코 가볍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아직 어떤 사진을 좋아하게 될 지도 잘 모르는 초보사진가가 무겁고 거대한 렌즈를, 게다가 값이 싸지도 않은 물건을 사서 사진을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로 범용적인 번들렌즈나 그와 비슷한 물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화각의 표준줌렌즈지만 최대개방조리개가 (f4나 f4~5.6 정도로) 작은 렌즈들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이것도 저것도 다 가능하다’는 건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도 된다. 한 마디로 ‘어정쩡하다’는 것이다. 렌즈의 성능이나 사진 품질 때문만은 아니다. 얼핏 생각하면, 표준화각의 렌즈를 자주 쓰게 될 것 같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니콘을 쓰던 시절에 17~35mm f2.8과 24~70mm f2.8 그리고 70~200mm f2.8 등 대표적인 세 개의 줌렌즈를 다 가지고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적게 사용한 렌즈는 24~70mm f2.8이었다.


광각은 광각의 (강렬하고 뚜렷한) 맛이 있고, 망원은 망원대로 (부드럽고 시선이 집중되는) 독특한 특성이 있지만, 표준렌즈는 왠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물론 결혼식장에 가서 스냅사진을 찍어야 한다면, 표준줌렌즈는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각이 그 정도 공간에서 촬영하기 적합하고, 다양한 장면을 적절히 잘 잡아낼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장면을 찍을 때는 눈에 보이는 대로 잘 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진가들은 사진이 특별하기를 원하고, 평범한 것과 특별한 것 간의 경합에서 대부분 특별해 보이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드라마틱한 표현효과와 독특한 앵글을 원하고, 그래서 주로 광각이나 망원렌즈를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24~70mm f2.8과 함께 50mm f1.4도 가지고 있었지만 둘 다 잘 쓰지 않았고, 전문사진가들 중에도 아예 표준화각의 렌즈는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 부분은 그저 머릿속 생각만으로 예측하는 것과 실제 현실 간에 상당히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질문을 약간 고쳐서,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진을 주로 찍고, 어떤 렌즈를 제일 자주 그리고 많이 쓰게 될까?’


나는 이미 20년도 넘게 사진을 찍어왔고, 수도 없이 바꿈질을 해가면서 이런저런 렌즈들을 써왔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거꾸로 이렇게 물으면 답이 간단하게 나올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제일 많이 쓴 렌즈는 어떤 걸까?‘


그게 바로, 100mm 내외의 f2.8 매크로렌즈다. 나는 물론 생태사진에 약간 관심이 있다. 그래서 매크로렌즈를 살 생각도 했을 것이다. 자연을 좋아하고 꽃과 풀벌레를 찾아서 숲과 풀밭을 탐색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꼭 그 때문에 매크로렌즈를 많이 썼던 건 아닌 것 같다.


사진의 대상이 되는 ‘피사체’는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라, 실제 현실에 존재한다. 사진을 찍으려면, 항상 내가 카메라를 들고, 그 앞에 서있어야 한다. 문제는, 현실세계를 대상으로 뭘 할 때는 필연적으로 '현실적인 문제'가 끼어들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에) 피사체를 카메라 앞에 세우려면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양해를 구해야 할 때도 있지만, 실제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풍경사진을 찍으려면 이동에 필요한 경비와 품이 들고, 인물사진을 원한다면 모델이 필요하다. 사소하게는,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연주자를 촬영할 때도 악기 통에 돈을 넣어 주면 더 좋을 것이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에 들어 가거나,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것을 촬영할 경우도 있다. 그 때는 사회적 수완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간혹 특별한 권리나 자격이나 지위가 필요할 수도 있다.

단적인 예를 들면, 해외에 있는 오지로 여행을 가야만, 거기서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물사진을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에서는 사진가의 기술이나 감각보다, 그런 현실적 대응 능력이 사진의 성패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흔히 칭송하는, 솜씨나 감각 같은 건 나중 문제다. 예를 들어보면 실감이 좀 날까?


유능한 패션사진가가 (잡지에 실린 것과 같은) 멋진 사진을 찍게 된 이유는 그가 구도를 잘 잡고, 조리개와 셔터속도 다이얼을 잘 돌려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보다는, 그가 자기 카메라 앞에 유능한 모델을 세울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모델이 멋진 포즈를 취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연출력이 있어서라고 봐야 한다. 아마추어사진가는 결코 그 패션사진가처럼 멋진 패션사진은 찍지 못할 것이다. 그건 현실적으로, 그는 (그 패션사진가처럼) 좋은 피사체 앞에 설 기회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좋은 피사체 앞에 서는 일은 사진을 잘 찍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사진의 성패도 대부분 거기서 갈리는 것 같다.


길거리 스냅사진을 좋아한다면 35mm 내외의 단렌즈가 유용하다. 조리개 최대개방수치에 집착하지 말고, 작고 가벼운 물건을 고르면 된다. 풍경사진을 좋아한다면, 광각부터 망원까지 다양한 화각의 줌렌즈가 필요하다. 하지만 역시 조리개 최대개방수치에 연연할 필요 없이, 값이 싼 광범위 줌렌즈 하나면 충분할 것 같다. 인물사진을 좋아한다면, 조리개가 많이 개방되는 80mm 내외의 단렌즈가 최적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판단하면 실패하기 쉽다. 생각이 너무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길거리로 나가서 스냅사진을 찍는다는 게 그리 쉬울까? 나는 사진을 찍으러 시내 거리에 나갔을 때, 오고 가는 사람들 틈에서 쭈뼛대는 사진가들을 자주 본다. 시내 길거리로 사진을 찍으러 나왔지만, 카메라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겸연쩍고 부끄러워서 머뭇거리거나 주저주저하느라 사진을 제대로 못 찍는 것이다. 법이 허용하고 도덕적인 문제가 없는 범위 안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에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고, 오해나 실수로 인해 욕먹을 각오는 늘 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싫으면 현실적으로 거리사진을 찍을 수 없다.


풍경사진은 반드시 풍경을 찾아서 어딜 가야 한다는 제약이 따른다. 한데 그게 그리 간단한가? 만약 차가 없다거나 스스로 운전을 할 수 없다면, 남들 일정과 취향에 매이게 된다. 자동차를 보유한 사진동호인을 만나서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아예 풍경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다. 한 두 번이면 몰라도, 언제까지나 그런 식으로 (얽매여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명색이 '취미활동'이라면서, 그럴 수는 없다.


차가 있고 운전을 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일기를 보고 융통성 있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여러명이 약속을 해서 함께 다니는) 그런 방식으로 해서는 제대로 된 풍경사진을 찍기도 어렵다. 밤새 비가 왔지만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비가 그치고 안개가 자욱하면, 카메라 배낭을 챙겨서 집을 나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돈벌이도 아닌데, 휘발유를 쓰면서 혼자 차를 몰고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계속하다 보면, 누구라도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인물사진?


아마추어사진가가 (자기 가족 외에) 또 어떤 인물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전에는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때로 사진이 필요하거나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일반인을 섭외해서 좋은 배경이 있는 장소로 데려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자동차 경주장(용인 스피드 웨이 등)에 가서 무료로 레이싱 모델들을 촬영할 수도 있었다. ‘도대체 그런 사진들을 왜 찍느냐’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만족감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그런 일이 쉬울까? 하긴 요새도 모터쇼나 패션쇼가 열리는 행사장에 찾아가면 모델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사진활동의 핵심은 다른 게 아니라, ‘피사체와의 만남’에 있다. 만나야 찍든지, 잘 찍든지, 뭐든 해 볼 수 있다. 한데 자연 상태의 것이든 연출된 것이든 좋은 피사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만일 그 만남이 잘 성사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내가 찍으려는 대상을 만나기에 곤란하다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원할 때 만날 수 없다면,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사진 찍기는 그림 그리기와 차이가 있고, 작업은 환상 속이 아니라 실제 현실의 시공간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실 '공간'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시간'이고, 그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건 곧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로는, 내가 어떤 사진을 많이 찍게 될 지를 미리 판단하는 것조차 매우 힘든 일이 된다.


인물사진을 찍으려면 인물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도시야경사진을 찍고 싶다면 시야가 탁 트인 고층건물 옥상에 올라가기 위해 권한 있는 사람의 승낙을 받아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사진가가 남에게 부탁하고 폐 끼치는 일은 죽어도 못한다든지, 모르는 사람 앞에서 너스레를 떤다는 게 체질에 맞지 않는다면 그런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것이다.


풍경사진 역시 풍경을 찾아가서 그 풍경 앞에 도착하고 봐야 한다. 원하는 풍경을 만나려면 무수히 반복해서 찾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현실적인 일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싫다거나 형편상 여의치 않다면, 자기가 그런 사진을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별 다른 노력이 없이, 가능한 것들만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으면, 빤한 사진만 얻게 된다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매크로 사진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큰 장점이 있다.


피사체를 만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만남이 아주 쉽고 간편한 것이다. 가까운 숲에 가서 풀밭을 뒤지는 데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일도, 큰 어려움도 없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생태환경이 좋은 야외로 나가면 되고, 아니면 공원이나 집 근처 화단을 뒤져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래서 자주 카메라를 들고 나가 사진을 찍게 되고, 자연히 렌즈를 자주 쓰게 된다. 나는 봄에는 버들강아지를, 여름에는 녹음 짙은 이파리와 꽃을, 가을에는 풀벌레와 단풍사진을 찍었고, 겨울철에는 눈밭을 뒤져서 다양한 찍을 거리를 탐색해서 사진을 찍었다.


매크로 사진의 또 다른 장점은 ‘사진가의 역할이 잘 부각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내가 하기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피사체를 만난 뒤에,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앵글과 프레임을 구사해서, ‘구도’ 즉 네모난 틀 안에 들어갈 그림의 형태를 잡는 것과 렌즈 심도를 활용해서 (아웃포커스와 같은) 표현의 효과를 조절하는 것 정도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사체를 원거리에서 포착할 때는 앵글의 변화가 무의미해지고, 조리개를 열어도 심도변화로 인한 효과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앉거나 서서 촬영각도가 바뀌어도 거의 같은 사진이 찍히고, 프레임을 잡고 셔터를 누르는 게 사진가가 하는 역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근거리 촬영에서는 심도표현 등 카메라의 광학적 특성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시선의 각도에 따른 앵글의 변화폭도 커진다. 매크로렌즈의 광학적 특성은 최소 초점거리가 짧다는 것이고 그래서 피사체에 가깝게 접근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따라서 장치의 기능과 한계 안에서, 카메라의 모든 기능을 100%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매크로렌즈로 꼭 매크로 사진만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100mm 정도의 준망원 화각은 인물사진이나 풍경사진을 찍을 때도 유용하고,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거리사진에도 사용할 수 있다. 굳이 100mm인 이유도 있다. 50mm나 60mm 매크로렌즈는 초접사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다양한 매크로 촬영에 쓰기에는 약간 아쉬움이 있고, 150mm나 180mm는 매크로 사진용으로는 (100mm보다) 낫지만, 다른 용도에 두루 쓰기에는 화각이 다소 좁은 감이 있다. 또한 많은 상황에서 삼각대를 써야 하기 때문에 활용도가 낮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취향에 따른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래도 물론, 사진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매크로렌즈를 구입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다른 렌즈는 하나도 없는데, 매크로렌즈만 보유한다는 것도 다소 특이해 보일 것 같다. 하지만 카메라로 뭘 찍게 될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면, 별로 이상한 선택도 아니다. 야생화사진이나 생태사진을 좋아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경우가 아니라도 괜찮은 선택임에 분명하다.


특별히 원하는 사진이 있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매크로렌즈로 시작하는 건 괜찮은 선택이다. 카메라의 원리와 기계/광학적 한계를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고, 사진기술을 단기간에 마스터할 수도 있다. 프레임 구성하는 감각을 기르고, 주변사물과 빛을 사진구성에 이용하는 방법을 익히기에도 아주 좋다. 내 경우는 렌즈를 다 버리고 딱 하나만 남긴다면, 당연히 105mm매크로를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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