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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Aug 15. 2023

·사진찍기와 서핑하기

초보사진가를 위한 조언

내 생각에...


사진찍기는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에서 서핑보드를 타는 일과 비슷하다.

서핑을 잘 하려면, 시선은 항상 파도를 바라봐야 한다.

파도의 움직임을 터득하고 물살의 리듬과 강약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보드 위에 올라타면, 몸에 힘을 빼고, 파도에 순응해야 한다.

힘으로 밀어붙여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내가 간절하게 원한다고 해서 마냥 바다 위를 내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파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파도에 순응하며 균형을 잡는 것’뿐이다.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 무엇을 촬영하려고 한 것인지 그 의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의도를 분명히 하고 촬영에 임하는 것입니다. (...) 아래와 같이 제 느낌대로 트리밍 해 보았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좋은 사진은 전달력이 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배경을 단순화 시키는 것입니다. 위의 사진에서는 촬영자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듯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사진 속에 담아내고 있으나 (...) ]


[ 사진을 처음 시작하셨다면 우선 주제를 정하여 그것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촬영을 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정해진 주제를 크고 또렷하게 찍는 연습을 하시고, 이후에 주제를 더 강하게 해 줄 수 있는 부제를 함께 넣어 촬영하는 연습을 계속하시면 성과가 있을 겁니다. ]


[ 좋은 사진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눈꽃이 피어있는 나무를 촬영하셨는데, 이를 잘 나타내려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다든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 최대한 회색을 밝고 선명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 복잡하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간결하게 자신만의 느낌만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주제만 담아보시기 바라며 위의 사진들에 있어서 노출이 과다한 것 같으니 노출을 적게 주어 촬영한 사진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


[ 좋은 사진이 되기 위해서는 표현하고자하는 주제가 뚜렷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인물이나 풍경, 접사 등 모든 종류의 사진이 마찬가집니다. 올려주신 야경사진을 보면 특징적인 주제를 나타냈다기보다는 그냥 전체적인 풍경을 촬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의 선이 끊어지지 않고 나오는 위치에서 촬영했다면 도로의 선이 그 주제 역할을 할 수 도 있습니다. 촬영 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하고 촬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인터넷 사진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 의 사진클리닉'이라는 제목이 붙은 게시판을 보았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초보사진가가 사진을 올리면 어떤 사진가가 그 사진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고 조언을 해주는 코너였다. 사진선생이 어떤 조언을 하는지 궁금해서 조언한 내용이 담긴 댓글을 읽어 보았다.


의도, 전달력, 주제, 표현, 느낌, 단순화, 크게...


사진클리닉이 성립하려면 먼저 그런 걸 원하는 사진가들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자기사진에 대한 남들 평을 듣고 싶어 하는 사진가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라도 남의 사진을 두고 함부로 가타부타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자기 사진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술적 자존심' 같은 게 작동하는 걸까?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에 좌절하고 상처 입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보았다. 그래서 스스로 항복하고,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섣부른 조언이나 부정적인 말은 내뱉지 않는 편이 낫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사진을 두고 평을 할 수 있는 두 경우가 있다.


하나는 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없고 사진에 익숙하지 않은 '완전한 초보사진가'인 경우다. 사진 찍기가 일상처럼 되었지만, 아직도 그런 분들이 주변에 많은 것 같다. 초보사진가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사진을 잘 찍는 솜씨’가 ‘카메라를 조작하는 기술에 주로 좌우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면 수동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식의 엉뚱한 신념을 가진 경우도 종종 봤다. 장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 조작은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동작이 전부고, 인체 움직임이 결과물에 반영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테니스나 당구처럼 손목에 스냅을 주거나 스트록 속도 등을 조절할 일이 없으니, 조작에 대한 숙련도가 사진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 부분에 ‘별 게 없다’는 걸 깨달으면, 그 때, '초보수준을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이 경우에는 노출이 과다하거나 부족하다든지, 손 떨림을 예방하기 위해 셔터속도를 높이라거나,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카메라를 잘 쥐라는 식의 조언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노출문제나 흔들린 사진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사진과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는 사실이 분명한 경우에나 그런 조언을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어떤 사진가가 (진심으로) 자기사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는 경우다. 그는 남들이 자기사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속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자기가 사진을 잘 찍는지 혹은 지금 사진을 제대로 찍고 있는 건지 도무지 혼란스럽다. 이런 경향은 아마추어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아주 흔한 것 같다. 잘 찍은 것 같기는 한데 정말 잘 찍은 사진이 맞는지, 내가 잘해서 잘된 것인지 등에 대해 도무지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대상과 주변 환경에 의존적이고 기회와 우연에 의해 성패가 좌우되는 사진의 속성 탓이 클 것이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목적과 의도가 분명치 않다 보니, 아마추어사진가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의문이기도 하다.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원래 무용(無用)한 것들에 대한 가치평가는 애매하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 때의 평가는 남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몫'일 뿐이라고 봐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또 그렇게 되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동호회에 가입해서 사진을 게시하지만, 전부 칭찬 일색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아쉬운 점을 언급하는 이는 없다. 사람들이 내 사진 뿐 아니라 모든 사진에 '좋다'는 식의 댓글을 다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좋아서 ’좋다’고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는 자기 사진의 미흡한 점을 파악하고 그 부분을 개선해서 발전하고 싶지만, 참고할만한 지침이나 단서가 없어서 몹시 아쉽다. 그래서, '자존심 방어막'을 열어 젖히고, 다른 사람의 진심어린 평을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 사진클리닉은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언을 구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진과 카메라에 대해 충분히 무지했고 또 예의가 발랐다. 많은 학생들이 사진선생의 조언을 통해서 '강렬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며, 무척 감사하다'는 식의 인사말을 남겼다.


그런데 나는 왠지 그 사진 선생의 조언이 실제로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읽어보니, 마치 '화판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학생에게 조언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진찍기'는 '그림 그리기'와는 다르다. 결과물은 비슷할 지언정, 접근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화가는 그림을 자기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 이젤 앞에 꽃이 한 송이만 있어도 캔버스에는 ‘꽃이 가득 핀 들판’을 그릴 수 있다. 그는 해가 뜨지 않아도 일출풍경을 그릴 수 있고, 운해가 없어도 운해가 넘나드는 신비로운 능선과 산봉우리를 그릴 수 있다. 비록 모델이 (객관적으로 볼 때) 아름답지 않더라도 (내면을 눈을 떠서) 아름다운 인물화를 그려낼 수도 있다. 그림은 화가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그려지고, 그림 그리기에서 중요한 건 전적으로 그의 의도와 솜씨다.


그러나 사진은 그렇지 않다. 사진가가 꽃이 가득 핀 들판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 앞에 그런 들판이 펼쳐져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원하는 앵글과 프레임을 구사할 수 있게 시야가 확보되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접근하거나 물러설 수 있어야 하며, (원한다면) 좋은 빛이 드리워져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모델이 있어야 아름다운 인물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가는 기억이나 상상력을 동원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자기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진에서 중요한 건 사진가가 아니라 피사체와 그것이 놓인 환경 즉, 외부조건들이다.


선생의 조언을 듣고, ‘깨달음 얻었다’고 생각했던 초보사진가들이 나중에 현장에서 그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까봐 나는 약간 걱정스러웠다. 조언대로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생의 조언에 따라서, 앵글을 낮춰 하늘부분을 줄이고 꽃이 핀 화단을 더 많이 담으려고 해도, 화단 앞의 울타리 때문에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배경을 단순하게 구성해서 전달력이 좋은 사진을 찍으려니, 피사체 뒤의 배경이 가깝고 너무 산만해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배경을 단순하게 구성할 수 있는 조건에 놓인 피사체를 찾아야만 했는데, 그러다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걸 찍게 된다. 그러면 ‘의도를 분명하게 하라’는 선생의 조언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이 배경인 멋진 눈꽃사진을 찍으려고 힘들게 태백산에 올라갔지만, 하늘은 칙칙한 회색 빛이고, 흐린 날씨가 맑게 갤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 날이 더 많다. 주제를 잘 나타내기 위해 가깝게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유로 아예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다.


누구나 사진을 잘 찍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외부조건을 초월해서까지 사진을 잘 찍을 수는 없다. 누구나 ‘의도대로’ 사진을 찍고 싶다. 하지만 상당부분 ‘피치 못해서’ 사진을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찍기도 한다. 사진 프레임은 사진가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림을 그리듯이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문제다.


그의 의도는 피사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고, 외부 조건에 의해 너무 쉽게 좌절된다. 사진가는 늘 그런 것들과 타협할 수밖에 없으며, 때로 마음에 품었던 의도나 주제를 외부조건에 맞춰 바꿔야 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사진은 시각 매체이고, 비록 그게 전부는 아닐지언정,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를 도외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가 처음부터 일정한 의도나 주제의식을 품고 촬영을 시작했다면, 매 순간 '주제냐 형식미냐'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주제를 따르자니 형식미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형식미를 따르자니 엉뚱한 사진을 찍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유능한 사진가라면, 쉽게 자기의도를 (스스로에게) 강요하거나 억지로 '자기가 뭘 조절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대신, 그는 눈 앞에 놓인 것을 잘 관찰하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두고 고민할 것이다.




만일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초보사진가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먼저 대상을 잘 보세요.

사진찍기는 새롭게 뭘 만드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것에서 최선의 모습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내 의도나 생각 같은 건 잠시 접어두고 대상에 집중해야 합니다.

시선을 끄는 형태가 있다면 그 형태를, 질감이 있다면 질감을, 빛이 있다면 빛을, 색이 있다면 색을 포착하면 됩니다.


뭘 '표현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내 개인적 취향이나 개성이나 의견을 사진에 표현하려는 건 ‘욕심’입니다.

사진찍기란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피사체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피사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잘 살펴야 합니다.

사진에서 '표현'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옳지도 않습니다.


파도타기는, ‘타기’이긴 하지만, 그건 사람 입장에서 하는 언어표현일 뿐이다. 본질적으로, 파도타기는 ‘타기‘라기 보다,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파도가 사람을 떠밀고 다니는 것이고, 사람은 그저 판때기에 올라타서 그 위에 떠있는 것이다. 그 때 만약 ‘타려고 들면’ 넘어져서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은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 게 전부다. 


사진가에게 ‘피사체’는 서퍼의 ‘파도’와 같다. 피사체는 사진가가 ‘요리할 대상’이기보다, 순응해야 할 ‘파도’같은 존재다. 파도가 없으면 서핑을 할 수 없다는 걸 서퍼들이 당연하게 여기듯이, 좋은 피사체가 없으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걸 사진가들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피사체뿐 아니라, 카메라 앞에 주어진 '주변 환경조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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