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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Aug 16. 2023

·누가 사진가일까?

사진을 위한 사진 - 발상

공원에 나들이 온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전부 사진가인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가'는 누구일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그는 어떤 존재일까?

예컨대 글을 쓴다고 해서 전부 '작가'는 아닐 것이다.

작가인지 아닌지 알려면 그가 어떤 글을 쓰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일기를 쓴다거나 마트에 가기 전에 메모를 하고 가계부를 적는다고 해서 '작가'인 건 아니다.

아마추어이든 전업 작가든, 그가 시나 소설을 쓴다면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메모리카드 안에 들어 있는 사진을 보면 그가 사진가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나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가의 사진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까?

둘은 서로 목적이 다르니 (어떤 차이든) 사진에도 그 차이가 나타나 있을 것이다.

나들이 온 사람들의 관심사는 그날 있었던 일상의 사건들이고, 아마 카메라에도 그런 게 찍혀 있을 것이다.

기념할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을 지도 모르고, 단지 그 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사진가들은 사진을 찍으러 다.

달리 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사진을 위해서' 그런 장소에 찾아가는 것이다.

따로 기념할 일이나 특별히 기록해 두고 싶은 것은 없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진을 찍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사진찍기는 거의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적인 목적이 없을뿐더러, 여행을 기록하거나 신문에 보도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다.

뭘 기념한다거나 증명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따라서 사진은 '무엇을 위한 사진'은 아니라 오로지 '사진을 위한 사진'일 뿐이다.

그 날, 날씨는 유난히 맑았고 햇빛은 강렬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의문이 생긴 것이다.

나의 카메라 안에는 어떤 사진이 찍혀 있을까?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사람들은 나를 사진가로 인정해줄까?


서울숲


프로나 전업 예술가는 물론 아마추어까지 포함해서 말할 때, 만약 어떤 사람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를 화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악기를 연주하면 음악가나 연주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전부 사진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연필과 종이로 메모를 하듯이, 요즘은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니까. 더구나 근래에는 다양한 형태의 카메라가 있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이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그렇게 카메라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전부 '사진가'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누가 사진가일까? 전에는 커다란 삼각대에 SLR카메라를 올려 놓고 사진을 찍으면 대부분 사진가로 여겼던 것 같다. 당시 SLR카메라는 자동화된 기능이 적어서 조작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덩치가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좀처럼 그런 번거로운 방식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들지도 않았다. 일반인들은 주로 콤팩트카메라나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SLR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해도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사진을 찍는 경우는 드물었다. 따라서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그런 판단이 크게 빗나가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카메라 기능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고 경량화된 데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어 사진을 손쉽게 배울 수 있게 되면서, 요즘은 누구나 SLR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디지털 미러리스 카메라가 발전하면서, 카메라 크기가 (전문성을 나타내는) '고품질의 사진을 찍어 준다'는 식의 기준도 무너진 지 오래다. 게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꼭 품질이 좋은 사진 만이 좋은 사진인가?'식의 의문도 일반에 널리 퍼져있다. 따라서 이제는 길거리나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수많은 대중 속에서 사진가를 찾아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소형 디지털 카메라는 물론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진가도 많은 것 같다.


사진동호회 같은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모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 봐도 마찬가지다. 그 분들 중 상당 수는 '사진가'로 불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거기 섞여 있다. 자기가 운영하는 인터넷쇼핑몰에 쓸 상품사진이 필요해서 정보를 얻고 싶을 수도 있고, 홈페이지를 꾸미거나 블로그에 올릴 글을 위해서 음식사진이나 여행사진이 필요한 것 뿐 인지도 모른다. 또는 아이들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고 싶은, 소위 '엄마/아빠사진가'나 스튜디오를 대여해서 여자친구의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은 대부분 사진가가 아닐 것이고, 아마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사진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사진가일까?


나는 많은 사진장비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일반 사람들에 비해 좀 더 잘 다룰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진가란 그가 사용하는 장비의 양과 품질수준 따라 결정되는 걸까? 나는 사진집을 내거나 전시회를 한 적이 없으며, 공식 협회에 등록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것을 하게 될 것 같지 않은데, 그러면 나는 사진가가 아닌가? 전문가란 통상 무엇을 ‘잘하는 사람‘일 테니,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사진가일까? 그렇다면 나는 남들에 비해 사진을 잘 찍는 편일까? 근데 내 사진 솜씨는 누가 판정할 것이며 누가 나를 사진가라고 인정해 줄까?


만약 내가 사진가라면, 나는 무엇 때문에 사진가일까?


사진가란 누구인가?에 대한 정의로서 이런 건 어떨까?


‘일삼아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


예컨대 여행을 다니는 중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가 사진을 제아무리 잘 찍고, 많은 사진장비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진가가 아닐 수 있다. 그가 하는 주된 일이 여행이고, 그는 여행에세이를 쓰거나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서, 혹은 그냥 여행을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이 필요했을 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여행가나 여행작가일지언정 사진가는 아니다. 가족행사나 나들이 가서 사진을 찍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그 분들은 일상을 보내면서 사진을 찍는 것일 뿐, '사진 찍는 것' 그 자체 만을 목적으로 무슨 일을 벌이거나 어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일상이 없었더라면 사진도 없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 역시 사진 그 자체가 아닌 다른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 분들은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하지 않으면 사진도 찍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은 '사진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나들이를 계획하고, 때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모델을 고용하며, 사진을 찍으려고 뭔가 일을 벌이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의 목적은 '사진을 찍는 것'이고, 그의 행동은 전부 '사진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사진' 그 자체가 목적일 뿐, 그 밖에 다른 이유 없이, 무단히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이다. 그는 여행이나 나들이를 가지 않아도 사진을 찍을 것이고 심지어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사진은 계속해서 찍을 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사진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 처럼, 굳이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집을 나서는 사람은 사진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니, 사진 솜씨가 좋든 나쁘든 혹은 렌즈가 가득 찬 가방을 메고 대형 뷰카메라가 얹힌 커다란 삼각대를 지고 다니든, 손목에 작은 똑딱이 카메라만 걸치고 다니든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나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그의 카메라에 꽂힌 메모리 카드나 필름에는 남들과 다른 사진이 찍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안에 그의 일상이 찍혀 있거나 그의 여행이 찍혀 있지는 않을 것이다. 목적이 다르면 결과도 다를 테니까. 그러니까 그는 사진을 찍으러 나온 것이고, 그의 일상이나 그의 여행은 거기에 없을 것이다. 거긴 그냥 '사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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