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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Aug 24. 2023

·사진글쓰기의 어려움

엉뚱한 글을 쓰는 까닭

근래 나는 자주 사진을 찍으러 다녔고, 컴퓨터 사진폴더에 사진들이 많이 쌓였다.

어쨌거나 사진은 몸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몇 장은 찍어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이 자꾸 쌓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았다.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쓸 수가 없었다.


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글을 쓰지 못하다 보니, 사진도 올릴 수가 없었다.

나는 늘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던 것이다.

글을 못쓰는 시간이 길어지자, 빛(?)도 못보고, 그냥 사진창고(하드디스크)에 묻히는 사진이 점점 늘어갔다.

조바심을 쳐도 글은 좀처럼 써지지 않았다.

몸으로 하는 사진찍기와는 달리, 글쓰기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나는 사진을 클릭하기 전에 걱정부터 들었다. 그 분은 사진동호회 게시판에 사진을 올릴 때, 항상 글을 함께 적었다. 그래서 오늘도 사진 밑에 예의 그 상투적이면서도 교훈적인 글이 적혀 있을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대게 유명 철학자의 책에서 가져온, ‘삶을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식의, 유익하지만 진부한 글이었다. 나는 좋은 글을 그런 방식으로 읽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분은 사진 아래 서정적인 시나 개인의 감상이 잔뜩 실린 글을 적기도 했다. 사진을 클릭해서 열어보면, 마치 밤에 쓴 연애편지처럼,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았다. 글은 술에 취했거나 감상에 빠졌을 때 쓰였을지 몰라도, 읽는 나는 맨 정신이었다.


사실 글은 부담스럽다. 내 글을 남이 읽는 것도 그렇지만, 내가 남의 글을 읽는 것도 부담스럽다. 글은 쓴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것 같아서 글을 읽으면 마치 그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 읽다 보면, 은연중에 머릿속에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평가도 하게 된다. 글에 비하면 사진은 훨씬 덜 부담스럽다. 사진은 '찍은 사람'보다는 '찍힌 대상'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이 쓴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사진은 피사체를 비추는 거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진가는 필요하면, 피사체 뒤에 숨을 수도 있다. 남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마치 나와 별 상관없다는 듯이 시침을 떼는 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사진이 아름답지 않다'고 흉을 보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니라’는 식으로 변명을 할 수도 있다. 원인은 '그 때 날씨가 나빴거나 그 장소가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나빴을 뿐이고, 사진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나나 내 솜씨와 크게 상관이 없다. 색상이 천박하다고 해서 내 취향이 세련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사진에 나타난 분위기가 우중충하다고 해서 내 마음이 그랬던 것도 당연히 아니다. 이런 변명(또는 해명)이 어느 정도는, 먹힐 것이다.


하지만 글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글은 사진에 비해, '쓴 사람'을 더 직접적으로, 더 잘, 드러낸다. 그래서 흔히 글이 유치하면 사람이 유치한 것 같고, 표현이 서툴면 경박한 사람처럼 보이는 현상이 있다. 반대로 글을 세련되고 능숙하게 잘 쓰면, 마치 그 사람이 세련되고 유능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인 것 같고, 잘 쓰면 유능한 사람인 것 같다. 물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좀 더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다. 중요한 건 ‘그렇게 비친다’는 부분이다.




글이 그 사람을 대변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글은 자꾸 쓰면 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인격이 향상되거나 사람의 품성이, 따라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게다가 글은 사진과 달리, 쉽게 왜곡될 수 있는 성질을 가졌고, 흔히 상습적으로 왜곡되기도 하는 것 같다. 어쩌면 글 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자기 내면이 글을 통해 겉으로 비치는 상태를 자유자재로 왜곡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글은 주로, 자기 생각을 알리고 주장하기 위해 쓰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마음 속에 비치는 쓴 사람의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다. 남에게 사기를 칠 때도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진실한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있는 것처럼, 읽는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글이 설득력을 얻고 공감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써야 자기가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비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진정성이 있는 글은 오히려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이 쓰는 글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잘 다듬어져서 세련된 글에서는 좀처럼 쓴 사람의 속내가 읽히지 않는 것도 같다. 반대로, 글쓰기에 서툰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그 사람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글쓰기에 능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그 수준이나 의도 등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마치 바둑에서, 고수가 하수의 수를 빤히 내다볼 수 있는 경우나 이치가 비슷한 것 같다.


아마 사진 고수가 초보자의 사진에서 흠을 알아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걱정이 든다. '글 솜씨가 서툰 사진가는 사진에 글을 쓰려다가 공연히 일을 다 망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단지 글 솜씨가 '하수'일 뿐인데, 마치 사람이 '하수'인 것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다. 덩달아 애꿎은 사진까 불품없게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면 뛰어난 사진가가 그가 쓴 글로 인해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생길 것 같다. 물론 정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데 사진에 글이 꼭 필요하며, 굳이 잘 써야 할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얼핏 생각하기에, 나는 그럴 것만 같다. 사진은 세상의 한 장면(공간과 시간)을 포착하고, 3차원의 공간 중 어느 한 방향에서, 단편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건 마치 영화 포스터에 실린 스틸사진과 비슷해서, '정보'의 관점에서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사진 만으로는 일의 전후 맥락을 알 수가 없고, 프레임 밖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옆이나 뒷모습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사진에 담긴 메시지나 내용이 중요하고, 남들과 공유하고 싶다면, 글을 써서 부족한 정보를 보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함축적인 제목을 달고, 캡션으로 앞뒤 맥락을 설명하거나, 사진가가 자기 관점과 감회를 덧붙이면, 더 완성도가 높은 사진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사진가가 되기 위해서는, 길든 짧든,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사진가란 혼자서 보려고 (개인적인)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사진을 남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니까. 나는 글이 전혀 없는 사진을 볼 때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사진 만 봐서는 '어디인지, 무엇인지 또는 왜 그 사진을 보여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사진에는 글이 따라 붙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진이 멋지다면, 거기 어울리게, 글도 멋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진가들은 사진은 잘 찍지만, 글 솜씨는 서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진을 즐기는 분들은 대부분 글쓰기에 소홀했을 것이고, 나도 비슷한 입장이라, 그 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둘은 이질적인 분야라, 취향도, 소질도, 서로 엇갈리기 쉽다. 잘은 모르겠지만, 공간을 인식하고 다루는 기능에 속하는 사진과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작업인 글쓰기는 성질상 서로 상반된 분야인 것 같다. 두 분야에 다 관심이 있어서, 양쪽 다 잘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어쨌거나, 최소한 글이 사진과 사진가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건 내 소박한 소망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을 열어보면 대부분 글이 적혀있다. 물론 (아마추어니까) 의미심장한(?) 글이 적힌 경우는 거의 없다. 대게 촬영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그 때 느낀 감회를 가볍게 적은 글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아무 것도 적지 않거나, 사진과 상관없이, 그저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글도 제법 있었다. 그러니까 ‘사진을 위한 텍스트나 콘텍스트’라고 할 만한 글이 적힌 경우는 드물었다. 다들 글이 지닌 위험성을 잘 아는 것 같았다. 주로 자기 관점은 표현하지 않고, 자기 내면이 잘 드러내지 않는, 객관적인 글을 썼다.


하지만 어쨌거나 글을 적기는 했다. 아마 그냥 사진만 덜렁 올리려다가, '겸연쩍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사진을 여기에 왜 올리지?"

생각해보면, 사진을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왠지 명분이 빈약해 보이는 것이다. 남들 앞에서 호들갑을 떨 만치, 아름다운 장면이 찍힌 사진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사진도 아니고 새로운 사진도 아니다. 전에 다른 누군가가 이미 찍어서 올렸던 어떤 사진의 재탕일 게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하긴 사진이 얼마나 대단하고 충격적이어야, 제목도 없이(무제), 사진만 덜렁 올려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까? 웬만해선 힘들 것 같다.


나는 주로 ‘사진에 대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여기서 '사진'은 내가 올린 그 사진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진'이다. 흔히 사진이론이라거나 철학 또는 사진기법이나 경험 등에 관한 내용들이다. 지금 쓰는 이 글처럼, 사진에 대한 보편적인 글을 쓰면서, 항상 특정한 사진을 편집해서 함께 올린 것이다. 그래서 이게 ‘글이 적힌 사진’인지 아니면 ‘사진이 첨부된 글’인지도 애매하다. 글의 내용은 함께 올린 사진과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상관없는 사진을 올려놓고는 엉뚱한 말을 늘어놓은 셈이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내가 찍는 사진은 대부분 시각적으로 볼만하지도 않고 특별한 메시지가 담기지도 않았다. 아무나 갈 수 없는 어느 외국의 오지에 가서 찍은 것도 아니고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사물을 찍은 사진도 아니다. 유난히 아름답다거나 놀랍고 신기해서 남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피사체도 아니다. 물론 '치명적'이라든지 '결정적'이라고 여길 만한 사건을 담지도 않았다. 그저 소소하기 짝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찰의 결과들일 뿐이다. 그런 사진을 누가 보고 싶어 할까? 그걸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건 그야말로 ‘실없는 짓’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긴 누가 비싼 장비를 잔뜩 사서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면서 어렵사리 찍은 사진을 그냥 하드디스크에 처박아 두고 싶어 할까? 애써 얻은 결과물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심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내가 블로그에 정성껏 쓴 글은, 어느 정도, 그런 동기가 발단이 되었던 것 같다.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뭔가 명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엉뚱한 내용이긴 했지만) 그게 ‘글’이었던 셈이다. 아마추어 사진커뮤니티에 렌즈나 사진장비에 대한 사용기를 쓰면서, 사진을 무더기로 첨부하는, 그 사진가들의 심리도 아마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 모두 남들에게 사진을 보여줄 때 ‘어떤 명분이 필요하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 같다. 물론 내 경우는 그 방법이 변칙적이고 상식을 많이 빗나가기는 했지만.


사진에 써야 하는 글은 이런 글이 아닐 것이다. 이런 건 마지못해 쓰는 글이고, 동호회 게시판에 뜬금없이 사진을 올릴 때 의례적인 인사말을 적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생각해 보면, 사진에 글이 필요한 경우는 ‘사진을 남에게 보여줄 때’뿐이다. 혼자 보기 위한 사진이나 가족사진처럼, 사적인 사진에서는 글이 문제가 안 된다. 사진을 찍게 된 사건의 맥락은 내가 이미 잘 알고 있고, 메시지는 필요 없다. 그저 사진만 잘 찍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데 사진을 전시하거나 온라인에 게시해서 남에게 보여줄 때는 왠지 뭔가 글을 적어서 덧붙여야만 할 것 같다.


남이 먼저 보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보여주려다 보니, 그 이유를 말해야만 할 것 같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의미심장한 제목도 필요하고, 멋진 텍스트도 필요하다. 물론 그저 '명분'만은 아니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공감할 필요가 있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제대로 된 ‘사진 글’이라면, 사진에 포함된 메시지를 분명하게 만드는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진에 대한 사진가의 관점을 명확하게 해서, 보는 사람들이 사진에 공감하게 만들려면 텍스트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논리를 전개해서 뭘 설명하려고 들 필요는 없겠기에 (긴 글도 아니어서) 문장력은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문장일 수도 있고, 한 개의 단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광고 카피처럼 신랄하고, 시처럼 함축적인 글이어야 할 것 같다. 문장을 잘 엮어내는 글 솜씨와는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글을 쓸 때 가장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아마 나는 글을 장황하게 쓰는 데는 약간 소질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글을 적는다는 건, 나와 내 아마추어사진동무들에게는 다소 '느닷없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메시지가 담긴 사진은 거의 찍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거실이나 갤러리 벽에 걸린 풍경화처럼, 그저 '그림'일 뿐이다. 자연풍경을 찍은 사진뿐 아니라, 거기 무엇이 찍혀있든 마찬가지다. 간혹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긴 것처럼 보이는 사진도 있지만, 그 경우도 우리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즐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기 때문에) '목적'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목적이 있어야 의도가 따를 것이고, 의도가 있어야만 사진에 메시지도 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사진을 두고, '할 말'도 있을 것이다. 미리 전시(최소한 온라인에 게시할 목적이라도)를 염두에 두었더라면, 사진 아래 적을 말이 쉽게 생각날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태도로 출발했다면, 아예 다른 것을 바라보게 되거나, 전혀 다른 사진을 찍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몇 차례 그런 방식을 시도해보았다. 사진을 찍을 때 먼저 목적과 의도를 분명히 하고, 주제를 미리 생각한 채로 시작해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고, 그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나의 의도는 (흔히 날씨와 같은) 외부 조건에 너무 쉽게 손을 들었고, 생각은 늘 감각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누군가 말했듯이, '사진은 황금 비율 같은 디자인과 균형의 다양한 보편 법칙들로 선이나 모양을 만든 것'일 뿐이고, 나는 그 부분(사진의 형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날씨에 따라서 가는 장소가 달라졌고, 관심있는 주제도 아닌, 어떤 행사나 사건사고를 찾아 다녔으며, 심지어 빛이 비치는 상태에 따라서도 보는 방식과 대상이 달라졌다. 덕분에 처음에 의도하지도 않았던 사진만 잔뜩 찍어왔고, 인터넷에 사진을 올릴 때마다 어떤 글을 적어야 할 지 난감했다. 내가 직접 사진을 위한 피사체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따라서 결국 따지고 보면, 모든 사진이 '풍경사진'이고, 감각적으로 만들어진 '그림'일 뿐이었다. 오로지 감각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진에 문자언어를 덧붙인다는 건 어렵고도 겸연쩍은 일이었다.


“대체 뭐라고 써야할까?“


할 말이 없는데도 억지로 등을 떠밀려서, 연단 위의 마이크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 나는 문장과 사진을 결합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것을 시도해볼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 (이제 사진프로젝트다. 김성민著에서 발췌) ]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부분이 바로 ‘진정한 창작의 산물’이 아닌지 나는 의심스럽다. 말하자면, 주객이 전도되어, 글이 핵심이고 사진은 그저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얘기다. ‘결합’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내가 아는 어떤 사진동호인은 시인(詩人)이다. 오래 전에 등단도 했고 시집도 이미 여러 권 낸 분이었다. 그 분은 사진동호회 게시판에 사진을 올릴 때 항상 자기가 쓴 시도 함께 써서 올렸다. 감각이 뛰어나서 사진도 썩 잘 찍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진보다 그 분이 쓴 시를 더 좋아했다. 그리고 그가 고른 사진은 항상 시의 내용과도 너무 잘 맞았다. 한데 오히려 나는, ‘그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상적으로, 글은 사진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 같다.


글을 읽을 때는 읽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과 상상력을 통해서 각자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때 그리는 그림은 당연히 자기 기억에서 끄집어낸 개인적 경험이다. 남의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서 자기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식이다. 그래서 각기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게) 정서를 공유하고 글에 공감할 수도 있게 되는 것 같다. 남의 글을 읽지만, 마치 그게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 분의 게시물에서는, 시를 읽어도 머릿속에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유가 바로 '거기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가 사진에 갇혀서, 마치 사진 속 장면을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때문에 시를 읽어도 상상력이 자유롭게 작동하지 않았다. 시가 주는 감흥이 ‘내 것’으로 화(化)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사진이 없었더라면, 나는 내 추억과 기억 속의 다양한 장면들을 이용해서 머릿속에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래서 시에 한층 더 공감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비록 ‘남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내 머릿속에서 나와 내 아버지가 겹쳐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이 상상력을 마비시켜버리는 것 같았다.


사진은 글을 쓸 여지가 없다. 나는 사진을 보면, 자동으로 상상력이 가동을 멈추는 것 같았다. 사진이 가리키는 것은 늘 너무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서 (어떤 상상이나 해석을 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사진 속 사물은 현실에 존재하는 특정한 사물이고, 사건은 실제 사건이다.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건, 왠지 적절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빤한 얘기를 하는 건 겸연쩍다 싶었고, (이미 답이 있는데) 짐작으로 엉뚱한 말을 덧붙인다는 것도 민망한 일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찍은 사진에 대해 글을 쓸 수가 없었고, 그 대신에 사진에 대한 ‘보편적인 글’을 써서 사진과 함께 올린 것이다. 다소 엉뚱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궁여지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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