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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미로 Nov 05. 2024

처음 타르트를 사준 사람

내가 가끔 미칠 것을 알았던 사람

 얼큰하게 취한 남편이 들어와 훌쩍인다.

 "불쌍한 새끼, 불쌍해. 미친 새끼..."

채 잠들지 않고 아빠의 행동을 귀로 더듬는 아이들이 신경 쓰여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이젠 주정까지 하냐며 등짝을 후들기다가 슬며시 내 코도 닳아 오른다.


 내가 Y의 이름을 들은 건 첫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바래져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이미 유치원생 아이를 둘이나 가진 어엿한 가장인 Y는 남편의 몇 안 되는 학창 시절 절친이었고, 괄괄한 성격인 남편과 달리 유순하고 모범적이며 성실한 성격으로 묘사되었다. 당연히 우리 결혼식에도 왔다고 했으나 정작 주인공은 아무것도 중심이지 못한 그날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었고, 이름만 아는 Y가 뜻밖에 해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를 보러 우리 집에 온다기에 거절도 못하고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때의 나는 생각보다 빨리 생긴 아이와, 아이의 허약함과 낡은 신혼집의 열악한 겨울 속에서 혹독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이 한없는 모성애를 분출하지 못한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시기였다. 꽤 길었던 머리도 아무렇게나 자르고 여기저기 아이의 흔적이 묻은 수유티를 입고 있는 나를 보러 온다는 Y를 어떻게 맞아야 할지, 이런 상황을 전혀 짐작도 못하고 아무나 놀러 오라고 전화를 해대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짜증스럽기만 했다. 동물원에 새로운 새끼가 태어나면 구경꾼들이 몰려오고 뉴스의 한 자락에 실리듯, 내가 남편의 주변인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기분도 없지 않았다.

 오겠다는 시간이 꽤 지나고서야 남편에게 Y의 전화가 걸려왔고, 뜻밖에도 Y는 집에 들어올 생각이 없으며 남편만 잠시 나와서 얼굴 좀 보자는 것이었다. 몇몇 지인들은 그런 식으로 아이의 내복이나 과일 등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속으로 '그래, 영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군.'이라며 애써 갈아입은 그나마 덜 후줄근한 수유복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나간 잠시 뒤 별안간 초인종이 울렸고, 화면 지원과 통화 지원도 되지 않는 낡은 초인종을 탓하며 문을 열었더니 새까만 롱부츠에 금방 미용실을 갔다 온 듯 볼륨이 한껏 살아있는 커트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Y의 와이프 되는 사람이에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직접 보고 싶어서 잠시 올라왔어요."

 당당하고도 예의 있는, 무엇보다 지금의 내 모습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녀를 맞닥뜨리자 묘한 불쾌감이 올라왔지만 나는 그런 걸 표 내는 축이 되지 못했다.

 "아, 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잠시 들어오세요. 이 사람은 Y 씨랑 주차장에 그냥 있나 봐요. Y씨도 같이 들어오시지."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잠시 수다 떨겠죠. 잠시라도 회포 풀게 제가 올라온다 그랬어요."

 사려 깊은 그녀의 말에 속 좁은 내가 부끄러워졌고 온갖 육아용품으로 발 디딜 틈 없는 거실로 그녀를 들였다. 잠시 주위를 살피던 그녀는 내게 작은 상자를 내밀며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이 동네에 유명한 타르트 집 있는데 아세요? 제가 그 집 타르트 참 좋아하는데, 골고루 사 와봤어요. 수유 중이시면 이것저것 가릴 것도 많겠지만 가끔씩 미칠 것 같은 날엔 단 게 최고예요. 정말 맛있을 거예요."

 타르트와 파이가 다른 건지, 이 추레한 동네에 유명하다는 타르트 집은 어디인지, 영문 필기체로 상자에 적혀 있는 가게 상호는 어떻게 읽는 건지 우두망찰 하다가 고맙다며 상자를 받았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저도 친정에 애들 맡겨놓고 나온 거라, 바로 가봐야 해요."

 정말이지 어디 한 번 앉지도 않고 거실에 선 채로 작별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어정쩡한 감사와 작별 인사를 건네며 5분 남짓한 만남을 끝냈다.


 그것이 내가 Y의 아내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이따금 들려오는 Y는 회사 일로 바쁜 가장의 생활을 해내고 있었다. 또 나 역시 육아와 직장 일로 지난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Y의 부인은 전공을 살려 가게를 운영한다고도 들었다. 화려했던 그녀의 겉모습과 세련된 말투, 게다가 사장이라는 직함까지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Y의 파경 소식은 충격이었다. 좀처럼 남의 일에 흥미를 갖기도, 웬만한 일에 타격을 받지도 않는 남편이 퇴근도 하기 전에 전화 와선 '빅뉴스'라며 그들의 파경 소식을 알렸다. 대체 이유가 뭘까. 애들은 이제 꽤 컸을지라도 그래도 아직은 부모의 그늘이 필요한 10대들일 텐데. 연예인 걱정하듯 갖가지 추측과 망상에 사로잡힐 새도 없이 남편은 Y가 곧 재혼한다며 정말 충격이지 않냐고 되물었다. 남편의 흥분에서 얼핏 '저 인간이... 그래서 Y가 부럽다는 건가?'라는 오해도 어느 정도 감지되긴 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역시 모든 것이 나보다 나아 보였던 Y의 아내가 채 완성하지 못한 단란한 가정을, 나는 어느 정도 꾸려가고 있다는 묘한 승리감도 없지는 않았다.



 남편이 취한 날, Y가 불쌍해서 못 견디겠다던 날은 몇 년 만에 재혼 소식을 알린 Y가 우리 동네로 와서 남편을 만나자고 한 날이었다. Y를 만나던 중 잔뜩 취했던 남편은 내게 전화를 걸어 Y와 Y의 새 연인을 우리 집에 잠시 데리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사람 좋아하는 남편은 늘 지인들을 집으로 끌어들이는 버릇이 있었고, 어느새 주부 내공이 쌓인 나도 몇 명의 손님치레는 일도 아니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그것은 Y와 새 연인의 관계를 부정하다고 보거나, 인정할 수 없다고 보는 고약한 시누이 심보는 결코 아니었다. 단칼에 친구 초대를 거절한 아내의 대처에 당황할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그녀는 내게 처음 타르트를 사준 사람이라고,


이제는 Y의 전 부인인 그녀가 내게 타르트를 줄 때 애 키우다 미칠 것 같은 날에 먹으라고 줬다고, 단 게 필요한 날이 있을 거라 했다고...



 모든 것이 유능해 보이고 화려해 보이던 그녀도 결국은 애 키우다 '미칠 것 같은 날'을 지나왔을 것이고, 그걸 아니까 생판 남이라고 볼 수 있는 '남편의 친구의 해산한 지 얼마 안 된 아내'를 챙기고픈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아니까, 그나마 덜 추레한 수유복을 애써 골라 입고도 눈동자가 비어 있는 내게 타르트를 사준 사람 대신, 자기의 사랑에 취해 지고지순한 드라마 같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젊은 아가씨를 마주하긴 싫었다.


 참, 남편이 왜 울었냐고? Y가 왜 불쌍하다 했냐고? 만나고 보니 Y의 새 연인이 너무 어리고 철이 없어서, Y의 새 출발이 너무 험난해 보여서 울었단다. 친구 걱정에 눈물바람까지 하는 남편의 찐 우정에 당황하다가, 맥락 없이 감정이 동화되어 같이 울고 있는 내 모습에 어처구니 없다가, 자기의 사랑만이 지상 최대의 가치인 양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의 너저분한 장애물들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 모르는 Y의 새 연인이 안타까워서 한참을 뒤척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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