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는 것도 유전일까.
90이 넘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으로 그녀를 봤을 때이다.
원래도 말라서 평생 40킬로그램을 넘긴 적 없는 할머니의 몸이
더 극단적으로 말라서, 사실 마르다기보다 뼈를 보호할 가죽만 겨우 감싸고 있는 형태라서,
저렇게 걱정덩어리인 사람이 무얼 더 쥐어짜내서 걱정하느라
저리도 오그라들었을까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늘 걱정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푸념하셨다.
몸 쓰는 일 하는 울 아빠 다칠까 걱정,
드센 며느리에 기 못 펴고 살까 막내삼촌 걱정,
할머니의 영원한 아픈 손가락이던 둘째삼촌 걱정,
명절이면 일찌감치 온다 못온다 소리도 못하고 각자의 시댁에서 숨죽여 일하던, 덕분에 이번 명절엔 고모들이 오려나 하면서 또 걱정...
그러면서 드라마 보다가도 졸고, 전국노래자랑 보다가도 곧잘 주무셨기에
걱정스럽단 말이 할머니의 가벼운 입버릇이라 생각하고
언젠가부턴 그냥 흘려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쩌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찾아간 요양병원에선
정말이지 갓난아기처럼 목을 가눌 힘도 없이, 이리저리 고꾸라지는 고개로 휠체어를 타고 면회실로 들어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말도 더 이상 잘 못하시고, 며칠 째 식음을 전폐하시고 소화 기능이 거의 멈췄다길래 억지로 야쿠르트라도 먹여 드리려는 엄마와 고모의 애원에도 희미하게 먹기 싫다는 의사 표시만큼은 분명했다.
"할매, 나 왔어. 나 좀 봐."
한참을 정신이 없으시다가 대뜸
"밥은 먹었나, 배 고프제."
....
늘 누가 밥 먹었는지, 굶고 다니지는 않는지 버릇처럼 하던 걱정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생생하게 입밖으로 나와
결국 내가 들은 할머니의 마지막 음성이 되었다.
그런데
걱정하는 버릇도 확실히 유전인지
이제 중년이 된 나도 점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온 가족, 온 세상, 나를 둘러싼 온갖 것들에 대한 걱정으로 불면일 때가 많아졌다.
심지어,
하늘나라로 간 울 할매가 거기서도 다른 사람한테 양보하느라 밥상 뒤로 물러나 있을까 봐
어느 저녁 샤워하다가는 한참을 오열했다.
늘 밥상머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던 할매
할매 시선에서 보이던 가족들 어깨 위에 있던 온갖 짐들을 다 걱정하느라
그 걱정으로도 속이 꽉 차 차마 먹을 걸 마음껏 드시지 못하던 분.
'할매
나 할매 닮아 걱정하며 사느라 힘들어요.
나 좀 도와줘.'
이러면
하늘에 있는 울 할매가 내 걱정에 또 천국을 누리지 못할까 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