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과 시댁 모두 제사가 있는 집안이다.
유교를 믿냐? 아니다!
뼈대 있는 가문이냐? 흔해 빠진 집안일 뿐!
제사가 간소화되어 있어 온 가족 화기애애, 경건하냐? 아니다! 특히 시댁은 더!
-유년기
올해 유난히 전이 두껍게 되었다며 슬쩍슬쩍 눈치를 보는 엄마,
고생하는 것도 엄마, 눈치보는 것도 엄마,
기껏 만든 음식을 고모들 싸주는 것도 엄마,
가장 늦게 밥상에 앉는 사람도 엄마,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고, 불평 없는 엄마의 희생으로 그저 기름진 음식 많이 먹는 조금은 들뜬 날이었다.
-며느라기
친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남성들이 단지 절하기 위해 모여드는 날.
그 와중에 시어머니는 불평불만, 조금이라도 건들면 폭발할 듯 거칠 게 손을 놀리신다.
그러면서도 뭘 저렇게까지 정성스럽게, 그러니까 거칠게 화를 내면서 또 정성스럽게..?
이 지점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싫으면 싫다든가, 대충 한다든가 그런 행동이 아니라
말과 손짓에는 분노와 화가 솟구치는데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너무 정갈하다.
기껏 차려진 제사상에 절 한 번 올리지 못하면서도 귓속말로 내게 "저래야, 자식들이 잘 된다 아니가."
'어머니, 아까 전부터 욕하시고, 깨부수듯이 그릇 정리하는 거 조상들이, 여기 있는 자식들이 다 봤는데, 어찌 잘 될까요?????'
-며느리 1n년차
이제 제사가 나한테 넘어 온다.
제사 받기 싫어요. 소릴 못하는 등신이 바로 나다.
이 무가치한 노동에 속을 끓이고, 신경 쓰고, 몸을 움직이는 것 모두 나다!
그러나 이걸 거부하면 자식 잘 된다는데 에미가 되어서 자식 앞길 밝혀주지 못하는 못난 어미가 되는 거다.
연로한 시부모가 부탁하는 건데 그걸 못 받아들이면 천하 불효막심한 며느리가 되는 거다.
어쩔 수가 없잖아라고 말하며, 은근슬쩍 내게 떠넘기는 남편을 둔 미련한 여자가 바로 나다.
똑같이 사회 생활을 하는 내가 왜 연'휴'가 연'노동'에 시달려야 하는가.
차라리 다같이 명절을 보내던 때라면 모른다.
다들 양장 입고 구두 신고 양산 쓰고 다니는데 혼자 소복 차림에 비녀 꽂고 죽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건, 명절을 앞둔 그저그런 여자들의 푸념이 아니다.
유구한 가스라이팅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러면서 깨부수지 못하는, 갈등 회피론자에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한 인간의 울부짖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