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슬픔에게

영화 <햄넷>을 보고

by 김막스

자연의 딸 아그네스와

문학의 아들 윌

서로 다른 이들이 부부로 만났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먼저 느끼는 아그네스

밤을 새더라도 양피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눌러담는 윌

다름에 끌려 만났지만 삶이라는 현실은 녹록치 않다



행복은 나누면서 배가 되지만

슬픔은 각자가 짊어져야할 짐이다

서로에게 떠넘길 수 없는 아픔

스스로가 풀고 나와야하는 숙제다


아들 햄넷을 황망하게 잃어버린

그 처절한 슬픔은 그렇게

하나인줄 알았던 부부를

냉혹하게 둘로 갈라놓았다



아그네스는 윌이 원망스럽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심지어 아들의 임종도 보지 못한 그가

바로 런던으로 다시 떠나겠다고 통보한다


그런 그에게 위로는 커녕

남편의 역할도 기대할 수 없다

차라리 눈에 안보이는 편이

그 편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일상의 반복에 의지하며

활력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그네스



아들의 이름을 딴 <햄릿>이란 극을 쓰고는

마침내 무대에 올리게 된 윌

유령이 된 햄릿 왕으로 연기하며

아들 햄릿 왕자에게 나타나 "나를 기억하라" 건낸다

연극에서나마 아들 대신 죽은 아버지가 된다

현실에서 못 지켜준 아들을

연극에서 부활시킨다

그렇게 그만의 방식으로 애도한다

무대 뒤 혼자 남아 분장을 지우고

다시 현실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 돌아온 그는 오열한다



남편의 연극에 눈을 떼지 못하는 아그네스

마지막 장면에서 햄릿의 죽음을 슬퍼하는 관중과

같이 애도하다

마침내 살며시 미소까지 띄우게 된 그녀


햄릿으로 부활한 햄넷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아들의 죽음은

개인적 죽음에서 사회적 죽음으로 승화됐다

그제서야 비로소 위로를 얻는 아그네스

마음 속 깊은 암흑에서 아들을 꺼내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 슬픔을 나눌 수 있을까. 아픔을 공감할 수 있을까. 슬픔이 슬픔에게 건내는 위로. 영화 <햄넷>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학이, 예술이 서로 다른 우리를 하나로 이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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