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집이 되다

영화 <센티멘탈 밸류>를 보고

by 김막스

유럽식 특히 북유럽식 가족영화를 찍는다면

남부 스페인식의 뜨겁고 열렬한 사랑이 아닌

절제된 그러나 분명한 노르웨이식의 사랑을 담아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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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의 지지고 볶고

때론 서로 술 한잔 기울이며

모든 감정을 끌어내

울고불고 부둥켜 껴안는 것으로 끝내는

(그리고 또 그걸 매번 만날때마다 반복하는)

그런 익숙한 모습의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나와 조금은 다른 그 모습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단지 지켜봐주는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가족이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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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떠나버린 아빠 구스타브

어린 두 딸 노라와 아그네스에게

상처를 준 장본인이지만

본인도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평생 아물지 않았다


상처받은 한 인간이

또 남겨버린 그 상처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픔의 시간들이 모여

역사라 불리우는 건 아닐지

단지 매정한 시간을 탓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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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공간은

시간에 의해 상처받은 자들이

모여 아늑하게 쉬는 곳이다


바닥에 몸을 던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서

“Help me. I can’t do this. I can’t do it alone.

I want a home. I want a home.”

그저 신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허락되는 곳


가족이란 신이 기도의 응답으로 선물한

물질적인 공간을 넘어서는 집이자

서로를 보듬어주는 울타리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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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빠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 노라

대망의 마지막 장면 연기를 마치고

감독 아빠의 “완벽해”라는 컷 사인 후

서로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상처받은 두 영혼은 서로를 이해한다

그리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렇게 서로의 집이 되어준다




영화의 제목인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는 '남들이 보기엔 평범해 보이더라도 자신에게는 뜻깊은 의미를 가진 것'을 뜻한다. 신에게 기도하는 그 같은 독백을 풍부한 감정으로 연기하는 레이첼과 담담히 감정빼고 대본을 읽어가는 노라. 두 장면 모두 관객에게는 진한 감동을 주지만, 레이첼의 멋진 연기조차 담아내지 못하는 의미가 있다. 가족이어야만, 그 시공간을 함께 겪은 이들만이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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