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부>를 보고
서로 마주앉은 두 사람
말 없이 고개 숙인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딱 째깍 딱 째깍
바둑판 위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정답이 없는 바둑에
상대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없다
승리를 향해 번갈아 내던져지는
한 수 한 수
그렇게 무한의 경우의 수는 서서히 좁혀져
그 윤곽을 조금씩 드러낸다
전신, 전투의 신 조훈현과
산신, 계산의 신 이창호가 맞붙는다
싸우는 바둑과 지키는 바둑의 대결
바둑은 기세로 두는 거라는 조훈현에게
이기고도 좋은 바둑을 못 두어
죄송하다는 이창호
바둑에 대한 철학이 다른
두 고수가 펼쳐내는 한 편의 드라마
이미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분신을 만들려는
헛된 욕망이 시키는 일일 것이다
제자가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의 고유성이 바둑에 드러나
자기 길을 뚜벅뚜벅 갈 수 있도록
한 발 떨어져 돕는 것이
선배된 스승의 진정한 역할이다
영화의 마지막
눈이 보슬보슬 내리는 날
두 사람의 대국 장면은
바둑이라는 자기와의 싸움을 응원해주기 위해
서로 거울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친구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