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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by 싱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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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노릇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요조가 살아온 길. 매춘, 모르핀 중독, 자살방조, 정신병원 감금까지 그의 인생이 파란만장하다. 그래서인지 첫 문장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다자이오사무 자신을 요조에게 투영해 자조 섞인 내면의 것을 다 털어내듯 고백하는 것 같다. 이 문장을 쓰면서 자기 삶에 대한 어떤 고찰, 어떤 회한이 일었을까? 어쩜 이리도 인간의 내면심리를 잘 그려 낼 수가 있나. 누구나 광대 같은 면이 있고 남의 눈치보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한다. 누구나 비합법의 일탈을 상상할 때가 있다. 누구나 바스러지게 약해서 들키고 싶지 않은 어둠의 장소가 있다.


<인간 실격>을 처음 접했을 때 사회에서 악(惡)이라 정해진 금지된 것들을 모조리 하고 살다가 자살한 본능에 충실한 인간인 요조를 만났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결국은 가난뱅이로 전락한 남자의 이야기라 치부했다. 우울함을 쏟아낼 길 없어 동반자살을 시도하질 않나, 매춘에 마약에 알콜중독까지 아주 구제불능 인간이다. 자극적이고 음울한, 그래서 동시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막장 이야기 같은 책이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어째서인지 요조의 광대 짓과 가면을 보고 쓴웃음이 났다. 우리 역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살아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주인공과 나는 일정부분 닮았다. 갈등이 두려워 싫은 소리 못하고 참기만 하는 자의 내면의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망나니가 아니라 가여운 한 인간의 모습이 보여 슬프다. 복잡한 여자관계는 그가 여자에 미친 바람둥이라서가 아니라 가면을 잠시 벗어둘 수 있는 안식처여서 그랬으리라 이해까지 된다.


세 번째 읽었을 때 요조가 이렇게 된 데는 아버지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세상은 개인이다. 세상의 모든 가십, 모든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개인의 생각이며 개인과 개인이 더해져서 세상을 만들어간다. 그러니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요조는 호리키를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도 세상 나름’이다. 요조에게‘아버지’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만큼 강력하다. 위엄 있고 잘난 아버지의 번듯한 아들이어야 하는 무언의 압박감. 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빨간 내복 원숭이가 되지 않았던가.


유년기 시절 한번, 마지막 사망 전에 한번 등장하는 아버지. 하지만 나는 그가 낯설지 않다. 이야기 중간 넙치의 얼굴로 나타났다 느꼈기 때문이다. 요조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묻는 넙치, 정신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 함께 탔던 넙치, 장래희망은 화가라는 요조의 대답에 대해 경멸하는 넙치는 아버지의 다른 말이다. 아버지의 질문이며 아버지의 표정인 것이다. 구세주라 믿었던 결정적인 순간 요조를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하며 아들을 ‘인간’적으로 ‘실격’시켜버린 무서운 사람. 그 이름 아버지다.


또 다시, 세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이란 개인이다.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에서 매장당할거야. ‘세상’을 ‘아버지’로 바꿔 읽어도 의미가 통한다. 아들이 탐탁했을 리 없던 아버지 때문에 결국 요조는 대리인인 넙치의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갇혀버렸다. 요조의 세상에는 자신보다 더 큰 아버지가 있었던 것 같다. 병원에 감금된 순간부터 그는 빠르게 무너져 내린다.


아버지의 죽음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된 그는 고향으로 떠났다.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빈 채로. 하지만 이후 요조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산 것 같진 않다. 마치 새장을 벗어나고 싶었던 말 못하는 새가, 그 철망이 사라졌을 때 높이 날지 못하고 그냥 죽어버린 느낌이다. 한 사람의 개인이, 개인의 세상이, 새장 속에서 서커스 하며 노래하는 새를 죽게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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