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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전시회

by 싱클레어

미술관을 다닌 이래 이렇게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날 뻔 한 적이 있었던가. 대전에서 전시 중인 <불멸의 화가, 반고흐展>을 보고 나서의 일이다. 그림 보며 이동하는 내내 울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그의 그림에 감동받아서, 내가 그림 볼 줄 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측은한 한 인간이 보여서다.


고흐의 초기 작품이 그려졌던 네덜란드 시절 종이에 목탄 또는 펜으로 그린 인물화를 많이 볼 수 있다. 전시 설명에는 이러한 습작이 있었기에 후에 걸작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그냥 막연히 화가가 되고 싶은 자의 숱한 연습 결과일 뿐이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할 줄 아는 게 그림밖에 없던 한 사람의 꿈이 표현된 것 뿐이다.


석탄을 나르는 사람들 1881
슬픔 1882
감자먹는 사람들 1885


고흐는 언젠가는 자기의 그림값이 물감보다 비싸질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생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평생을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남들 다 하는 사랑조차도 그에겐 쉽지 않았으며 집에서는 문제아 애물단지 취급만 받았다. 그럼에도 고집이 퍽 세었던지 그림 한 우물만 팠던 모양이다. 평생 그린 그림이 2,100여 점이나 되니 말이다. 10년 동안 그냥 그림에만 미쳐 살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전시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그림들에서 숱한 좌절만 보았다. 알아주는 않는 세상과 자신을 알리려는 자의 처절하고 외로운 싸움. 그것만 보였다.


고흐가 머물던 지역마다 그림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뉜 화풍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의 화풍이 바뀌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에 내 그림 틀렸다고 했잖아, 이번에는 이걸 접목해서 시도해봤어. 이건 어때?’ 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작업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서 희망을 표현한 것 같은 <씨뿌리는 사람>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좌절과 거절에 익숙했던, 오로지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삶이었던 고흐. ‘언젠가는 성공하리라, 내 명성을 떨치리라.’ 찬란한 빛깔의 탄생 시기인 ‘아를 시기’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바로 그때 그렸던 그림이 <씨뿌리는 사람>이다.


노란 태양이 작열하는 것 같다. 그 아래 농부는 씨를 파종하는데 무언가를 기대하며 희망을 심는 과정이었을 거다. 자신의 마음을 농부에게 투영해서 즐거운 마음을 담아 그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유일하게 밝고 희망적인 낙관적인 그림이라 붓질도 더 힘차게 느껴졌다.


씨뿌리는 사람 1888

그가 죽고 난 뒤 이제야 후대 사람들은 ‘걸작이네, 뭉크에게 표현주의 영향을 줬네.’ 떠들어댄다. 지금 그의 작품으로 아를 시기, 파리시기,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고흐도 우리처럼 평범했을 뿐이다. 직업 화가로서 성공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 것 하나 그에게 주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압생트를 마셔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나마 독한 술이 취해 고통을 잊고자.


전시회에는 그림 때문에 고통 받고 그림 때문에 살아갈 이유를 찾은 가여운 한 인간만 우두커니 있었다. 너무나 인정을 갈망하는 쓸쓸한 한 사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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