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다. 흥행에 성공한 태극기 휘날리며, 수많은 이순신 시리즈, 택시 운전사 등. 역사영화는 잊을만하면 극장에서 심심찮게 상영하고 관객 후기도 평타는 치는 편이다. 극본도 배우도 연기도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작품들이지만 나는 역사 관련은 특히 잘 보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무슨 오뚝이 같은 민족성을 가졌기에 수천 년 전부터 침략만 받다가 또 일어서고 민초들은 죽기만 하다 영화는 끝난다.
이번 책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마찬가지다. 5·18을 다룬 영화도 책도 많지만 위의 이유 때문에 마음이 거북해서 손이 안 갔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노벨상 정도 받아줘야 한번 읽어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내겐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고 싶은 주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읽어내면서 불편함을 정면에서 목도한 나의 마음에는 역시 서글픔과 안타까움이 배로 늘어갔다. 그래도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었구나 싶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신선했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담담하게 서술한 점이 인상 깊었다.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이 책에서 가장 슬픈 한 줄이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총을 겨누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군대가, 한 나라의 수장이 자국민을 향해 총을 쏠 수가 있는가. 저 한마디에 놀라움, 실망감, 불안감 등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군부는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시쳇더미에 불을 질렀고 그들에게 죽은 자들은 그냥 처리해야 할 폐기물에 불과할 뿐이다. 나치 독일 시절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한 아이히만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저들도 정권이 바뀐 후 법정에 서서 그저 상부 지시대로 행동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으려나.
표지는 왜 안개꽃인가. 꽃말을 찾아보았다. 맑은 마음, 깨끗한 마음을 의미한단다. 피로 범벅된 시체가 체육관에 눕기 전 하얗고 순백색의 맑은 영혼들이 꽃의 이미지와 겹친다. 작고 힘없는 흰색의 만개한 꽃들이 꼭 그들 같다. 어찌 생김새마저도 손톱보다 작은지. 이렇게 작고 약한 자들에게 군부는 총칼을 휘둘러 줄기를 꺾어버렸다. 시민군인 이들은 계엄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총을 쏘지 못할 정도로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소년이 온다>는 6부 구성으로 각부마다 화자의 시점이 달라진다. 1부에 모든 주인공이 다 등장하고 2부부터 화자가 바뀐다. 시선의 이동과 주인공을 지칭하는 말도 달라져서 참신했다. 대학생, 출판사 직원, 양장점 미싱사 등 각자가 처한 현실은 달랐지만 군부에 짓밟힌 처참한 인권은 가지각색으로 동일하다. 죽은 자는 억울하게 죽어서 비통하고 산사람은 살아남았기에 고통받는다. 지옥 속 기억의 트라우마로 평생을 괴로움과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 한 사람의 독재자가 빼앗아간 수백의 목숨과 행방불명자, 그리고 그들의 유족들이 흘려야만 했던 피눈물 나는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하다.
권력 때문에, 도대체 권력이 뭐라고 목숨과도 맞바꾼다 말인가. 결국 90세 전두환 씨도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냈음에도 호칭은 ‘대통령’이 아니라 ‘씨’, 국장도 국민장도 아닌 가족장, 국립묘지에도 안치되지 못했다. 국민들을 처참히 짓밟았던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가는 쓸쓸한 마지막 길은 그가 저지른 폭력의 자명한 결과인 셈이다.
작년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12·3 비상계엄이 있었다. 지금도 몇 달째 이어지는 정치난투극을 매일 구경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과거 수많은 희생자가 있어서일까. 더 이상 우리 국민은 도를 넘는 한 국가의 지도자를 참아주지 않는다. 우리 손으로 그 자리에서 끌어낼 수 있게 된 것이 과거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가장 변하지 않는 법조계, 정치의 영역에서도 느리지만 진화는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