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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빛을 그린 남자

김선현 <카라바조 이야기>

by 싱클레어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 중에서도 서양미술을, 서양미술사 중에서 바로크시대 나의 최애 화가가 카라바조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주인공에게서 눈을 떼기 힘들다. 빛을 기가 막히게 잘 쓰는 화가로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 후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그림엔 마치 캄캄한 연극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가 있는 것 같다.


김선현의 <카라바조 이야기>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카라바조 전시를 더 잘 이해하게끔 도와준 고마운 책이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어릴 적부터 사고뭉치였고 커서는 폭력, 살인으로 결국 잘 나가던 화가에서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그였다. 하지만 작가는 이 프레임을 덜어내고 카라바조 그림만 보자고 이야기한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작가의 일생과 작품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 때문인지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슬픈 얼굴이 그림에 자주 보인다. 작품 속에 자신의 얼굴을 자주 그렸는데 자화상 같다. 특히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에서 머리만 댕강 잘려 피를 흘리는 골리앗에 오묘한 표정의 카라바조가 있다. 측은한 눈빛과 지난날들의 회한도 느껴진다. 잘린 머릿속에 본인 얼굴을 그려 넣는 참담한 심정은 어떠했을까.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1606)>
<황홀경의 막달라마리아(1606)>


이 책 덕분에 많은 인파와 비슷한 화풍 전시 속에서도 카라바조 그림을 금방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제로 보았을 때 작품크기에 놀라는 재미, 유화표면의 크랙이 말해주는 세월의 주름, 섬세한 붓 터치, 바로크 시대 웅장함을 보여 주는 듯한 황금색의 화려한 액자까지. 눈이 무척이나 즐겁다. 이탈리아에서 오느라 까다로운 관리 하에 포장, 보관, 습도, 배송절차를 거쳐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했을 테다. 큐레이터는 수십 점의 작품을 관람객의 동선에 맞게 배치하고 섹션별로 테마를 정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에서 파생된 도록 제작, 굿즈까지 한 전시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품이 들어갔을지 생각하면 관람료가 결코 비싸지 않다.




카라바조의 파란만장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시기별로 그림을 배치하여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간결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설명으로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큰 도판과 선명한 그림은 덤이다. 일독을 권한다.

김선현 <카라바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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