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가 밝았고 설 명절도 지났다.
올해 내 나이 마흔둘. 신년이 되면 습관처럼 반복되는 설레는 다짐의 시간을 가진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지, 그럼 지금 어떻게 살면 좋을지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 즐겁다. 나는 음악과 미술을 좋아해서 공연장과 전시회를 자주 찾는 편인데 최근 내가 해왔던 물음에 작은 해답을 찾은 것 같아 기쁜 순간이 있었다.
그날은 피아노 협주곡 연주가 있는 날이었다. 협주곡은 주인공인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관객에게 조화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늦은 예매 탓에 평소와는 다르게 합창석에서 관람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올레! 를 외치게 해 주었다. 합창석은 오케스트라 바로 뒤편 2층에 위치한 좌석으로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지휘자의 얼굴이 바로 보인다는 것이다.
항상 지휘자 등만 보다가 앞에서 본 세상은 자못 새로웠다. 그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무섭게 집중하는 연주자들, 선율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이는 막대기, 음악을 진정 사랑하는 자의 풍부한 표정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본인 파트가 아닐 때 악기를 매만지는 연주자들의 행동을 가까이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시선을 조금 옮겼을 뿐인데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리도 다양할 줄이야!
나는 독주보다는 합주를 더 선호한다. 이유는 오케스트라의 조화로움 때문이다. 각기 다른 악기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게 마치 맛있게 잘 버무려진 비빔밥 같다. 합주를 위해 만들어진 교향곡은 수백 년 전 작곡가의 고뇌의 결정체다. 이러한 종이에 불과한 악보를 재해석하여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그런 구슬을 하나하나 꿰어 보배로 만들어주는 지휘자까지. 귀 호강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에게 정성스레 잘 차려진 9첩 반상을 대접받는 느낌이다. 이것이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공연장에 가는 이유다.
오케스트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내가 좋아하는 ‘중용’을 눈앞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인 이 덕목을 연주자들은 매번 해낸다. 누구나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제하며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일에 열중할 뿐 스스로가 돋보이려 나서는 법이 없다.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은 악기 종류가 많아 살짝만 호흡이 어긋나도 불협화음이 생기기 쉬운 상황에서도 특유의 예민함으로 깔끔하게 곡을 마무리하는 것도 정말 근사하다.
내가 생각하는 공연의 힐링 포인트는 음악 하는 사람들의 무형의‘애씀’이다. 작곡가의 쓰다 구겨버린 수천 장의 고민 흔적, 지휘자와 연주자의 악보 암기와 연구, 완벽을 위한 어마어마한 연습량.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의 결과물을 듣고 있으면 스트레스에 취약한 내게 좀 더 단단해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 공연장을 나오며 바로 알아차렸다. 사물을 내 방향만이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도 보려 노력할 것. 내 삶의 조화로움을 위해 ‘중용’을 지키며 ‘애쓰면서’ 살 것. 이는 올해 내 안에 심어야 할 단어이기도 하지만 평생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한 것이다. 자주 방문하는 곳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다니, 역시 진리는 가까이 있다고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