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이동이 있었다. 주기적으로 겪는 일이지만 아직도 갑작스러운 전보는 적응이 안 된다. 그래서 스트레스 지수가 또 높아졌다.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며 불안감이 찰거머리처럼 주말 내내 붙어 있었다. 좋은 자리로 가는 것인데 왜 이리 신경이 날카로운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평정심이 무너질 때 넷플릭스를 켠다. 영화라면 큰맘 먹고 보는 내가 3번 이상 본 유일한 작품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기 위해서다.
영화에서 성공한 작가인 리즈는 결혼생활 중 마음의 공허함을 느껴 사랑, 직장 모든 걸 버리고 케투의 예언대로 1년간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탈리아(먹고), 인도(기도), 발리(사랑)를 여행하며 자기 자신을 찾고, 사그라진 열정을 다시 불태우기 위해 행복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다.
“난 변하고 싶어.
예전에는 식욕이 넘쳤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어.
날 돌아볼 시간 따위 없었다고”
“나 어떻게 살아야 해?”
모든 걸 다 가진 그녀의 삶에 무언가 빠져있음을 느끼고 곧바로 리즈는 떠날 결심을 한다. 아무리 영화지만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지금 나의 불쾌한 마음도 리즈와 비슷하나 나는 모든 걸 버리고 갈 형편이 못되고 그럴 용기도 없다. 그저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위안을 얻을 뿐이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불안한 주인공에게는 예언자 케투가 따뜻한 미소와 함께 건네준 그림 부적이 한 장 있다. 내게도 그토록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그림이다.
“네 발로 걷듯 안정감 있게 살아. 중심 잘 잡고.
세상을 바라볼 때는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야 신의 이치를 깨달아”
나의 지상최대 과제인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 안정감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을 이 영화는 제목으로 알려준다.
(먹고) 좋은 음식을 잘 챙겨 먹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남 눈치 보느라 살찌는 것 걱정하느라 본인의 삶을 통제했던 것을 내려놓으라는 의미로 새겨들을만하다. 리즈는 피자 칼로리를 계산하는 대신 마음껏 먹고 큰 사이즈의 바지를 사러 가기로 했다. 남에게 조금 덜 예뻐 보이더라도 자신을 구속하는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겠다는 의지가 좋다. 나 역시 타인의 시선에 맞춰 눈치 보는 것은 없는지, 나를 옥죄는 무언가로부터 조금은 무덤덤해질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내게 관심이 없음에도 자신을 괴롭힐 때가 종종 있으므로.
(기도하고) 오롯이 본인에게 집중하며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어지러운 날엔 절이나 성당을 방문하여 한참을 앉았다가 오는 날이 있다. 조용한 곳에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서이다. 기도와 명상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 매듭을 짓고 나오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복을 빌러 가는 행위가 아니다. 신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문제는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유신론자들이 보기에 난 너무 건방져 보이려나?
(사랑하라) 운명의 상대를 만나 사랑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15년 차 결혼생활 중인 내게 아직 사랑이란 감정이 남아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연애할 때의 설렘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끌리는 상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걸 어쩌랴. 나의 영혼을 뒤흔들만한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면 홀리듯이 빠져버리는 건 아닐지. 혹시나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난 그를 밀어낼 수 있을지 사랑에 대해서는 물음표만 가득할 뿐이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영화는 말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나를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해답은 스스로 구하며 열렬히 사랑하며 살 것. 이것이 바로 네 발로 걷듯 안정된 삶을 사는 길이라고 한다. 결론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셋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래서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일이 이리도 힘든가 보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처럼 내 삶의 마지막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늘 불안하고 불완전한 나지만 영화의 대사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케투의 부적을 지닌 것 같은 신기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이 작품은 인생의 해답지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느낌의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