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진학 청년 1인 주거 이야기 - 정래의 홈―에세이 1
나는 나를 기대고 나에게 기대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니까. 지금의 나를 존중하면서도, 지금 나는 여기에 임시로 살 뿐이라고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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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가 살기로 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한 이후 한동안 지방에 있는 본가에 얹혀 살았다. 본가에 얹혀 사는 동안 무언가 생산적이라고 할 만한 걸 하지는 못했다.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까 자격증이라도 따야 할 것만 같고,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까 학점은행제라도 해야 할 것만 같고, 그게 아니라면 재수 준비라도 해야 가족들 앞에서 면이 설 것만 같았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내 상태는 정말이지 말이 아니었으니까. 가족들과 한창 다툰 끝에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하고, 대학입시거부선언에 참여한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눈치를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가족들 눈치를 봤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인지 미안했다. 내가 내 눈치를 보기도 했다. 이대로 낙오자가 돼버리면 어떻게 하지. 지금 내 또래에 대학 다니는 이들은 다들 경쟁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뭘까, 나는 뭐니. 그런 눈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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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라가면 이런 현실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하겠지. 서울에는 사람도 있고, 인프라도 있고, 내가 가지는 않았지만 대학도 많고, 지방에 없는 모든 게 서울에 있으니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마침 본가가 있는 지역의 음식점에서 본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떨어진 참이었다. 그게 그 달에 본 일곱 번째 아르바이트 면접이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예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서울에 살려고 보니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사회초년생인 내게는 모아둔 보증금은커녕 당장 월세를 낼 수 있을 마땅한 직장도 예비돼있지 않았다. 수중에는 기껏해야 모아둔 200만원 남짓한 돈이 전부였고, 이마저도 아껴 써야할 판이었다. 결국 내가 살기로 한 곳은 모 어플에서 찾은 광진구의 어느 고시원이었다. 캐리어에 책과 옷을 넣었다. 캐리어 하나에 이삿짐이 전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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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터미널 1번 플랫폼에서 동서울행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플랫폼에 들어왔다. 짐칸에 캐리어를 싣고 올라와 좌석에 앉았다. 이내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익숙했다가, 점차로 낯설어졌다. 익숙한 골목, 익숙한 인터체인지를 넘어 낯선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런 풍경의 흐름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후로 이어질 서울살이에 대한 하나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익숙해질만하면 다시 점차로 낯설어지는. 조금 적응하려고보면 다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딘가 불편하고 꺼림직한. 무엇보다, 그 낯섦이 주는 쓸쓸함에 때로 지칠 수 있음을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볼 때만 해도 잘 몰랐다. 풍경이 아예 낯설어질 때쯤 좌석에 앉아 잠에 들었고, 잠에서 깨니 동서울터미널이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캐리어를 들고 동서울터미널을 나섰다. 2호선 전철을 타고 몇 정거장 가다 내려 또 20여분을 캐리어를 끌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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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방은 이쪽이에요.” 고시원 사장이 방을 보여줬다. 생각보다도 방은 더 좁았다.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면 반대편 벽에 부딪힐 정도로. 그렇지만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다. 어플에서 본 가장 가성비가 괜찮은 고시원이었다. 주방에 밥과 김치와 라면이 있고, 작지만 외창이 있었고, 상권도 나쁘지 않았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계약서를 쓰고, 방값을 내고, 짐을 풀었다. 짐이래봐야 별 것 없었다. 가진 게 많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물건을 가지지 못했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물건을 갖고 싶지 않기도 했다. 욕심이 많지 않아서 또 한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물건을 갖고 싶어 했다면 이 작은 고시원 방 안에 내 물건을 다 둘 수 없었을 테니까. 어쩌면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소유에 대한 강박을 덜어주게 만드는 곳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위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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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평생 딱 이만큼의 물건만 지니고 살 순 없지 않을까 싶었다. 평생 1인 가구로 살 자신은 없으니까. 나는 나를 기대고 나에게 기대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니까. 지금의 나를 존중하면서도, 지금 나는 여기에 임시로 살 뿐이라고 되뇌였다. 여기서 살면서 언젠가 그럴듯한 직장을 구하고, 함께 살 사람을 구하고, 돈을 모으면 고시원을 나가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고시원에서 짐을 풀면서 그런 희망을 속으로 그렸다. 언젠가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고시원은 아직 비관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로 고시원 주민이 됐다. 앞으로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서울에 왔으니까. 서울은 그런 곳이니까. 서울에는 사람이, 기회가,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그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