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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다협동조합 May 10. 2021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진학 청년 1인 주거 이야기 - 정래의 홈―에세이 5






방에서는 냄새가 났다. 버리지  않고 쌓인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인지, 내 몸에서 나는 냄새인지, 마르지 못한 빨래에서 나는 냄새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이  공간 자체가 냄새나고 불편한 공간이라고 내가 인식하기에 이르러서 그런 건지. 혹은 그 전부인지. 여하간에 쉽게 없어질 냄새가  아님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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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어째 운수가 좋았다. 그날은 내내 횡단보도를 지나려 할 때마다 때맞춰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었다. 버스정류장에서는 버스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때맞춰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망원동 어느 카페에 갔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가 편의점에서 마침 1+1 행사를 했다. 날씨도 화창했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 선선했다. 산책하기 참 좋은 날씨였다. 망원한강공원에서 본 한강 빛깔도 그날따라 이상하게 창창했다. 그날은 거짓말같이 사소한 구석마다 운수가 좋았다. 정말 거짓말같이. 그렇게 기분 좋게 산책을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와, ‘아, 참. 빨래를 해야지’ 싶어 고시원 공용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80분을 기다렸다. 80분 후, 탈수까지 끝난 빨랫감을 바스켓에 담았다. 빨랫감 바스켓을 들고 건조기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공용 건조기에 빨래를 넣었다. 여기 건조기는 1천원을 넣으면 30분 동안 돌아간다. 3천원을 넣었다. 방으로 돌아가 90분동안 빨래가 건조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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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90분 뒤. 건조기를 열었다. 빨래는 푹 젖은 그대로였다.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샜다. 다시 1천원을 넣어보았다. 이제 보니 건조기는 돌아가지 않았다. 돈을 넣어도 그대로였다. 건조기가 고장난 게다. 전원 코드가 잘못됐나 살펴보기도 하고, 기계는 몇 대 치면 고쳐진다는 민간설화에 희망을 걸고 건조기를 몇 대 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건조기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건조기가 진짜로 고장났다. 내 빨랫감이 축 젖은 채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나 어쩔 거야?’ 하고. 젖은 빨랫감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안그래도 낡아빠진 건조기가 드디어 수명을 다했고, 내 다음 한 주의 의(衣)생활은 난관에 봉착했다. 삶의 질이 수직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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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건조기 고장난 게 뭔 대수야. 빨래는 햇볕에 말리면 되지.’라고 생각할 이들을 위하여.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이 고시원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고시원 방에는 외창이 있긴 하지만 햇볕이 ‘내리쬔다’고 표현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으로 볕이 살짝 든다. 빨래를 말리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대게 고시원은 안에서 빨래를 말리라고 천장에 봉을 걸어주는데, 이 고시원은 봉이 천장 한가운데에 있지 않고 한쪽 벽에 커튼을 다는 봉처럼 붙어 있다. 그러니 건조기가 고장났다는 것은 이 물젖은 빨래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이고, 오랜만에 빨래를 돌린 내게 빨랫감을 제외하고 입을 옷은 기껏해야 한두벌 남아있었다. 그 와중에 고시원 사장에게 건조기가 고장났다고 얘기하니, 사람 좋은 웃음을 허허, 지으며 “그거 오래돼서 고치지도 못할 텐데. 주말에 한번 손을 보든가 할게요.” 라고 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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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은 이토록 사소한 하자도 사소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 지난 주에는 공용으로 쓰는 변기가 며칠 막혀있었고 오늘 아침에는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다. 방이 아니라 집에 살았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이 문제가 된다. 건조기도 마찬가지다. 이곳이 방이 아니라 집이었다면, 아니 방이더라도 조금만 더 넓은 방이었다면 건조대 하나 놓고 빨래를 말리면 그만일 문제인데. 그 조금만 더 넓은 공간이 없어 내 빨래는 건조되지 못한 채 걸레 냄새가 나도록 마르지 못하고 방치됐다. 아주 사소한 요소들만으로도 쉽게 무너지는 생활을 과연 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렇지 않다는 대답밖에는 나오지가 않는데. 이것은 생활이 아닌데. 방에서는 냄새가 났다. 버리지 않고 쌓인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인지, 내 몸에서 나는 냄새인지, 마르지 못한 빨래에서 나는 냄새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이 공간 자체가 냄새나고 불편한 공간이라고 내가 인식하기에 이르러서 그런 건지. 혹은 그 전부인지. 여하간에 쉽게 없어질 냄새가 아님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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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건조기는 결국 주말이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쉰내가 나는 빨랫감을 다시 빨아 30분 거리에 있는 코인세탁방에 들고 갔다. 거금 5천원을 주고 코인세탁방 건조기에 빨래를 말렸다. 코인세탁방에서, 37kg짜리 건조기에 빨래가 수직축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어떻게든 이 방을 나가야지.’ 어떻게든 이 방을 나가서 무리해서라도 집에 건조기를 들여야지. 건조가 끝나고 뽀송하게 마른 빨래감을 들고 다시 30여분 걸려 고시원으로 걸어가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딛을 때마다 다짐은 굳어졌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방구석. 내가 나가든가 해야지!’ 하고. 다시는 내가 입는 옷에서 걸레 냄새가 나도록 두지 않고, 뽀송뽀송한 빨랫감과만 조우할 수 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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