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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다협동조합 May 26. 2021

외롭기 싫어서 일한다

비진학 청년 1인 주거 이야기 - 정래의 홈―에세이 6






나는 나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공간과, 그에 기반한 사회적 관계망이 내게 돌아오기 위해 일하고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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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서울 가면 너네 집에서 자도 돼? 아, 맞다. 너 고시원 살지…….” 얼마전 고향 친구가 서울에 들를 거라고 내게 그러더라. 그러면서 우리집에서 자고 가도 되냐고 묻다가,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고시원 산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말을 멈췄다. 일순 침묵이 흘렀다. 그렇지, 나 고시원 살지. 나는 친구에게 집에 초대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고 친구는 미안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미안할 일은 아니지. 그렇지만 세상에는 내 잘못이 아닌데도,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일들이 많은 걸. 고시원 사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먼길 거쳐 서울로 오는 친구에게 잠잘 방구석 하나 마련해주지 못한다는 게 미안했다. 다음날 아침 방을 나서면서 고시원 공동현관 문짝에 붙은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그 문구가 그날따라 더 야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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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고시원은 외부인 출입금지다. 특히 외부인이 들어와 잠을 자는 경우 퇴실 조치한다는 곳도 있다. 지금 사는 고시원 사장이 내가 방에 처음 들어오는 날 해준 얘기가 있다. 예전에 이곳 고시원에 살던 남성이 한 여성을 고시원에 자주 데려와 오랜 시간 함께 있곤 했다는 것, 그리고 잠을 자고 가기도 했더라는 것, 그래서 고시원 사장은 CCTV로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마스터키로 강제로 그 방 문을 열어 둘 모두를 쫒아내고 이내 퇴실 조치를 했더라는 것이었다. 고시원 사장이 들려준 얘기를 듣고는 속으로 기함했다. 그리고 이내 물음표가 잇달았다. 아무리 고시원이라지만 어떻게 강제로 방을 열 수 있지? 그럴 권한이 고시원 사장에게 있나? 직접 본 것도 아니고 CCTV를 돌려보고 외부인이 들어온 사실을 알았다니, 원래 CCTV가 그런 용도였나? 그러면서 절감했다. 여기는 집이 아니구나. 집이 될 수 없구나. 다른 이를 방에 들인다는 사실만으로 쫒겨날 수 있는 곳이 어떻게 집이 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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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사장은 외부인의 출입은 보안상의 문제가 있다고 이어서 말했지만, 보안 문제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의문이 끝까지 남았다. 물론 속으로 기함을 토한 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뿐,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규칙’이 생활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른 이를 들이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방이었다. 또 방에 초대할 사람이 마땅히 없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아주 가끔 일을 보러 고향에서 서울로 잠시 친구가 올라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내 방에 다른 이를 초대할 일이 없었다. 이렇다할 아는 사람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서는 대학도 다니지 않는 내게 사람을 만날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관계망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고, 아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이따금씩 본가에 내려갈 때뿐이었는데, 그마저도 현생이 바쁘다는 이유로 서울에만 내리 있게 되다보니 아예 사적인 관계 자체가 단절돼버렸다. 내게는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방도 없었지만, 방에 초대할 사람도 없는 셈이었다. 하긴, 외로움은 나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서울 인구 셋 중 하나가 1인 가구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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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와 함께 요리를 해먹고, 맥주를 기울이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물리적으로 필요하다. 동시에,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 기댈 수 있는 무형의 사회적 관계망도 필수불가결하다. 뜬금없는 얘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다다다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다다협동조합은 ‘안정적 주거를 기반으로 한 대학 비진학자의 사회적 고립 해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대학 비진학자를 위해 사회주택을 만들고, 사회주택을 기반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하는 목표. 단순히 유형의 집을 축조하는 것을 넘어 무형의 관계를 창조해내보고 싶어서, 서울에서 가장 외로운 공간 중 하나인 고시원에서 외로운 삶을 사는 내가 다다다에서 일한다. 집을 짓고,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반상회를 하고, 그렇게 다다다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면서 서로 외롭지 않을 만큼 가까워지길 바라서, 그래서 다다다는 사회주택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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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공간과, 그에 기반한 사회적 관계망이 내게 돌아오기 위해 일하고 일하고 있다. 다음에 고향 친구가 서울로 올라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다다다가 지은 우리집에서 자고 가라고. 와서 내가 새로 만난 이웃들과 인사도 하자고. 고시원에서 살아서 미안해, 같은 말은 더는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오늘의 시간이 나뿐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닿았으면 좋겠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집과 집에 초대할 수 있는 친구 모두를 갖는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다다다에서 열심히 일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출근이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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