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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다협동조합 Jun 09. 2021

고독사는 싫어서

비진학 청년 1인 주거 이야기 - 정래의 홈―에세이 7









앞으로 내가 이 고시원 방보다 넓은 크기의 거처를 경제면에서건 생활면에서건 책임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 
형광등 두 짝 중 한 짝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런 꽁한 마음들이 자꾸만 밀물처럼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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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서 사는 건 괜찮다. 정말 괜찮다. 고시원살이는 내 체질에도 맞고 분수에도 족하다. 하지만 고시원에서 죽는 건 괜찮지 않다. 지난 목요일 밤, 왼쪽 가슴이 쥐어짜이듯 답답했다. 숨도 턱턱 막혔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1시간 넘게 가슴이 답답했다. 어라,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지. 어떤 증상인지 열심히 구글링해봤다. 호들갑일지 모르지만 큰병 아닌가 싶어 너무 걱정됐다. 심근경색 같은 건 아닐까. 꽤 비만하고 고지혈증까지 있는 시원찮은 몸인지라 큰병 아닐까 하는 의심이 더욱 그럴듯했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의심이 깊어질 때쯤 되니 밤 1시였다. 응급실에 갈 수는 없다. 응급실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이번 달 술값에 돈이 너무 많이 나갔다. 별 것 아니겠지 싶다가도 만약에, 진짜로 만약에 큰병이면 어쩌지. 나 죽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사람 그렇게 쉽게 죽겠어. 아니지, 그래도 만약에 죽으면. 죽으면 어떻게 해. 여기 고시원이고 나 찾는 사람도 없는데. 고독사하면 어떻게 해. 죽고 나서 한달 뒤에 발견되면 어떻게 해. 죽는 것보다 혼자 죽는 게, 고독사하는 게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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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해서 집까지 찾아와줄 사람도 없다. 고독사하기가 너무 싫은 내가 내린 결정은 사무실에 가서 자야겠다, 였다. 일단 사무실에 가서 자면 다음날 출근한 사람이 발견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면 고독사는 면할 것 같아 택시를 잡고 사무실로 갔다. 어이없는 결론같지만 당시엔 그게 내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마침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할 일이 있기도 했다. 기사님, 영등포 가주세요. 양화대교를 넘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대강 누울 자리를 만들어 얼른 누웠다. 자리는 제법 싸늘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이 밤이 지나면 혼자이지 않을 수 있는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가 됐다. 다행히 별일 없었다. 잘 잤다. 잘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출근한 동료가 나를 깨웠다. 사람이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아무일 없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독사는 면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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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한 호들갑이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내 몸은 멀쩡했으니까. 그렇지만 두려웠다. 외로움은 관계의 부재뿐 아니라 그 이상이고, 죽음은 삶의 부재뿐 아니라 그 이상이다. 고시원은 외로움과 죽음이 공존하기 쉬운 공간이다. 고시원은 살기에 나쁘고 말고를 떠나 죽기에는 최악의 공간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아남아야지, 하고. 이렇게 외롭게 죽으면 억울하고 서럽기 그지없다고. 삶다운 삶에서 멀어질수록 삶의 동아줄을 굳게 붙잡는다. 고시원을 옮긴지 두 달이 되어간다. 건대에서 홍대로 이사했다. 요새는 비대면 강의가 많아져서 대학가 고시원 방값이 좀 떨어졌다고 한다. 원래 살던 곳보다 방값이 싼 곳으로 이사했다. 화장실과 욕실이 공용인 대신 방 크기는 더 넓어졌다. 물론 넓어봤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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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고시원에서 생활하다보니 생활하는 면면에 바뀐 점이 많다. 원래 살던 건대 인근의 고시원은 동네가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번화한 고층 빌딩과 허름한 골목의 병존이라는 서울 특유의 극단이 덜한 동네라고 느끼곤 했다. 홍대는 정 반대다. 합정에서 홍대 사이까지, 메세나폴리스부터 시작해 빌딩이 늘어서있다. 길 안쪽 구석구석이 번화하다. 물론 인근에 연남동이나 망원동, 상수동으로 가면 분위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내가 살게 된 고시원은 서교동 한복판이다. 집으로 가려면 번화한 거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는 타이마사지샵을, 토킹바를, 테마가 다양한 술집들을, 편집샵을 지나쳐야 한다. 오래된 세탁소와, 오래된 백반집과, 오래된 이용원이 집에 가는 길에 늘어서 있던 건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거리에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곳으로 터를 옮겼지만 왜인지 사람 사는 냄새는 덜해진, 그런 풍경. 오래 살 곳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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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여행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여행을 가서 과거나 미래를 고민하면 손해보는 느낌이다. 기껏 여행까지 와서 지난날에 대한 후회나 앞날에 대한 걱정만 갖고 끙끙대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 삶은 순간의 합이므로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마치 여행하는 그 순간에 집중해야 나중가서 후회도 남지 않는 것처럼. 일상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렇게 살지 못했다. 아무래도 고시원이라는 공간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삶이 마치 무한히 이어진다고 믿는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낭비하듯 살아오지 않았나하는 후회. 그리고 앞으로 내가 이 고시원 방보다 넓은 크기의 거처를 경제면에서건 생활면에서건 책임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 형광등 두 짝 중 한 짝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런 꽁한 마음들이 자꾸만 밀물처럼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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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이 여행이라면 분명 고시원 방보다 넓은 크기의 공간을 ‘가질’ 필요는 없다. 여행을 가는 길이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건 짐이 많으면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에 처음 살 때 일상을 비관하지 않은 이유도 공간을 많이 가져봐야 짐덩어리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주인공 바흠이 끝내 갖게 된 땅의 크기는 그가 죽어서 뭍힌 2미터 남짓에 불과했다. 사람에게 딱 그만큼의 땅이 필요하다면 고시원 방으로 족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일상이 여행이라면 고시원 방보다 넓은 크기의 공간을 ‘누려야’ 마땅하다. 좁다란 방에 갖혀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보내기는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가질 필요는 없지만 내가 누릴 필요는 있는 시간의 집합. 그게 바로 여행일 테니까. 그래서인지 무리해서라도 거처를 옮겨야 하나 싶은 생각이 안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따금씩 퇴근하고 고시원 방에 돌아오면 내 방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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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퇴근하고는 뭐하시냐고. 주말에는 뭐하시냐고.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그러게요, 제 취미는 뭘까요, 싶다. 퇴근하고는 방에 들어가 온몸에 힘을 빼고 송장처럼 침대에 눕는다. 기껏해야 자기 전에 팟캐스트를 듣는 정도. 잠이 솔솔 밀려올 때쯤 양압기를 코에 끼운다. 그렇게 잠에 든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면 세수하고 바로 출근한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길다. 그래도 사무실에는 누구라도 있고, 그 누구가 곁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내게 큰 영향을 끼친다. 고시원 방에 누워 있으면 요새는 사무치게 외로워서, 그래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방에서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잠으로 채운다. 그마저도 한동안은 정말 사무치게 외로운 탓에 잠에 들기도 힘들었다. 생활에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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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일상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겠다. 산책도 자주 나가고, 오랜만에 명상도 해보고, 좋아하는 소설도 읽고. 그렇게 나를 다시 붙잡아야겠다. 지금처럼 파도치는 마음이 아니라, 잔잔하고 단단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제는 20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최은영의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었다. 사람이 자기 삶과 붙어있는 정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단편이었다. 내가 내 삶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삶과 너무 붙어있는 나머지 절망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너무나 타인처럼 대한 나머지 냉담해지지 않는 정도로.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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