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를 물로 보면 안 됩니다.
대선에 지방선거가 끝난 지도 몇 달이 지났는데, 여전히 정치권은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이제 정치권은 조금 숨을 고른 후에 국회의원 선거를 대비하려고 할 것이다. 잊을만하면, 선거철이 돌아오는 듯하다.
좀 늦은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선거 당선자들의 공약을 보자니 한숨이 나오고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투표 당일에는 흔히 하는 말처럼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니와, 심지어 그들이 내세웠던 공약은 서로 다른 당의 후보와의 차별성 없이 서로 같은 말을 마치 붙여 넣듯 어휘만 살짝 비틀어 나열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과연 이 공약의 필요성과 추진에 필요한 사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느냐라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연 공약을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서 출마했던 후보들은 어느 당이냐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경전철과 지역 도서관 유치 등을 내세우고 있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이러한 후보들이 예전 모 영화 대사처럼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는 돌 정도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는 애플, 구글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할 것이며, 이들 기업 몇 곳만 들여오면 한국의 실리콘 밸리(도대체 한국의 '자칭 실리콘 밸리'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물론, 지자체 입장에서 대형 기업을 유치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수많은 지역 인력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지자체와 중앙 정부의 세수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콕 집어 얘기하는 그 기업들이 지자체의 요청에 쉽게 움직일까? 글로벌 단위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들 기업이 과연 그럴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냥 말 그대로 공약(公約)은 공약(空約) 일뿐이라며 웃고 넘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것이 한두 명의 당선자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몇몇의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냥 웃어넘길 수 없다. IT를 몇몇 기업이 주도하는 단순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그 불편한 시각이 읽혀서다.
이러한 시각은 국내 기업을 대하는 시각에서 더 심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IT기업들은 글로벌 규모로 성장한 기업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게 지자체장이 본사 이전을 요청한다고 쉽게 동의할 리도 없을뿐더러, 세수 감면이나 여러 가지 지역적 특혜에 주판알을 튕기지 않을 리도 없지 않은가?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공약을 발표했다면 실천 계획 없는 선거용 공약이고, 만약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내세운 공약이라면 그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IT기업은 자동차 회사나 철강사 등의 생산기반 기업들 대비 이동에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없다는 생각이 이러한 말 그대로 편협하고 나이브한 공약 제시에 한 몫했을 것이다. IT회사도 다른 분야 못지않게 대형의 인프라가 필요하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무실(물론 요즘은 재택근무도 많아졌지만), R&D를 위한 연구소, 필요한 기기를 만들어낼 제조공장, 서버와 데이터 시스템을 관리할 데이터 센터, 여기에 더 많은 인프라가 요구되는 분야인 것을 이들은 간과한 것이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당선되고 나면 본인의 치적을 위해 무언가 비슷한 것이라도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구색 맞추기를 위해 막무가내의 IT기업 유치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규제의 무분별한 완화와 선심성 지원책의 남발로 이어질 것이다. 과거 사례에서도 이렇게 추진하다 기업유치 및 산업 활성화에 실패한 '국제 **지구'. '**벨리'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부문별 한 공약과 억지 추진이 해당 지자체, 그리고 IT산업분야, 더 나아가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도움이 될까? 오히려 여러 차례 지적되었던 것처럼 보여주기 식의 일회성 정책과 사업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지는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할 일이다.
IT분야는 무분별한 공약과 정책이 오히려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썩게 만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분명 누군가는 성공하고, 성공의 결과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공약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약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속 빈 정책은 결국 불필요한 세금 낭비로 이어지고 반드시 지원받아야 하는 분야는 외면받을 수 있다. 심지어 이러한 IT분야에 대한 막무가내적인 요구와 압박은 정치 상황이 복잡하고 조금이라도 눈에 보일 수 있는 성과를 보여야 할 때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것이 필자가 우려하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프리퀄 1편에서는 두 가지의 (스타워즈 마니아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숨겨진 위협이 암시되고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숨겨진 위협을 싹 틔우는 정책이 남발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차분하게 IT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IT는 오늘날 한국 경제에서 天下之大本(천하지대본)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필자가 2022년 5월 31일 온라인 뉴스 매체인 파인드비(findb.co.kr)에 게재한 칼럼 글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