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고3. 집에서 상전 대우를 해 준다는 시기. 그 해 3월은 유난히 추웠고, 폭설마저 왔다. 오죽하면 그 독한 우리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야간자율학습을 취소했다. 평소보다 일찍 하교했는데도 버스가 기어가는 바람에 늦게 집에 들어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윗집 아줌마가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엄마 암이시라며. 괜찮니?" 엄마가 암이라는 걸 짐작은 했지만 확신을 한 것은 그때였다.
그렇게 10년여간 엄마는 병원에서 반, 집에서 반 시간을 보냈다. 컨디션이 아주 좋을 땐 친척집으로 여행 가기도 했지만 9년 차 정도부터는 아예 병원에서 나오시질 못했다. 아빠는 한 시간 반 거리의 병원으로 퇴근했기에 이제 갓 회사생활을 시작한 나는 항상 불 꺼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맞벌이 집안의 외동으로 자라서 집에 혼자 있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때와 기분은 많이 달랐다.
우리 집은 지은 지 20년이 넘어가는 아파트로, 동네로 치자면 이제 "구축"에 속하는 동네였다. 옆동네에 신도시가 크게 생기는 바람에 젊은 사람들은 점점 이 단지를 떠났다. 명절 때 오히려 주차차량이 늘어나는 곳이 된 것이다. 나이만큼 낡은 샷시에서는 겨울만 되면 그렇게 찬바람이 들어왔다.
우리는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 엄마를 그 낡은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벽지는 누렇게 떠 가고, 베란다의 페인트는 칠이 벗겨지고 있었지만 출근과 간병 그 사이에 집을 고치고 돌볼 조금의 여유조차 낼 수 없었다. 이사만이 이 어둡고 낡은 집에서 벗어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취업 공부를 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동네 도서관으로 간 김에 오랜만에 서가 사이를 걸었다. 페인트칠이나 새로 사는 가구 없이도 할 수 있는 DIY인테리어책을 찾아보려고 했던 것인데 어찌하다 보니 정리정돈 책을 빌려오게 되었다. 당시에 '당장 쓰지 않아도 싸게 사는 게 이득'이란 개념이 팽배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버린다>는 말이 굉장히 무섭게 들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공포영화가 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가. 자꾸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버리는 건 여전히 무서웠지만 '재활용 배출'이나 '종량제 하나 정도의 분량'이라면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까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자그맣게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집의 나이만큼이나 낡은 붙박이 신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간에 붙어있는 아주 작은 서랍, 저 서랍을 열어본 지가 언제더라? 그렇게 충동적으로 20년 동안 한 번도 정리하지 않은 신발장의 서랍을 열었다. 뭐가 끼어 있는지 잘 열리지도 않아 낑낑대면서 서랍을 빼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손바닥 두 개 만한 서랍을 통째로 뒤집어보았다. 놀랍게도 신문지 위가 잡동사니로 꽉 찼다. 서랍이라는 공간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했던가? 그다음은 보물 찾기를 하듯 버릴만한 것을 골라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건대 쓸 것만 골라서 서랍에 담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 같다)
버린 물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 빨래를 해도 때가 지지 않는 운동화끈
- 이미 10년 전에 없어진 정육점의 쿠폰
- 비슷한 연배의 중국집 스티커판(여러 개)
- 녹슨 클립
- 구멍 난 장갑과 양말(다수)
- 서랍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
- 너무 짧아서 쓸 수 없는 노끈
너무 오래된 기억인 데다가 기록조차 남기지 않아서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남겼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서랍장 정리가 내 인생을 바꾸어놓을 정도로 임팩트가 대단했다는 사실이다!
굳어버린 구두약(아버지는 구두를 잘 신지 않으신다)과 구멍이 뚫린 양말 따위를 '나중에 또 쓸지도 몰라'라며 서랍에 다시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릴 것들이 작은 쓰레기통 하나 분량은 나왔다. 물건이 가득 차서 제대로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던 서랍이 부드럽게 제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끔 서랍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고 지낸다. 쓸모를 생각하는 건 뒤로 미룬 채 일단 서랍에 밀어 넣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며 집이 작고 낡은 것만 원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당장 이사나 리모델링을 할 수 없다고 주저앉아 울 것이 아니라 집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의 서랍을 찾아 그곳을 정리해 보자. 엉켜있던 물건을 필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으로 나누고, 필요 없는 것들은 쓰레기통에 과감히 버리면 아마 마음 한 구석에 뭔가 시원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덜어내어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어차피 집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은 서랍 하나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선별'한 물건들을 '내 기준'에 맞춰 넣는다는 것은 나의 현재와 미래를 내가 선택하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같다. 작은 서랍 정리의 성공은 조금 더 큰 장소의 정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공간이 정리되면 그 공간의 통제권이 물건에서 내게로 넘어온다. 통제권이 내게 있다는 것은 더 이상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선언과도 같다.
미래가 막막해 보인다면 지금 당장 집에서 가장 작은 서랍을 정리해 보자. 그리고 그 서랍의 통제권을 내가 쥐어보자. 이것이 내가 환경에 주눅 들어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서랍 정리를 권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