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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잎클로버의 꽃말은

by 미니멀파슈하

지난 주말, 집에서 한 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의 카페에 다녀왔다.


우리 집은 아이 위주로 주말을 보내기보다는, 어른 위주의 주말을 보내고 그곳에서 아이가 지낼 수 있는 지를 찾는 편이다. 그러니까 우선순위가 아이가 아닌 어른에게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을 가도 아이가 원해서 가는 게 아니고 우리 부부가 가고 싶으니까 가는데, 아이가 있으니 그다음에 여행지에서 아이가 할 만한걸 찾는 식이다.


우리 부부는 첫째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는데(아이의 순한 성격도 한몫했다) 어느 날 남편이 조금 충격적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회사 후배 중에 우리 집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남매를 키우는 집이 있는데, 주말마다 아이들을 위해 외출을 한다는 것이었다. 공원, 박물관이나 키즈카페 등등... "원래 그렇게들 많이 살아." 내 대답이 도움이 되었으려나?


아무튼 거기에 고양된 남편이 후배에게 아이들 데리고 갈만한 곳 몇 군데를 추천받아왔는데, 그중 하나가 집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천안의 카페였던 것이다. 너른 잔디밭과 사진 찍으면 기가 막힌 배경을 선사해 줄 아기자기한 건물이 여러 채 있는 제법 큰 규모의 카페였다. 대기나 예약 없이 쿠키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었다. 평소 자차 20분 이내의 이동만 하던 우리는 그렇게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카페 갈 거야. 한 시간 반쯤 걸린다니까 한숨 자고 있어."


"카페에 가는데 왜 그렇게 오래가야 해?"



흠.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로고. 아마 아이들에게 카페란 어른들이 맛대가리 없는 까만색 물을 마시는 곳인 동시에, 운이 좋으면 때때로 조각 케이크나 마카롱을 얻어먹을 수 있는 곳. 크게 떠들거나 뛰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책 읽거나 수수께끼 맞추기 정도는 해도 괜찮은 곳 쯤으로 알고 있으려나. 아무튼 카페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실존은 본질에 앞서는걸(사르트르). 인간이니까 한 시간 너머의 카페에도 가보는 것이고. 사설이 너무 길었나?



"거기 놀기 좋대."


"?"







의문을 가진 채 차에서 잠든 아이들. 아니나 다를까, 카페 도착하고 잔디밭에 있는 커다란 미끄럼틀을 보자마자 난리가 났다. 여름의 마지막 햇살을 만끽하기 위한 레이스가 미끄럼틀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카페에 왔는데 빵과 커피는 뒷전이 되었다. 그 위에 있으니 쿠키 만들기 체험도, 캐릭터 빵도 전부 무용이었다. 아이들도 쓰기 좋은 낮은 테이블과 의자가 지천이었지만, 아이들은 파란 잔디밭으로 다이빙해 들어가는 미끄럼틀이 그저 제1순위였다.



"엄마 여기 최고야!"



집 앞 놀이터에도 있는 미끄럼틀이건만, 바닥에 잔디 좀 깔려있다고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하지만 그것만이 비법이라고 하기엔 잔디는 너무 파랬고, 하늘도 너무 파랬다. 낮은 담장 너머로 뿌우우우우- 소리를 내며 기차마저 지나간다.



"엄마, 기차! 기차!"



이제 막 입이 트기 시작한 베리가 내 옷깃을 잡아끌며 상당히 고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기차 꽁무니가 없어진 걸 확인하고 나서 또 미끄럼. 갓 구운 빵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혀 오니, 그제야 엉덩이를 툭툭 털 수 있었다. 우리는 한쪽에 테이블을 잡고 따뜻한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니 가방에 넣어 온 책 생각이 났다. 나는 무레 요코의 에세이를, 낑깡이는 그림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한참 동안 테이블 위에서 각자의 업무를 보고 이제 집에 가볼까 싶어 빵 몇 개를 사들고 오는데, 낑깡이가 시익 웃으며 다가온다. 뒷춤으로 감춘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내가 뭘 찾았는지 맞춰 봐."


"뭘 찾았는데?"



사실 아까 미끄럼틀 옆, 클로버들이 잔뜩 피어있는 곳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있던 걸 봤다. "네잎클로버다!" 어느 누나의 목소리에 "나도 보여줘! 나도 찾아볼래!" 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던 지라, 그 손에 쥔 게 무엇인지 대충 짐작은 했다.



"짜잔, 이것 봐! 다섯잎클로버야."


"오잉?"



세잎클로버도 있고, 네잎클로버도 있으니 다섯잎클로버 역시 존재할 법했지만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존재였다. 혹시 일부러 모양을 낸 것 아닌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꼼꼼히 살폈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다섯잎클로버가 맞았다. 엄마의 검증까지 받고 나자 낑깡이는 방방 뛰며 돌아다닌다.



"다섯잎클로버를 찾았다~ 난 이제 행운이야~"



네잎보다 하나가 더 맞으니 네잎클로버보다 더 큰 행운을 줄 거라고 여기는 단순 셈 추론의 결과일까? 손 끝에 클로버를 쥐고 높이 든 채로 과장된 목소리로 "세상에 다섯잎클로버가 있다니~" 라며 과장되게 혼잣말을 하는 것 보니 여기 있는 모두에게 자기가 무엇을 찾아냈는지 자랑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클로버를 잘 말려서 책갈피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책갈피의 소중함을 아직 모르는 아이가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거지'라는 눈빛으로 알겠다고 대답한다. 아니, 원래 네잎클로버를 책갈피로 만드는 건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하지만 결국 책갈피는 만들지 못했다. 차에 타고 집에 오다가 다섯잎클로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방방 뛰어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던지라 너무 속상해하는 건 아닐는지 좀 걱정이 되었는데, 오잉, 아이는 의외로 씩씩했다.



"힘들게 찾은 거 잃어버렸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난 우리 가족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

이건 행운보다 더 좋아.

그래서 다섯잎클로버 잃어버려도 괜찮아.

우리 가족이 있으니까."




다섯잎클로버는 금전운과 동시에 불행을 뜻한다고 한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면 관리 감독에 품이 든다. 그래서 너무 많은 물건은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금전운과 불행을 한 꽃말로 묶었나 보다. 정리하고 청소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많이 가졌다는 그 기분에 취해 방 하나 가득 옷을 가져본 적도 있었다. 그때 행복했냐고? 결코 아니다. 행거 9개분의 옷을 가졌던 그때 보다 <내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25벌의 옷만 가진 지금이 훨씬 만족스럽다.


사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아이의 물건은 정리하는 게 항상 조심스러웠다. 어른의 '추억'은 아이의 '추억'과 무게가 다르니 중요한 물건의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다. 존재 자체가 가치인 것도 있을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나의 메시지가 아이의 마음에 언젠가는 잘 닿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이가 실재하는 것보다 그 너머에 있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순간이 오다니, 수많은 잡동사니보다 미니멀라이프의 정신을 꼭 물려주고 싶었던 나에게 아이의 이 대답은 내가 꿈꿔오던 것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네가 행운이란다.




이 날의 일기


손에 다섯잎클로버를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아무리 확대해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만의 추억을 또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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