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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딜카페를 비우다

불안한 미래의 걱정도 함께

by 미니멀파슈하

시작은 아기침대였다.


조금 이른 휴직을 앞두고 회사 복지샵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스크롤 밑으로 아기침대가 눈으로 확 뛰어 들어왔다. 첫째는 실평 10평 남짓한 도시형 주택의 작은 집에서 태어난 탓에 아기침대를 놓아 볼 생각조차 못해봤으나, 5년의 텀을 갖고 세상에 나오는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20평대 후반의 넓은 거실과 침실을 누릴 참이었다.



여섯 살 남자아이의 거친 생각과

허리도 가누지 못하는 신생아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산후통증에 시달리고 있을) 나...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아기침대는 필수가 틀림없으며, 무엇보다도 이 가격이라면 계산기를 몇 번 두드려봐도 아기침대를 구입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나의 계산법은 [새 아기침대의 가격 - 3개월간의 아기침대 대여료 = 당근에서 형성된 아기침대의 가격]. 그렇게 커다란 박스가 집에 도착한 날, 난 드디어 “핫딜”의 재미를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작은집이 인생 첫 보금자리였던 첫째 아이는 그 작은 집의 거실을 기어서, 그리고 이내 걸음마로 점령해 버렸다. 작은 집이라 비율에 맞게 거실도 작았다. 남들은 베이비룸을 사서 놓는다는데, 그 베이비룸을 둘 공간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넓게 놀 수 있도록 티비장을 치웠고, 매번 열어젖히는 부엌 하부장에서 칼과 양념을 빼서 상부장에 올려두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국민 서랍장을 둘 만한 공간도 없는데 장난감은 점점 늘어났다. 마침 용도를 잃어버리고 비어있던 부엌 하부장에 아이의 장난감을 넣어주었더니 내가 프라이팬을 꺼낼 때 아이는 장난감 자동차를 꺼냈다. 그렇지 뭐, 서랍이 그게 그거지 뭐. 작은 집에서 아이 키우며 사는 나로서는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보다는 “옛날엔 그거 없이도 다 키웠다”는 말이 더 위안이 되었다. 미니멀라이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일종의 생존전략이랄까.








그러다가 널찍한 집에서 느지막이 둘째를 갖고서야 그놈의 “핫딜” 재미를 알아버린 것이었다. 아기침대는 단지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이렇게 핫딜로 육아템을 장만한다면, 돈을 쓰고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격 비싼 젖병소독기도 핫딜로 사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쇼핑몰에 들어가 소독기의 가격을 체크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자 갑자기 가격이 쑥 오른 것이 아닌가. 알고 봤더니 전날 봤던 그 가격이 핫딜가격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1원 한 푼 쓰지 않았지만 눈뜨고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주 억울했다. 정보가 돈이 되는 사회에서 핫딜가를 보고도 핫딜인 줄도 모르다니.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 길로 바로 핫딜카페에 가입했다. 내가 보고 있는 그 가격이 핫딜가인지 아닌지 카페 회원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핫딜 게시판에서 보름동안 '존버'한 결과 나는 젖병소독기를 무사히 핫딜가로 구매할 수 있었다. 기다림 끝에 핫딜 있나니! 핫딜 구매에 재미 들린 나는 소독기뿐 아니라 아기담요, 물티슈를 연이어 핫딜가로 구입했다. 그때 내 기분? 의기양양, 그 자체였다. 아니 이 재밌는 걸 이제껏 모르고 살았다니.

핫딜카페의 회원들은 너무 친절해서 "혹시 이런 것도 필요하실까 봐 올려요."라며 각종 물건들의 핫딜 정보를 게시판에 올려주었다. 덕분에 어차피 사야 했을 첫째의 겨울점퍼를 만원대로 구입했고(그때는 한여름이었지만) 기왕 구매하는 거, 배송비도 아낄 겸 둘째 아이가 내년에 입을 옷도 구매했다. 아주 현명한 소비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것들을 얼추 다 사고 났는데도 심심하면 핫딜게시판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남들은 다 역류방지쿠션을 산단다. 기저귀갈이대는 필수란다. 트롤리는 두고도 또 사는 템이라고 한다. 나 첫째 키울 땐 집에 다 없던 것이었는데. 키친헬퍼? 이런 아예 처음 보는데 누군가가 "이 가격 살면서 처음 봐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나도 지금 당장 사두어야 할 것 같았다. ...신이 이러라고 상상력을 인간에게 준 건 아닐 텐데.




그러다가 기가 막히게 예쁜 돌아기 옷을 간발차로 핫딜가로 사지 못했던 날, 갑자기 내가 이 당장 필요도 없는 것들을 사겠다고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 물건을 싸게 사지 못해 가계를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 남들은 다 사는 좋은 물건을 싸게 못 사서 우리 아에에게 좋은 걸 더 못 해준 안타까움? 미리 사두지 못해 시기적절하게 육아템을 손에 쥐어주지 못한 죄책감?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부정적인 감정이 실체가 있는 것이 맞는가? 굳이 안 사도 되는 물건들을 몇 푼 싸게 구입한답시고 시도 때도 없이 글을 확인하고, 아이의 부름에 가만있어보라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 안 사도 되는 물건을 시간 놓쳐 좋은 가격으로 못 샀다고 기분이 나빠지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아니었다.


아직 사야 할 몇 가지 출산준비물이 남아있었지만 나는 즐겨찾기에서 핫딜 게시판을 없애고, 바로 핫딜카페를 탈퇴했다. 그러자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 나쁜 긴장감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도 사라졌다.



물건을 아무리 싸게 사 봤자 안사면 100% 할인이고, 싸게 미리 사서 집에 쌓아봐야 부동산 1평 가격 밑이다.

나는 ‘없이도 잘 키웠다’는 말의 전승자이고 국민문짝과 점퍼루 없이도 첫째를 잘 길러낸 경험이 있다.


과거에 사는 사람은 후회가 많고

미래에 사는 사람은 걱정이 많다고 했다.

핫딜 게시판을 보며 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현재를 살아야겠다.




그 때 핫딜로 샀던 아기침대. 백일도 못쓰고 당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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