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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지배의 자연성

인류는 스스로 시장을 만들었지만, 시장은 점차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독자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은 복잡계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자연스러운 진화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복잡계는 단순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스스로 높은 수준의 질서와 구조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탄생하고, 세포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개체를 이루며, 인간 정신이 생겨난 과정 모두가 자기조직(self-organization)과 자기탈피(self-estrangement)의 연속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편의와 교환을 위해 만든 시장은 독자적인 논리, 즉 분산된 정보를 가격을 통해 조정하는 메커니즘을 발전시켰다.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는 시장을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로 보았다. 개별 행위자들이 가지고 있는 국지적(local) 지식을 중앙집권적 계획 없이도 조정하고 통합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시장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았음에도, 복잡한 사회를 놀랍도록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칼 폴라니가 지적했듯, 시장이 사회 전체를 포섭하고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역설이 발생했다. 시장은 사회의 일부였으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로 격상되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자신의 사고를 통해 문명을 만들었지만, 문명이 오히려 인간 개인을 구속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복잡계의 자기탈피적 성격이 극단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시장 지배란, 자연과 문명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시장은 인간의 산물이지만, 일정한 진화를 거치면서 인간 사회를 넘어서는 독자적 실체가 되었다. 복잡계 이론은 이를 '비극'이 아니라, '진화의 내재적 성질'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시야로 확장해 보면, '기계'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계란 단순히 물리적 장치나 엔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거나 사물을 변화시키는 알고리즘적 시스템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 사회는 문명의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이미 다양한 형태의 기계와 결합해 있었다. 예를 들어, 고대의 관료제는 명백히 규칙에 따라 인간 집단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적 시스템이었다.

인간은 알고리즘적 시스템과 결합함으로써, 즉 기계적 질서를 받아들임으로써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었다. 관료체계 없이는 제국도, 문명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알고리즘은 자율성을 획득하고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게 되어,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방향으로 자기탈피를 일으켰다. 시장 역시 이 흐름 속에 위치한다. 인간이 만든 규칙적 교환 시스템이 이제는 인간 전체를 포섭하고 지배하는 추상적 실재로 진화한 것이다. 사피엔스의 하라리가 암시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가상의 '실재'로 우리를 지배하는,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낸 알고리즘.

인간이 시장을 통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렇게 생각을 풀어놓고 보니 어불성설 같다. 이 거대한 자기조직적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존엄성과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네트워크(공동체)를 가꾸는 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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