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憤怒

분노에 대한 통찰

by 원진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미주리주 에빙 외곽의 세 개의 광고판



영화는 딸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미드레드(엄마)의 광고판에서 시작된다.

딸이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죽기 전 강간까지 당했다.

미드레드의 분노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수사조차 하지 않은 경찰들을 향한 분노로 불타오른다.

처음에는 그녀가 누가 딸을 죽였는가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점 초점이 바뀐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나는 어느새 누가 범인이 인지가 아니라, 저들의 분노가 사그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관적인 영화에 대한 생각]


이 영화의 깊은 뜻을 내가 이해를 다 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은 바로, 분노 憤怒


우리는 언제, 왜 분노하는가?

그리고 그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외부 요인에 의해 쌓인 상처들이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표출되는 과정이다.


미드레드의 분노


미드레드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딸이 죽고 난 후, 그녀는 내면에 쌓여 있던 상처와

"내가 더 좋은 엄마였다면?" 하는 후회가 만나면서

그것은 폭발적인 분노로 바뀌었다.


딕슨의 분노


딕슨은 경찰이지만, 무능하고 유치한 행동을 일삼는다.

엄마와 함께 살면서 경찰 근무 중에도 코믹스를 읽는,

누가 봐도 '필요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의 분노는 단순한 공격성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심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직면하지 못하는 패배감과 무력감이었다.


그는 그 감정을 광고판 직원에게 폭력으로 표출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존경하던 경찰 서장이 자살하자,

그 분노는 더욱 커져 무자비한 폭력으로 폭발했다.

결국, 이 영화에서 분노는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분노의 의학적 정의]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분노는 무엇일까?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신경계, 호르몬, 뇌 기능과 깊이 연결된 반응이다.


심리적 측면으로는

불공평함, 좌절, 위협 등을 경험할 때 촉발되는 감정이고

경미한 짜증부터 극심한 분노까지 다양한 강도가 있다.

인지적 왜곡 ( e.g.,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을 수반할 수 있다.


생리적 반응은 (뇌와 호르몬의 변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투쟁-도피 반응 (Fight-or-Flight Response)

아드레날린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 코르티솔을 증가시킨다.

심박수 증가와 혈압 상승, 근육 긴장, 땀 분비 증가와 같은 반응들이 일어나고

장기적으로 반복되면 심혈관계 질환, 면역력 저하, 만성 스트레스 장애와 연결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를 오래 쌓아두면 안된다..


분노의 유형에는

충동적 분노 (impulsive Anger):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형태 (딕슨의 행동처럼)

억제된 분노 (Suppressed Anger): 속으로 쌓아두는 경우, 미드레드가 오랫동안 쌓아온 감정과도 연결된다.

병적 분노 (Pathological Anger): 특정 정신 질환과 관련된 과도한 분노 반응

이처럼 분노는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모두 망칠 수도 있는 강력한 존재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분노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도 모른 채

그 감정을 주변에 쏟아 내고 있었다. (그 강력한 감정이 어쩌면 흘러나온 것일 수도 있고)


미드레드는 정의를 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기력감과 후회감으로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를 겪고 있었고

딕슨은 자신의 인생이 엉망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며, 약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중반부,

윌러버 서장의 자살과 편지들이 미드레드와 딕슨을 바꾸어 놓는다.

그는 시한부 삶을 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죽기 전에 딕슨과 미드레드 각각에게 편지를 남겼다.

딕슨에게는 "너는 원래 decent 한 사람이다. 나는 네가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의 편지는 딕슨의 강렬한 분노를 삼켜버렸다.

그는 처음으로 분노를 내려놓고, 사람으로서 변하기 시작했다.


미드레드에게는

그 사건을 신경 쓰지 않은 게 아니다. 그녀의 광고판 계획이 얼마나 이목을 끌게 만들었지 칭찬했다.

그녀가 그 편지를 보면서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진 게 보였다.


[마지막 장면: 분노의 끝은 무엇인가]


미드레드와 딕슨은 함께 길을 떠난다.

그들은 여전히 분노를 가지고 있지만,

처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드레드가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복수인지, 새로운 시작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분노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이 강력한 감정을 마주해야 하는가]


영화는 우리에게 참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마주해야 하는가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상처와 트라우마는 어떻게 분노로 변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결국, 분노는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때 녹을 수 있으며,

그것이 사람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분노와 연관된 영화로 갈증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갈증도 참 폭력적인 영화였는데

참 지독하게도 그 분노의 감정을 온전히 녹여냈다.

전혀 딸에게 관심이 없었던 형사 출신의 아빠가 딸을 찾으려고 하면서

자신이 딸이 어떤 사람이었다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자신이 만들어낸 망상 속 가족이 완벽하게 깨지면서

그 분노는 극을 달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광기, 집착, 자기 파괴적인 분노가 결국 그를 삼키면서 영화가 끝나는

두 영화 모두 분노의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참 결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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