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디자인 뮤지엄_플레이데이
9살 아이와 긴 여행을 계획하면서 세운 목표 중 하나가 "많이 웃고, 잘 놀다 오기"였다. 놀다 오는 게 뭐가 어렵다고라고 하겠지만, 에너지가 넘쳐나는 9살 아이와 하루 24시간 35일을 보내는 일은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소모가 따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 몇 달 전부터 운동으로 체력을 쌓는 동시에 잘 놀 수 있는 수단과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 중 하나가 영국의 놀이의 날, 플레이데이이다.
8월 첫째 주 수요일은 영국 전역-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 어린이들이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놀이의 날 National PLAY DAY”이다. 이는 영국에서 가장 큰 놀이 관련 행사로, 아이들의 놀 권리를 확인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삶에서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캠페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데이가 생긴 이유와 목표는 명확한데, 1986년, 런던의 학교에서 놀이 센터와 모험 놀이터 조성에 관련된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어린이들의 놀이와 관련된 사람들이 <플레이 데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플레이 데이를 지정하여 아이들에게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고, 지역 주민들에게 놀이 공간 및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지역 사회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1987년 작은 행사로 시작한 플레이데이는 1989년 런던에서 약 12개의 행사로 확대되었고, 1991년에는 전국적인 행사로 확대되었으며, 현재는 영국에서 가장 큰 어린이 놀이 축제로 자리 잡아 V&A, 디자인뮤지엄과 같은 기관은 물론, 거리, 공원, 숲 해변 등에서 수백 개의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우리의 35일간의 여행을 시작하는 첫날이 그 ‘놀이의 날’이었다. 이곳 지역사회에서 열리는 즐거운 행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면 여행의 시작을 재미있고 특별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에 한 곳인 디자인 뮤지엄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플레이데이> 행사가 있어서, 홈페이지를 통해서 미리 예약해 두었다.
디자인 뮤지엄은 1989년 세계 최초로 문을 연 디자인 박물관으로 가구, 그래픽, 건축, 산업 디자인 등 현대 디자인의 대부분을 다루는 곳이다. 템즈 강변에 있던 작은 박물관은 지금 3배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홀랜드 공원 옆으로 이사를 했고, 2018년 올해의 유럽 뮤지엄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7-08년 템즈 강변에 디자인 뮤지엄에 다녀 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 새 디자인 뮤지엄도 많이 기대가 되었다.
긴 비행으로 런던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이라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이 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주니 아이는 많이 기대했고, 정말 재미있게 참여해서 예약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게 노는 아이는 피로, 시차 적응 따위는 모른다. 엄마만 고용량의 카페인이 필요할 뿐.
디자인 뮤지엄의 플레이데이 행사에는 총 4개의 액티비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정원 가꾸기에 진심인 영국인만큼 디자인 뮤지엄 뒷마당에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2007년 런던에서 공부할 당시, 지속가능성을 마을과 지역사회 단위에서도 다양하게 시험해 보는 Dott 07과 같은 행사가 열렸었는데,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큰 화두가 지속가능성이었다. 디자인 뮤지엄의 전시, 뒷마당의 정원, 이곳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에서 모두 지속가능성과 자원의 건강한 재활용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Buzzy Bees 버지 비 놀이: 벌의 소중함을 공유하고, 벌이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배워 벌이 된 것처럼 놀이해 보는 게임.
새 집 만들기: 빈 박스를 이용해 새집을 만들어 보는 활동.
미니 정원 만들기: 달걀 포장지를 활용해서 샐러드용 채소 씨앗을 심고 장식해 보는 활동.
Wiggly Worm 위글리 웜 만들기: 찰흙으로 꿈틀대는 지렁이, 달팽이, 나비 등을 만들어보는 활동.
4가지의 체험을 순서대로 참여하는 동안 행사를 돕는 스태프들이 끊임없이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디자인 의도를 물어보고 진심으로 반응해 주었다.
담율이 가 만드는 새 집을 보고 “하우 러블리 How lovely~” 하자, 앞에 앉아있는 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 거는요 How about mine?”이라고 물어봤다.
전 세계 어린이는 똑같구나. 아이들은 항상 칭찬에 목마르다.
담율이가 무지개 스틱으로 새 집을 꾸미지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무지개 스틱을 붙이기 시작했다. 옆에 아이가 새가 앉아 쉬는 곳을 붙이자 담율이도 다이빙 대 같이 쉴 곳을 만들어 붙였다. 서로 작품을 보고 예쁘다고 하고 따라 하기도 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손 기술로 하나 되는 작은 글로벌 세상이었다. 런던 여행의 첫날이라 사람들의 칭찬에 어떻게 리액션해야 할지, 아니면 상대방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칭찬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사람들을 눈여겨 지켜보았다. 러블리, 골져스~ 아이 라이크~ 를 입에 달고 있으면 어느 정도 스몰 토크가 가능할 것 같았다.
I like your dress.
I like your colour.
I like your bag!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칭찬에 후하고, 거리낌 없었다. 칭찬을 많이 듣고, 또 들은 만큼 칭찬을 많이 하니 기분도 좀 좋아지는 것 같았다.
새 집을 오랜 시간 걸려 완성하고 다음 공간으로 이동해 미니 가든을 또 정성스럽게 꾸몄다. 달걀 상자를 재활용해서 만들었고, 디자인뮤지엄 정원에서 낙엽과 지렁이를 모아 영양소를 풍부하게 만든 흙을 조금씩 담아줬다. 씨를 뿌려 놓으면 이틀이면 자란다고 한다. 이렇게 35일 일정의 여행 첫날부터 만든 것을 에어비앤비까지 소중하게 싸들고 왔다. 담율이는 사람들의 찬사를 많이 받은 결과물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한국까지 가지고 갈 거라고 했다. 나는 영국을 떠나 파리로 이동하기 전까지 다른 재미있고 예쁜 것들로 오늘 만든 것에 대해 잊게 해서 몰래 정리해 버려야 될 것 같다는 목표가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부 성공, 일부 실패했다. 새 집을 만들었던 재료들을 다 분리해서 한국까지 가져왔다. 이 재료들로 집에서 다시 만들 거라고 한다. 진정한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다.)
체험을 하는 동안 아이는 영어로 말을 잘 못해 좀 답답하긴 해도 손으로 그리고, 만들면서 자기를 표현하고, 낯선 외국 사람들이 자기 작품에 보여주는 반응에 좀 뿌듯해하며 이 시간들을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즐겼다.
“엄마, 내 거 보고 계속 사람들이 칭찬해. 내 작품이 영국 스타일 인가 봐”
플레이데이 캠페인의 추최 측은 놀이는 아이에게 만족스럽고, 창의적이며, 아이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다양한 활동과 행동을 포괄하는 용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에는 놀이 도구가 필요하거나 최종 결과물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혼자 또는 아른 아이들과 함께 논다. 놀이는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거나, 조용하고 사색적이거나 가볍거나 매우 진지할 수 있다.
오늘 디자인 뮤지엄에서 4가지 체험을 통해서 조용하지만 활발하게, 독립적이지만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긴 시간 진하게 놀이를 즐겼고, 이 즐거운 경험으로 인해 앞으로 남은 기간에 대한 기대들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잊지 말자! 아이에게는 놀이가 최고의 경험이자 공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