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프티 팔레_어린이 패션 디자인 워크숍
이렇게 좋은 곳을, 나만 몰랐어?
프티 팔레는 그동안 파리를 몇 번 방문하는 동안에도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에 순위가 밀려 가 본 적이 없었고, 가야 할 곳 리스트에도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가본 것이 너무 아까울 만큼 아름답고 멋진 공간이다.
유리 구슬을 엮어 만든 장 미셸 오토니엘의 샹들리에는 장난스러우면서 우아한 반짝임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철로 만들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 섬세한 난간, 지안도메니코 파키나(1826-1923)의 공방에서 제작한 바닥 타일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엄마, 이거 만들어 붙이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그러게 말이야. 사람 손이 무섭지.
공간 구석 구석 화려함이 눈을 돌릴 때마다 감탄을 자아냈다.
프티 팔레는 그랑팔레, 알렉상드르 3세 다리와 함께 1900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개최하기 위한 건물이었다.
만국 박람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1902년부터 프티 팔레는 미술관으로 활용되었다. 파리 시가 보유하고 있던 미술 작품이 이곳으로 옮겨지고, 여기에 기부 작품이 더해져 훌륭한 컬렉션을 갖추게 되었다.
무료로 입장하는 상설 전시장에는 모네, 카사트, 앵그르, 들라크루아 등의 그림이 걸려 있어 반가웠고, 벨 에포크의 주인공, 사라 베르나르의 초상에서 그녀의 눈빛이 그림을 뚫고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 사라 베르나르의 공연 포스터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알폰소 무하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녀의 신화와도 같은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파리를 넘어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장례 행렬에 100만 명 가까이 사람들이 모여 그녀의 마지막길을 함께했다고 한다. 이 사라 베르나르의 초상화 만으로도 프티 팔레에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프티 팔레 건물에서 나와서 정원으로 나가 보았다. 정원의 한 가운데 제프 쿤스의 ‘튤립 꽃다발 (Bouquet of Tuilips) 조각이 있다. 손의 모공까지 모두 표현된 극사실 주의 조형물이었다. 파리 연쇄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희망을 선물하려 제작되어 시민들에게 기증되었다고 한다. 프랑스가 뉴욕에 보낸 ’자유의 여신상‘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그러나, 키치적인 작품 특징과 상업주의의 행보를 보여온 제프 쿤스 작가에 대한 반감으로 한동안 파리 시민들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담율이는 파리 혁명 시기 시민군을 이끄는 여신이 들고 있는 깃발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투어 과정에 보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가 누군가에겐 잘 전달이 되고 있나보다.
컬렉션과 함께 프티 팔레의 카페도 유명하다. 카페는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을 둘러 싸고 아름다운 회랑에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어 아름답기로 손에 꼽히는 장소였다. 정원을 감싸는 회랑은 프레스코화와 철제 장식으로꾸며져 있었지만, 현재는 많이 훼손되어 2026년 3월까지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회랑을 보지도 못하고, 실내에서 식사를 해야해서 아쉬웠지만, 아쉬움을 남겨야 다음에 또 와야 할 이유가 생기니까.
다행히 실내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미술관 카페 중 가성비가 괜찮은 곳이면서 직원도 무척이나 친절했다.
카페에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프티 팔레 안으로 들어갔다.
상설 전시 맞은편 홀에는 패션 디자이너 샤를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의 전시가 기획전시로 열리고 있었다. 파리 패션쇼 하면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라는 코에 바람을 넣어 발음해야 하는, 이국적이면서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이 단어가 떠오른다. 워스는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을 공방에서 거대한 산업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고, 오트 쿠튀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패션 디자이너이자 혁신가이다.
오트 쿠튀르란 프랑스어로 '높은, 상류의' 라는 뜻의 Haute와 '바느질, 의상점'을 의미하는 Couture의 조합으로, 소수 고객층을 위한 최상급 맞춤복을 의미한다. 더 정확하게는 파리의상조합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자격을 얻은 의상 제작점에서 만들어지는 옷을 말한다.
워스는 자신이 디자인한 의상에 자기 이름을 브랜드 라벨로 붙인 최초의 ‘의상 디자이너’이자, 계절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고, 그 옷을 입은 '모델'을 통해 고객에게 보여주는 ‘패션쇼’의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옷감 가게에서 옷감을 사고, 재봉사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옷을 만들던 시대에서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창의성을 바탕으로 완제품을 ‘제시’하고, 고객이 선택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858년, 파리에 자신의 패션 하우스 '하우스 오브 워스(House of Worth)를 설립한 뒤, 유럽 전역에서 귀족 여성들이 그의 작업실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3세의 아내, 유제니 황후를 비롯해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이 워스의 주요 고객이 되었다. 특히 유제니 황후의 전속 디자이너가 되면서 파리를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워스의 새로운 방식은 현대 패션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 이후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를 본보기로 삼았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도시여서 그럴까, 파리지앵들의 패션은 다르다.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의 실체를 확인 할 수 있다. 영국 레고랜드 앞 버스정류장에서 영국인 여자와 스몰 토크를 하게 되었는데, 화두 중 하나가 파리 여성들의 옷차림이었다. 파리 여성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파리에 비하면 런던 여성들의 패션은 너무 수수하다고, 그 자리에도 없는 파리지앵들을 극찬하며 웃었다.
프티 팔레에서 열리는 특별전, 워스의 전시장으로 가는 홀 한편에 어린이들이 워스의 패션 디자인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워스가 스케치한 여인들의 드레스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꾸며보는 프로그램으로, 별도의 예약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이었다.
색연필로 컬러링을 하거나, 색지를 구기거나 접어서 질감을 주고, 드레이핑을 할 수 있다. 꼴라쥬의 형태로 색을 조합하여 나만의 드레스를 만들어 볼 수 있다. 패브릭을 사용하지 않아도 간단하면서 재미있게 드레스를 디자인해 볼 수 있어서 담율이는 순식간에 3벌의 드레스를 만들어 냈고, 헤어피스나 모자, 벨트 같은 액세서리도 만들어 디테일을 더했다. 파리에 오기 전에 V&A 미술관 등에서 아름다운 드레스를 많이 보고 관찰했던 터라 머리 속에 표현하고픈 디테일이 많은 듯 했다. 과감하게 색깔 조합을 해보고, 색지 조각을 작게 구겨 꽃으로 만들어 장식으로 사용했다. 이런 활동을 할때, 담율이는 집중도가 매우 높고 길다. 입을 꽉 다물고 손과 눈을 바삐 움직이면서 작품을 빠르게 완성시킨다. 나는 옆에 앉아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창작의 몰입에 빠진 아이를 즐겁게 지켜본다.
손 끝이 야물다.
어릴 때부터 젓가락질로 단련된 한국 아가들의 손가락들이 이럴 때 능력을 발휘한다. 옆에서 같이 체험하던 파리 혹은 다른 나라 가족들이 담율이의 디테일들을 보고 탄성을 자아내고 이것 좀 보라고 서로 얘기했다. 어린이에게 관대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환경 속에서 담율이는 크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뿌듯함이 속에 차곡 차곡 쌓이고 있는 듯 했다. 우리 나라에서 쓰던 재료와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창작의 즐거움에 빠져보는 이 기회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미학적 안목을 넓고 깊게 쌓아 아름다움을 일상에서 누릴 줄 아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