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마술 피리>의 등장인물이 된다면.

테이트 모던_TATE PLAY

by 풸롱

이렇게 우아한 놀이 공간이라니.


테이트 모던의 건물은 과거 화력발전소였다. 브라운 색 벽돌로 높게 둘러쌓인 외벽과 굴뚝, 내부를 가로지르는 철제 빔, 거대한 터빈 실 등 당시의 쓸모를 보여주는 단서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근현대 미술 컬렉션을 다루는 테이트 모던에는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마르셸 뒤샹, 백남준 등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미술을 논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테이트 모던의 상징과도 같은 터빈 홀에서는 매년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터빈 홀 바닥에 거대한 크랙이 가 있다거나(도리스 살세도 Doris Salcedo), 인공 태양으로 공간을 붉게 물들인다거나(올라퍼 엘리아슨 Olafur Eliasson, The Weather Project), 바닥에 도자기로 만든 해바라기씨 약 1억개가 깔린다거나 (아이 웨이웨이 Ai Weiwei, Sunflower Seeds) 센세이셔널한 기획으로 매해 주목을 받는 곳이다. 이 곳의 전시는 주로 대기업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데, 현재는 유니클로의 지원으로 TATE PLAY라는 놀이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테이트 플레이 시리즈는 모든 연령대의 가족과 방문객에게 예술가가 주도하는 무료 창작 활동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운영하는데, 2021년 출범한 유니클로 테이트 플레이에는 벌써 652,000여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테이트 모던


터빈 홀의 입구를 통해서 테이트모던에 들어갔다. 터빈 홀 안쪽에서 여러 음악소리가 아이들이 꺄르르 웃는 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놀이터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는 레이더처럼 반응하는 9살 어린이와 함께 자연스레 그 쪽으로 발길이 향했다. 무대 배경처럼 세워진 세트들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괴상한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연기자들과 더 괴상한 가면과 장식들이 직접 만지고 써볼 수 있게 벽에 걸려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놀이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연극 무대 속으로 들어 가는 것 같았다. 우리가 경험했던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마술 피리>를 각색한 잉마르 베르크만의 1975년 영화 <마술 피리>를 보고, 터너상 후보에도 올랐던 예술가 몬스터 체트윈드(Monster Chetwynd)가 영감을 받아 참여형 전시로 꾸민 것으로 작품 천둥, 균열 그리고 마법 (Thunder, Crackle, and Magic)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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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체트윈드(Monster Chetwynd)는 이 곳을 ‘용의 섬’, ‘야생 동물의 숲’, ‘원소의 시험’ 3가지 존으로 구성하였고, 각 존마다 영화의 장면이 반복 상영되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또 각 존마다 작가가 직접 만든 의상, 가면, 소품 들이 배치하고 있는데, 소품들이 약간 그로테스크한 면도 있다. 공룔, 괴물, 악당, 광대 등으로 분장을 한 연기자들이 아이들에게 장난을 건다. 예술가, 연기자, 관객의 경계가 허물어 진 놀이 공간에서 관객이 연기자가 되고, 쿠션과 카펫에 편히 앉아 존마다 상영되는 영화 장면을 보며 헤드셋을 끼고 있으면 꼭 영화 안에 들어 온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이런 놀이 환경이 좀 낯설었다. 클래식 음악이 쏟아져 나오고,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의 장면들이 상영되고, 배우가 나타나서 사람 머리(모형이지만)를 바구니에 담아 어깨에 메고 다녔고, 아이들은 리본을 돌리면서 놀고 있었다. 우리에게 유명한 그림 형제의 동화책들이 사실은 잔혹동화라는 사실도 생각나고, 이런 놀이 환경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낯설음에서 오는 신선함이 있었다.


테이트 모던, 테이트 플레이, Thunder, Crackle, and Magic



담율이는 이런 낯선 연극적 상황에서도 쉽게 녹아들어 배우를 쫓아다니고, 리본을 돌리고, 음악을 들으며 편견없이 놀았다. 아이가 많은 것에 대해 '인식'하고 '의견'이 생기기 시작하는 이때,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에 대해 말랑 말랑한 태도를 만들어 줄 것 같았다.



음악과 춤이 일상에 깃들기를


잠깐 음악과 운동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심각한 몸치여서 큰 맘먹고 끊었던 방송댄스 수업에서 하도 뚝딱거려서 선생님이 큰 웃음을 빵 터트린 적도 있다. 음악도 취향이라는 것이 뚜렷하게 없다. 그 때 그 때, 귀에 꽂히는 걸 즐겨 들을 뿐. 이런 내 유전자의 절반은 받았을 담율이는 걸음마도 느렸었고, 몸을 움직이는 데 겁이 많았었다. 그런 아이가 지금 1년 넘게 리듬체조를 배우고 있다. 리듬체조를 통해 몸으로 익힌 포즈와 감정 표현들은 여행 내내 우리의 여행을 풍요롭게 해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담율이는 타고난 체력은 그리 좋지 않아서 무리해서 놀았던 날은 코피가 자주 났고, 쉽게 지쳤다. 어릴 때 기초 체력은 꼭 만들어주자는 생각에 일주일 내내 리듬체조와 아크로바틱을 쉬는 날 없이 배우러 다녔다. 처음에 물구나무를 설 때는 팔이 부들 부들 떨려 넘어졌고, 다리에 쥐가 나서 저리다고도 했다. 그런 아이가 리듬체조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기술적인 부분을 해내기 위해 기초 체력 훈련을 하였고, 음악에 맞춰 안무를 숙지하고, 리본 돌리기를 연습했고, 5명이서 그룹을 지어 안무를 하는 AGG 분야에도 참가했다. 워낙 체력적인 부분이 처음 같이 시작했던 친구들에 비해 약했던 터라 팀에 방해되지 않고 끝까지 해내기만 해도 대견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아이는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맞춰서 몸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해 내고, 연습할수록 나아지는 결과를 재미있어 했다. 이번 여행을 떠나는 바로 전, 고양에서 국제 샤인컵 대회가 열렸고, 이틀간 밤 늦게까지 대회에 참가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바로 다음날 여행 길에 올랐던 것이다.


이렇게 몸에 익숙해진 리본과 율동을 보여줄 절호의 찬스가 왔다. 채트윈드의 설치 작품 한 공간에는 리듬체조 리본이 한 바구니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리본이 공식 대회에서 사용하는 길이와 재질은 아니었지만 담율이는 리본의 묶여진 부분을 풀고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 보았다(리듬 체조 대회에 참가할 때 공식 길이의 리본을 사용한다. 보통 사사키SASAKI 라는 일본 브랜드의 제품을 많이 사용한다.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분야의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아이를 통해 알게 되는 경험은 엄마인 나에게도 좀 새롭다.)

한 분야에 대해서 꽤 열심히, 진심으로 하다보니 자신감이 커지고, 낯선 환경이나 분야에서도 그 자신감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보니 그동안의 라이딩 세월이 보람있게 느껴졌다. 음악과 춤, 몸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아이의 일상에서 자리잡아 주어진 환경에서 더 풍요로운 경험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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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칠 수 없는 테이트 모던의 전시 (feat. 서도호)

영국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그렇듯, 테이트 모던도 상설 전시는 무료입장이나 특별전의 경우 유료 입장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방문한 기간에 기획 전시는 우리나라 작가인 서도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담율이는 그냥 전시도 아니고, 이 먼 곳에서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전시가 우리 나라 작가임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오랫만에 유럽을 나와보니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구나 느낀 순간들이 많았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골든 노래에 맞춰서 릴스를 찍고 있었고, 슈퍼마켓에서 아파트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인마트 ‘오세요’에는 사람들이 북적댔다.


테이트모던에서 열리는 서도호의 전시는 20파운드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전시임에도 인기가 많아 전시 기간이 연장되었다고 한다. 특히 패브릭으로 만든 설치 작품이 궁금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에어비앤비의 주인이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패션 스쿨을 열고 있는 캐롤린도 서도호의 패브릭 작품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국뿡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그의 전시 중 드로잉, 영상, 설치 미술 등 다양한 기법의 작품들의 일관된 주제가 '집'이었다. 한국 출신이지만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해외에서 살다 보니 '집'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의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서도호, Walk the House


서도호 작품은 노동집약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깨끼 적삼을 만들 듯 시접으로 그림을 그린듯, 패브릭으로 만든 오브제들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디테일하고 아름답다. 3D 프린터로 모든 걸 만들어내는 요즘 시대에 이렇게 손으로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주는 감동이 있다. 특히 재봉과 자수가 취미인 나에게 바늘로 만들어낸 공간과 사물들은 끝까지 밀어붙인 기술의 정점에서 발현한 아름다움같아서 탄식과 같은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서도호의 서울의 집을 탁본으로 떠와서 실물 크기 그대로 옮겨온 종이로 지어진 집에서는 작가의 집요함, 섬세함에 소름이 돋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은 공간을 기와 하나 하나, 문지방 하나 하나 본을 떠 옮겨 작가의 삶 자체를 시공간을넘어 옮겨 온 것 같다. 전시 작품 옆에서 상영되는 영상을 꼭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테이트 모던은 늘 그랬던 것처럼 처음가는 것처럼 새롭고 신선하다. 언제가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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