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튈르리 정원
튈르리 정원에 가면 열기구 형상의 조형물이 있다. 메탈 컬러의 거대한 헬륨 풍선에 오렌지색 조명과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스트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처음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조형물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튈르리 정원 건너편 The oldest English Book 이라고 쓰여진 오래된 서점에서 그림책을 들춰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찾아냈다. 세계 최초의 열기구가 여기 튈르리 공원에서 시험 비행을 했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튈르리 정원에 열기구 조형물이 있었구나!!!
우리는 셜록홈즈가 얽힌 사건을 풀어낸 듯 아무도 숨긴 적 없는 비밀을 알아내고는 도파민이 팡! 터졌다. 다시 가보자!
1783년 몽골피어 형제가 열기구를 띄워 인류의 오래된 염원이었던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을 실현 시켰다.
그 해 11월, 파리 튈르리 정원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보는 앞에서 비행이 재현되었다. 직접 하늘을 나는 인간을 눈으로 본 당시 사람들은 이에 열광했고, 말 그대로 "열기구 열풍"이 불었다. 인간이 과학을 통해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희망과 미래의 상징이 된 것이다. 프랑스의 발명과 진보의 상징이었던 열기구가 2024년 파리 올림픽의 성화대 역할로 다시 등장했다.
올림픽 기간동안 이 열기구는 일정 시간이 되면 하늘로 떠올랐다. 60미터까지 하늘 위로 떠올라 달처럼 밝은 빛을 내며 떠오르는 열기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이곳에 계속 남기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올 해 여름, 밤마다 열기구가 떠오르는 행사가 재개되었다고 한다.
열기구를 띄운 사건은 당시 파리 시민들에게 엄청나게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다. 카르바날레 파리 역사 박물관에서 열기구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자, 그림, 접시, 부채, 벽지와 패브릭 등. 단순히 잠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국가적 문화현상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주는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핸드폰이 처음 대중화 되었을때, Ai가 처음 나왔을때의 충격 정도였을까?
이 열기구는 미술, 패션, 공예, 문학에서 진보, 인간의 이성, 계몽주의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도시 브랜딩을 할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도시에 얽힌 스토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러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시각적인 요소을 개발하면 단순히 눈에 띄고 예쁘기만 한 결과물보다 다양하게 확장가능하고 생명력을 지닌 브랜딩 자원이 된다. '열기구'라는 스토리를 알게 된 우리는 이 튈르리 정원이 다른 어떤 정원보다 의미있는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튈르리 정원 연못가에 놓인 '뤽상부르 의자'에 앉았다. 해는 길어 하늘은 천천히 주황색으로 물들어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좋은 날씨였다. 고개를 돌리면 루브르 박물관의 화려한 실루엣, 반대편으로는 직선으로 반듯하게 자른 가로수가 줄지어 있어서 '여기가 바로 파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였다.
오리들이 연못에서 털을 고르고 잘 준비?를 하는지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오리들의 이런 자세, 저런 자세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다. 담율이의 묘사 실력이 부쩍 늘었다. 여유롭고 한가한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생각해보니, 2013년 남편과 우리 엄마, 아빠와 파리에 왔을때 루브르박물관에서 진을 다 빼고는 밖으로 나와 이 튈르리 정원에서 잠깐 앉아서 쉬었던 순간이 파리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파리의 정원은 이렇게 여유롭게 즐길 때 가장 그 가치를 발휘한다.
파리는 튈르리와 같은 파리지앵들에게 사랑받는 공공녹지를 처음으로 계획하고 조성한 도시이다.
파리를 근대적인 도시로 탈바꿈시킨 오스만의 업적은 잘 알려져 있다. 오스만이 가로수가 줄지어 서있는 대로인 불레바르와 하수도 시스템으로 도시의 골격을 세울 때 도시의 구석구석 숲과 정원도 배치했다. 파리 시민들은 도시 곳곳에 조성된 광장과 정원에서 휴식을 누리고 여가를 즐겼다.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나오는 점원들과 같은 노동자들도 힘든 도시 생활 속에서 일상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 되었다. 서쪽의 불로뉴 숲 Bois de Boulogne, 동쪽엔 뱅센느 숲 Bois de Vincennes, 북쪽에는 뷔트쇼몽 공원 Parc Buttes-Chaumont, 남쪽은 몽수리 공원 Parc Montsouries과 파리 시내 크고 작은 정원들이 이때 생겨난 곳이다.
이렇게 곳곳에 배치된 정원과 공원이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나절 사람들에게 치이고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튈르리에는 어린이 놀이터도 있어서 실컷 땀을 빼며 놀고 비둘기를 쫓으며 뛰어 놀며 에너지를 채웠다.
한참을 뛰어 놀다가 튈르리 공원에서 있는 카페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피쉬앤칩스와 함께 한 맥주로 약간 알딸딸한 상태로 앉아있고, 담율이는 식사와 디저트를 맛있게 하고 비둘기를 쫓으며 놀고 있었다. 기껏해야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애 두명이 순식간에 담율이에게 공을 던졌다. 실수로 공이 튄 게 아니고, '야 우리 쟤한테 던지자.' 하고 겨냥하고 던지는 것이었다. 순간 눈이 번쩍 떠지고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었다. 내가 직접 겪는 것도 화나는 일이지만, 아이가 눈 앞에서 당하니까 심장이 빠르게 쿵쿵 뛰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자 아이들의 엄마가 달려와서 당장 가서 사과하라고 했다. 아이는 칭얼거리면서 싫어했지만 엄마가 끝까지 단호하게 사과하라고 해서 담율이에게 와서 사과를 했다. 아이 엄마도 우리에게 와서 다시 한번 사과한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한 번쯤은 꼭 겪게 되는 인종 차별. 프랑스에서 걱정했던 것보다 친절함과 매너좋은 태도를 많이 경험하고 있어서 방심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최소한 사과는 받았다.
이 일로 담율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에게는 낯설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사는 곳이 다르고 생긴 게 다르다고 차별하는 건 정말 너무해!"
"엄마는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은 시야가 좁고 지식이 짧아 낯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공격성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해. 모르면 두렵고 불안하거든. 저 아이도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면 지금 자기가 한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꺼야. 어른이 되어도 배우지 못한다면 그런 어른은 피하는 게 좋아. 상종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거든."
사과하러 온 엄마를 보니 그 공을 던진 아이가 그날 오전에 장식미술관 체험에서 바닥에 눕고 칭얼대다가 중간에 엄마한테 안겨 나간 애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건 인종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저 아이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자기 감정을 통제하기가 아직 어려운 아이인가봐. 이번에는 사과도 받았으니까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훌훌 털어내자. 그런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 이유도 없이 인종차별을 하면 그건 분명하게 불쾌하다고 말하자."
여행이 아니었으면 겪어보지 못했을, 불편한 현실을 하나 알게 된 9살, 세상에 대한 경험치가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