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모던보다, 테이트 브리튼!

by 풸롱

터너를 좋아하세요? 라파엘 전파가 궁금하세요?


총 35일간 파리와 런던을 여행하면서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녀왔다. 명성에 비해 좀 실망스러운 곳도 있었고,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다음에 꼭 다시 가고 싶은 곳도 생겼다. 테이트 브리튼이 그런 곳이다. 꼭 다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곳.


테이트 브리튼은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모던에 비하면 인기가 덜한 것 같다. 테이트!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테이트 모던을 떠올린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되는데 런던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 수를 자랑하는 테이트 모던에 비하면 테이트 브리튼은 그 수의 25%정도밖에 미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테이트 모던은 피카소, 워홀, 달리 등 워낙 유명한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고, 미디어 아트·설치미술 등 “보는 재미가 큰” 작품들이 많다. 게다가, 타워브리지, 세이트폴 대성당등 유명 관광지들이 도보로 가능한 거리에 있어 겸사 겸사 가기도 좋다. 인정!


그렇지만 테이트 브리튼도 이와 또 다른 재미가 넘치는 곳이다. 테이트 브리튼은 1500년대 이후의 영국 미술에 초점을 두는데, 대표적으로 터너(Turner), 로젯티, 밀레이 같은 19세기 화가들이 중심적으로 전시되어있다. 터너같은 경우는 터너룸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터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다. 친한 언니가 “나는 터너의 작품을 가장 좋아해” 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나도 터너가 조금 더 좋아졌다. 그림의 홍수 속에서 터너의 그림이 있으면, ‘어! 언니가 좋아하는 터너다!’하고 한번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더 예쁘다 했다. 그림도 그렇다. 한번 더 듣고, 한번 더 본 그림이 더 좋아졌다.

터너의 방에 걸린 터너의 자화상




테이트 브리튼을 둘러 보면, 터너의 작품 이외에도 미술 교과서든 화보집이든 어디선가 봤을법한 “이 그림!” 하는 것들이 제법 걸려있다. 나는 테이트 브리튼의 소장품 중에 라파엘 전파와 사전트의 그림을 꼭 보고 싶었다. 특히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장미 Carnation, Lily, Rose. 시원한 공기가 내려앉는 듯한 초저녁의 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테이트 브리튼의 정문을 들어가자마자 ‘ask me’ 라고 써진 빨간 가방을 맨 할아버지 스태프가 “밖에 날씨가 참 좋지? 뭘 도와줄까?”하고 물어본다. 시작부터 이렇게 친근한 미술관이라니. 사전트의 그림을 보러왔다고 하자 “따라오세요” 하더니 방을 몇 개 지나 바로 그림 앞까지 안내해준다. 할아버지를 따라 가는 길에 오필리어와 란셀롯의 여인 그림도 지나가며, “저 그림 유명한 거 알지. 나중에 봐~”라고 설명을 잊지 않으셨다. 미술관을 둘러보니 이 할아버지와 같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있었다. 누구든 그림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상세히 설명해주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해설 프로그램도 있었다.


정말이지 여유롭고 친절한 미술관이다.


해지기 직전 단 몇 분간만 볼 수 있는 빛과 색채를 담아내기 위해 애썼다는 사전트의 그림을 한동안 관람했다. 랜턴을 들고 있는 아이들은 돌리와 폴리 버나드 Dolly, Polly Barnard로, 사전트의 친구 프리데릭 바나드의 아이들이라고 한다.사전트는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자’라고 주창한 라파엘 전파의 일원인데, 라파엘 전파는 실제 상황을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매일 저녁, 찰나의 순간을 담기 위해 이젤과 물감을 놓고 미리 모델에게 포즈를 취한 다음 적절한 순간이 시작되길 기다렸다가 재빨리 순간을 담으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여름이 끝나도 다 끝내지 못했다고 한다. 꽃이 지자 화분으로 꽃을 대체한 다음 계속 그려나갔는데, 그 것때문에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많이 아프기도 했다고 한다.


존 싱어 사전트, 카네이션, 백합, 장미


실제로 보는 그림들은 항상 사진보다 큰 감동이 있다. 과감하고, 섬세한 붓터치들을 보고 있으면 그림을 그린 그 시대에서 지금 현재까지 긴 시간을 뛰어넘는 작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분이 든다.

그림 앞에는 앉아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벤치가 많이 놓여 있다. 그림을 따라 그려볼 수 있도록 이젤과 색연필도 준비되어 있어서 아이는 명화를 자기만의 빙식으로 따라 그려보고, 그 동안 나는 그림 구석 구석 화가들의 터치를 즐겼다.


누구나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


테이트 브리튼 안에는 이렇게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어서 어린이도 지루하지 않다는 게 큰 장접이다. 여기는 왜 안 붐비지? 이렇게 좋은데? 지하로 내려가면 Tate Draw 라고 태블릿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아이가 그린 그림을 티셔츠에 인쇄해서 판매하는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또 플레이스튜디오에는 블록 놀이, 패션쇼, 카드 게임 등이 준비되어 있어 한참을 시간을 보냈다. 담율이는 색색 무지개 천을 엮었다가, 치마 사이에 끼웠다가 그림속 주인공처럼 분장해보고 놀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 직원들은 “Wonderful!”, “Lovely!” 해준다. 작은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 아이의 자존감이 쑥쑥 올라간다.



건물의 아름다움도 느껴보시길.

우리는 그리스식 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웅장한 계단을 통해 입장했는데, 지하 식당 레벨에서도 입장할 수 있다. 성으로 들어가듯 사뿐 사뿐 계단을 올라가며 동화 속 왕자님을 상상하고 신발을 한쪽 살짝 벗어 놓기도 했다. 입구로 들어서니 지하에서 천정까지 이어진 원형 계단실이 나오는데, 절로 우와~하는 감탄과 함께 올려다 보게 된다.



이 홀은 2013년에 레노베이션을 거쳤는데, 그 때 영국의 건축가 카루소 세인트 존의 설계로 계단실이 새롭게 탄생했다. 새하얀 타일로 아름다운 패턴을 이루고 있어 꼭 섬세한 드레스 자락 같이도 하다. 계단 위에 서면 단번에 디즈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BBC에서 선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단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하에 위치한 미술관 카페의 공간도 아름답다. 궁륭 천장이라고 하던가. 지하 와인 저장고 같은 천장에 그려진 천장화가 마치 뒤피 그림같이 화사하고 경쾌했다. 샐러드가 꽤 푸짐하게 나오고 플랫화이트 커피도 맛있었다. 그런데 식빵 반쪽 크기에 햄 한조각, 치즈 한 조각 든 어린이 샌드위치가 5파운드! 이걸 사먹고는 꼭 샌드위치를 싸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테이트 모던과 테이트 브리튼중 어디가 더 좋냐고 묻는다면, 나는 테이트 브리튼!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영국 화가들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둘러보고, 언제든지 도슨트의 설명과 어린이를 위한 체험도 충족시킬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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