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모자 공방에서

비비모자, 패시네이터 만들기

by 풸롱

파리에서 여성들이 머리를 장식할 때 쓰는 패시네이터 Fascinator를 만들었다. 여성들이 주로 결혼식이나 공식 행사에서 착용하는 작은 장식용 모자로 깃털, 망사, 구슬, 리본 등을 달아 장식한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그 김 모씨가 영국 왕실 장례식에서 써서 논란을 일으키키도 했던 그 패시네이터.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됐냐면..

에어비앤비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이번 유럽 여행 계획을 일찍부터 세우기 시작해서, 출발하기 8개월 전부터 에어비앤비를 좋은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는 일찍 예약할수록 좋은 가격에 좋은 집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신규 등록 스튜디오를 에어비앤비 수수료 전 가격으로 1박 85달러에 예약했는데, 이건 돈을 쓰면서도 돈을 버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일정이 다가올수록 이곳의 1박 당 가격이 점차 올라서, 나는 미리 이곳을 선점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입실하기 며칠 전, 갑자기 에어비앤비에서 문자가 왔다. 호스트가 특별한 사유도 없이 예약을 취소했다고 한다. 문자를 받았을 당시, 런던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었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린아이와 둘이서 여행 중인데 촉박한 시간에 예약이 가능하겠냐고, 숙박 가격도 오를 데로 올랐고, 괜찮은 데들은 다 예약이 끝났을 텐데.

에어비앤비 고객센터는 원하는 조건을 알려주면 여러 대안을 찾아서 몇 가지 제안해 주겠다고 했다.


중심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동네.

단독 사용.

후기가 좋은 곳.


고객센터에서는 금방 몇 가지 대안을 주었고, 여러 차례 의견교환 끝에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예약할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 고객센터의 일처리 능력과 속도는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외국에서 여행 중에 이 정도 에피소드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재예약 과정에서 보상 크레디트를 적립해 주는데, 적립된 크레디트가 새 숙소를 예약하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기간 한정 크레디트를 그냥 버리기에 아까워서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둘러보니 현지인이 제공하는 특별한 체험들도 예약할 수 있었다. 커피와 디저트 맛보기, 미식체험, 크로와상 만들기, 바게트 만들기 등등.


어린이 동반이 가능하고,

어른과 아이가 동시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


그렇게 찾아낸 것이 이 패시네이터 만들기인데, 원래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이다.

혹시나 아이 동반이 될지 물어보니 흔쾌히 같이 와도 된다고 해주었다. 이렇게 되니 갑작스러운 숙박 취소로 반나절 좀 번거로웠고, 걱정했던 일들을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느껴졌다.

이것 야말로 전화위복.


몽마르트르 언덕의 모자 공방

체험 프로그램 예약 후 전달받은 주소로 찾아갔다. 공방은 몽마르트르 근처에 위치해 있었고, 게다가 지붕 밑 다락방이었다. 엘리베이터로 6층까지 타고 올라간다. 거기서부터는 좁디좁은 나선형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한다. 단숨에 과거로, 소설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이 다락보다 더 비참한 곳은 없었다. 누추한 누런 벽, 가난의 냄새, 지붕은 심하게 경사진 채 타일 사이 틈으로 하늘이 보였다. 방엔 침대 하나, 탁자 하나, 의자 몇 개가 겨우 있었고, 지붕 가장 높은 지점 밑에 겨우 내 피아노가 들어갈 정도였다.- 나귀 가죽, (1831) 오노레 드 발자크


그 방은 지붕창(작은 채광창)으로 지붕을 내다볼 수 있는 좁은 맨사르드(mansarde) 형의 작은 칸이었다. 작은 침대 하나, 호두나무 장롱 하나, 화장대 하나,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런 방이 스무 칸쯤 수도원식 복도의 양쪽에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집에 친척이 없는 서른다섯 명의 처녀들 가운데 스무 명은 그곳에서 잠을 자고, 나머지 열다섯 명은 외부에 기거하거나 빌려 쓴 이모·사촌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에밀 졸라, (1883) 여인들의 행복백화점

공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어찌나 좁던지,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 나오는 드니즈의 삶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한 평 남짓한 공방에서 카린Karin이 맞이해 주었는데, 그리 크지 않은 성인 두 명, 어린이 한 명으로 꽉 차는 느낌이었다. 지붕을 달군 열기가 실내로 그대로 전해져 후끈거렸고, 작은 지붕창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작은 창으로 파리 시내가 모두 내려다 보였다. 흰색 가운을 입고 있는 카린이 진한 커피를 한 잔 건넸다. 오래되어서 여기저기 흠집이 난 컵과 스푼이 여기 이 공방과 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패시네이터 만들기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원하는 컬러를 결정하면 모자의 기본적인 모양을 잡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금씩 실습도 해본다. 평소 재봉과 자수를 즐기는 터라 한 바느질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모자 위 장식을 고르고 배치하는 것은 경우의 수가 너어무 많아서 한 가지를 골라내는 데 좀 힘들었다. 그래도 호불호과 확실한 딸과 가니까 빠른 결정이 가능했다. 리본을 만들어 붙이고, 깃털을 고르고, 구슬을 달았다. 온갖 컬러와 크기의 깃털 상자를 여는 순간 담율이는 거기에 완전히 빠져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바닥에 떨어지는 깃털을 가지고 놀았다. 장식을 모두 달고 나면 고무줄을 연결해 주는데, 어떻게 쓰면 예쁠지도 알려주었다. 주어진 시간이 2시간이었는데, 1시간 30분 내에 모든 것을 끝내버렸다. 짧지만 강렬한 경험이었다.



담율이는 그날 까만 드레스를 갖춰 입고, 금방 만든 패시네이터까지 쓰고 몽마르트르를 오를 계획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데, 현관문을 열고 그 건물에 사는 듯한 아저씨가 한 명 들어왔다. 빨간 바지에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장바구니를 든 전형적인 파리지앵 아저씨 같았다.

담율이를 보더니 불어로 한참을 뭐라 뭐라고 말을 건넨다.


"Sorry, We can't speak Franch."

"그래? 미리 말하지 그랬어~ 영어로 얘기할게. 엘레강스에는 두 종류가 있어.

태도에서 나오는 엘레강스, 옷차림에서 나오는 엘레강스.

꼬마 아가씨, 너는 이 두 가지 엘레강스를 다 갖췄다. 너무 멋져~"


와, 여행자에게 이렇게 스윗한 말을 건넨다고?

어린이와 여행하면서 현지인들의 더 스윗하고 따뜻한 태도, 더 다채로운 경험을 쌓고 있는 것 같아서 여행의 만족도가 점점 올라갔다.


"담율아, 엄마는 너랑 여행하는 게 너무 좋아. 재밌어."

"응, 우리 다음에 또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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